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산업2부 차장 |
얼마 전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몇몇 대기업들이 지급하기 시작한 출산장려금에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그런 뉴스에 오히려 박탈감을 느낄 뿐 아니라 ‘중소기업은 어쩔 수 없다’며 떠나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19일 정부가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보면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대책을 보고 그가 경영하는 기업의 직원들은 ‘아이를 낳을 만하겠다’고 생각했을까.
무려 51쪽, 소책자 수준에 육박하는 대책을 읽으며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저출생 대책보다는 한 걸음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가정 양립, 즉 일하면서도 충분한 육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에 힘을 기울인 점이 그렇다. 단기 육아휴직을 도입한다든가, 육아휴직 기간 대체 인력을 뽑은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주기로 한 것(사실 그동안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더 놀랍다.)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분야에서도 ‘특별공급 기회는 평생 한 번’ 같은 원칙을 꺾어서라도 출산·육아 가정의 집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데도 정작 젊은층 사이에선 “‘뭘 좋아할지 몰라 다 넣어봤다’는 식” “집 사라고 대출해주는 게 저출생 대책이냐”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다. 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우선 정책 대상자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 내는 ‘한 끗’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출산휴가에 육아휴직도 통합 신청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보자. 근로자들은 육아휴직을 쓸지 말지 눈치를 본다. 그런 부담을 줄이겠다는 대책인데 여전히 신청 의무를 근로자에게 지우고 있다. 반대로 출산휴가가 끝나면 육아휴직이 자동으로 시작되도록 하고, 육아휴직을 연달아 쓰고 싶지 않은 경우에만 사유를 밝히도록 하면 부담이 확 줄어들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는 기업도 있다.
두 번째 가능한 모든 대책을 넣다 보니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정부조차 헷갈리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한국경제연구원 ‘소득분위별 출산율 변화 분석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15∼49세 가구주 중 소득 하위층의 출산가구 비중은 2010년 대비 2019년 51%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산층은 45.3%, 상위층은 24.2%만 감소했다.
소득이 적을수록 아이를 더 안 낳게 됐다는 의미다. 소득 하위층은 대기업보다는 그 외 직장을 다니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유연근무나 육아휴직을 활용할 엄두 자체를 못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아무리 장려한다 한들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신생아 특례대출 자격 요건을 부부 합산 연소득 2억5000만 원까지 완화한다는 정책 역시 이들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외국 제도를 답습했다,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 효과성 평가가 미흡했다….
이번 대책을 내놓으며 정부가 이전 저출생 대책에 대해 내린 평가다. 다음에도 같은 ‘반성문’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책 타깃은 더 명확하고, 성과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지방 산업단지에 입주한 중소기업에서 출산율이 오른 사례가 나온다면, 그제야 반전의 기회라도 잡은 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갈 길이 멀다.
이새샘 산업2부 차장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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