컨텐츠 바로가기

07.01 (월)

한산도에서 고대 선조들 바다제사 올린 흔적 나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통영 한산도 망산 정상에서 청동기시대 간돌칼 발견…당시 제사 흔적 추정

임진왜란 때 쓰인 봉수대 굴뚝과 러일전쟁 때 일본군 신호소 자취도 확인



한겨레

통영 한산도 망산봉수대에서 나온 청동기시대 간돌검.


현재 경남 통영시에 딸린 한산도는 역사의 섬이다. 16세기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영을 두고 수군을 움직였던 본거지이며, 앞 바다는 학익진 전법으로 왜 수군을 무찌른 한산대첩의 현장이다. 이 유서깊은 섬에서 최근 고대 선조들이 바다에 지낸 제사 흔적과 임진왜란 때 쓴 봉수대터,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 신호소 흔적 등이 잇따라 발견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

경상문화재연구원은 최근 한산도 망산(해발 293.5m) 꼭대기 부근에 있는 옛 봉수대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의 간돌칼(마제석검)이 들어있는 구덩이(수혈) 유적을 찾아냈다고 27일 발표했다. 수혈 유적 안에서 확인된 돌칼(길이 30cm)은 가운뎃 부분에 길게 홈줄이 나있는 것이 형태상의 특징이며 네 조각으로 부러져 있었다. 연구원 쪽은 “고대 선조들이 풍어와 바닷길 항해의 안전을 빌며 제사를 지낸 뒤 돌칼을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청동기시대 해상 제사터로 추정되는 수혈 유적은 전북 부안 계화도 유적, 전남 여수 세구지유적, 충남 서천 옥북리유적 등이 보고된 바 있지만, 발견된 사례가 드문 편이다.

한겨레

망산 봉수대터 전경. 아래로 섬들이 남해 바다 위로 떠있는 한려수도의 절경이 보인다.


주민 사이에 말로만 전해지던 조선시대 봉수대의 자취를 찾아낸 것도 성과다. 발굴 과정에서 망산 꼭대기에 쌓고 연기를 피워올린 봉수대 굴뚝(연조) 4군데를 확인한 것이다. 이 굴뚝터는 기반이 되는 지하 바위층을 凹자형으로 파서 만든 구덩식 얼개이며, 평면 형태는 동그란 원형을 띠고있다. 망산봉수대는 정확한 문헌기록이 없어 주민의 전언 등을 통해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됐던 시기에 운영되었을 것으로만 알려져왔다.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 실체가 드러나면서 임진왜란 당시 썼던 군사시설이란 점이 명백해졌다. 조선시대 봉수 체계는 5개 연조로 이루어진 신호체계를 갖췄는데, 발굴에서 4개소가 확인된만큼 앞으로 1개소가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겨레

망산 봉수대 자리에서 굴뚝 흔적과 함께 드러난 조선시대 건물터.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며 신호소를 운영한 흔적들도 봉수대 터 안에서 드러났다. 신호소는 내려다보이는 바닷길을 감시하고 기상을 관측하며, 인근 통신소와의 연락을 했던 곳인데, 당시 일본 규격의 붉은 벽돌과 석탄, 일본 자기 조각, 시세이도사 로고가 찍힌 크림치약 용기 등이 출토됐다. 벽체와 지붕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아, 1904년2월 러일전쟁 발발 뒤 일본 군부가 조선시대 봉수대 시설을 신호소로 급조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 쪽은 “망산 일대는 임진왜란과 관련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체계적인 조사가 없어 성격이 모호한 상태였다”면서 “이번 조사를 통해 고대 제사터, 조선시대 봉수대, 러일전쟁 때의 일본군 시설 등이 시대별로 골고루 확인되면서 한산섬이 지닌 역사 지리적 중요성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27일 오후 2시 발굴현장에서 설명회가 열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경상문화재연구원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 대선 팩트체크] [페이스북] [카카오톡] [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