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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김주영 “위로는 문학의 역할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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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의 장편 ‘뜻밖의 生’ 펴낸 김주영 소설가

동아일보

소설가 김주영 씨는 “소재가 무엇이든 문학의 최종 목표는 독자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것이 항상 내 마음에 숙제로 남아 아직도 글을 쓴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작가가 쓰면서 재미있어야 작품도 재미있게 나오거든요. 이 소설은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을 겁니다.”

소설가 김주영 씨(78)가 ‘객주’(전 10권) 완간 이후 4년 만에 첫 장편 ‘뜻밖의 生(생)’(문학동네)을 출간했다.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내가 내 작품 갖고 말을 잘 안 한다”면서도 너스레를 떨었다.

소설은 천진한 소년이 파란만장한 삶 끝에 지혜로운 노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소년 박호구는 도박판에 목숨을 거는 ‘타짜’ 아버지와 무당을 신봉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자란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그는 노숙하며 지내다 곡예단에 들어가게 되고, 뜻하지 않게 딸을 얻고 행복을 느끼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작품에는 등단 47년이 된 작가의 통찰이 담겼다. 김 씨는 “주인공은 때리면 맞고, 밀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은 고귀한 이”라며 “‘(작은) 여울물이 흘러도 산그늘의 흔적은 남는다’는 긍정적인 철학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우리 나이로 여든 살을 목전에 둔 작가는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나이를 실감했다고 했다. “한참 열정이 쏟아져 나올 때는 단편 하나를 하룻밤에 쓰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1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작품이 마지막 장편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쌍소리에도 능숙하고 정사(情事) 장면을 쓰는 데도 소질이 있거든요(웃음). 이번 작품도 하층민들의 이야기니 쌍소리도 많이 담고 아주 질퍽하게 쓰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망설여지더군요. 이 나이에 이런 것을 쓰면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요.”

작가는 5년 전부터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에도 잠을 못 이루다 TV에서 우연히 옛날 영화에서 활약했던 배우가 (나이 들어) 출연한 ‘스파이 게임’(2001년 영화로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으로 출연했다)을 봤습니다. 주인공이 옛날에는 굉장히 핸섬했는데 참 실망했어요. 사람이 늙으면 우선 나처럼 볼살이 밑으로 처집니다. 머리숱도 적어지고요. ‘그런 모습으로 이 사람이 아직도 총질을 하고 있구나, 저게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씨는 “그럼에도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며 10여 년 전 러시아 답사의 기억을 떠올렸다. “황제와 영웅의 웅장한 동상들이 있는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쪽 구석에 조그만 동상이 있습니다. 다른 동상 앞에는 다 조화(造花)가 있는데 그 동상 앞에는 생화가 놓여 있어요. 농부들이 시인 푸시킨의 동상 앞에 갖다 놓은 것이랍니다.”

김 씨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러시아 촌부들도 모두 암송한다”면서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 추위에 떠는 사람, 그래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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