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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반전에 반전…막장 치달은 아칸소주의 ‘집단 사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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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집행용 약물 유효기간 이유로 11일 동안 8명 집행 계획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집행하고…법원 결정에 희비

3명 집행·4명 집행정지·1명은 집행정지 신청 상태

“자의적 집행 시도”…사형제 폐지론 다시 불 지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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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소주가 이달 말까지 형을 집행하겠다고 밝힌 8명의 사형수.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브루스 워드, 마셀 윌리엄스, 제이슨 맥기히, 케네스 윌리엄스, 잭 존스, 돈 데이비스, 리델 리, 스테이시 존슨. 마셀 윌리엄스, 존스, 리는 형이 집행됐다. 워드, 맥기히, 데이비스, 존슨은 집행 중단 결정을 받았다. 케네스 윌리엄스는 27일 집행을 앞두고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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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형 판결을 받고 20여년간 ‘집행 대기’ 상태에 있었다. 주지사는 8명을 단번에 처단하겠다고 나섰다. 갑자기 서두르는 것은 집행용 약물의 유효기간 때문이다. 누구는 ‘최후의 만찬’ 뒤 사형집행대에 누웠다가 집행 15분 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다른 사람은 집행영장 만료 4분 전에 숨이 끊어졌다. 죽느냐 사느냐는 대부분 판사들 중 한 명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달렸다.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 아칸소주의 ‘집단 사형극’이 빚어내는 막장 같은 풍경이다.

“집행 약물 떨어져간다”…8명 한꺼번에 집행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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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사 허친슨 아칸소 주지사. 집행용 약물 유효기간 만료를 이유로 집단적 사형 집행에 나서 `소동'을 촉발했다.


에이사 허친슨 아칸소 주지사는 지난 2월, 사형 집행에 쓰는 진정제 미다졸람의 유효기간이 4월30일에 끝난다며 아칸소주의 사형수 35명 중 8명에 대한 사형을 그 안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에 아칸소주에서는 2005년에 마지막 사형이 집행됐다. 이에 종교계를 비롯한 사형 반대 진영의 비판이 제기됐고, 전직 교정 관리들도 집행인들이 처할 비인도적 상황을 거론하며 반대 청원을 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인 허친슨 주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주지사직에 도전할 때는 이런 걸 계획하지 않았다”면서도 “나는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하고, 취임선서에 책임을 져야 할 뿐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있는 신과 영생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계획을 밀어붙였다.

아칸소주는 이달 들어 11일(17~27일) 안에 집행을 마치겠다고 나섰다. 중국 다음으로 사형 집행이 잦은 미국에서도 이런 정도로 집중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됐다. 아칸소주는 사형제 지지 여론이 높고, 상대적으로 집행률이 높은 곳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사형 집행을 참관하기도 했다.

아칸소주는 보유하고 있는 미다졸람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대체 약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평판 훼손을 우려하는 제약사들은 사형 집행용으로 약물을 제공하는 것을 꺼린다. 사람을 치료하는 데 쓸 약을 목숨을 빼앗는 데 쓸 수는 없다는 윤리적 배경 때문이다. 미국 주들은 대부분 3단계의 약물 투여로 사형을 집행한다. 첫 단계로 미다졸람으로 의식을 잃게 만든 다음에 숨을 멈추게 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최종적으로는 심정지를 일으키는 약물을 쓴다.

법원의 제동, 일단 꼬인 집행 일정

집행 명단에 오른 사형수들은 대부분 살인이나 강간살인죄로 형이 확정돼 20년 이상 ‘집행 대기’ 중인 사람들이다. 집행 일정이 확정되자 사형수들과 그 변호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4월을 넘기려고 시도했다.

아칸소주는 첫 시도부터 좌절을 겪었다. 27일이 집행 날짜로 정해진 제이슨 맥기히는 아칸소주 가석방위원회가 감형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지사에게 권고하면서 기회를 얻었다. 법원은 맥기히한테 30일간의 의견 진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 6일 집행을 중단시켰다. 그때부터 30일 뒤라면 아칸소주 교정국이 보유한 미다졸람의 유효기간이 지난 다음이다. 감형이 되든 안 되든 맥기히는 당분간 사형집행대에 눕지 않을 수 있다.

이어 브루스 워드와 돈 데이비스는 재판 과정에서 독립적인 정신감정이 생략됐다는 이유로 집행이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주대법원은 4 대 3 의견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주정부는 상소했으나 연방대법원도 17일 같은 결정을 내렸다. 1990년에 사형 판결을 받은 워드는 조현병이 있다는 점도 감안됐다. 사형 판결을 받은 지 25년이 넘은 데이비스는 집행대에 누웠다가 집행장 만료 15분 전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0일에는 스테이시 존슨이 다른 이유로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왔다. 1993년 강간살해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무죄를 주장하며, 새로운 디엔에이(DNA) 조사 기법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과거 범죄를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 개발된 디엔에이 조사 기법이 유죄 판단을 뒤집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대법원은 역시 4 대 3 의견으로 존슨의 사형 집행을 중단시켰다. 여기까지는 아칸소주의 집단적 사형 집행이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고서치의 가담, 상황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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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최근 연방대법원에 합류해 다수의견 편에 서면서 사형 집행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연전연패하던 아칸소주는 원군을 만난다. 최근 연방대법관으로 취임한 닐 고서치다.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그의 강한 우파 성향을 이유로 인준을 거부했지만, 공화당은 상원에서 ‘핵 옵션’을 사용했다. 원래 상원 100석 중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인준이 가능하지만, 공화당은 이례적 수단인 ‘핵 옵션’을 써서 단순 과반 찬성으로 그를 연방대법원으로 보냈다. 그가 입성하면서 연방대법원의 보수-진보 구도는 5 대 4가 됐다.

이런 상황 변화가 사형수 리델 리의 운명을 결정했다. 1993년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집행이 부당하다며 여러 주장을 제기했다. 주정부가 목적을 속인 채 구입한 약물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부당하다, 재판 도중에 변호사가 술에 취해 있던 적도 있다, 다른 변호사는 적극적으로 무죄를 다투지 않았다, 자신의 지적능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사형수들은 11일 만에 8명의 사형을 집행하려면 교도관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져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하급 법원은 애초 이런 주장들 중 집행용 약물 구입의 정당성을 문제 삼아 집행 중단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주대법원은 이를 뒤집었고, 연방대법원은 20일 밤 11시25분에 역시 집행 허가 결정을 했다. 집행장 시효 만료 35분 전이었다. 집행은 11시45분에 시작됐고, 그는 집행장 시효 만료 4분 전에 숨이 끊겼다.

고서치 연방대법관은 5 대 4로 의견이 갈린 이번 결정에서 다수의견에 가담했다. 그는 따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보수 색깔이 확실하다는 그는 우연찮게도 사법의 매우 민감한 주제인 사형 문제를 두고 연방대법관으로서 첫 결정을 하게 됐다.

17년 만에 동시 집행

24일에는 잭 존스와 마셀 윌리엄스의 절박한 자기 구명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건강 문제 때문에 집행 때 극심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며, 수정헌법 제8조가 금지하는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집행을 중단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존스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온 직후인 이날 저녁 7시20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최후의 순간까지 의뢰인을 살리고 싶었던 윌리엄스의 변호사는 존스에게 약물이 잘못 투여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상당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았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에 지방법원 판사가 잠시 집행을 중단시켰지만, 결국 윌리엄스도 10시33분에 생을 마감했다. 각각 1995년과 94년에 강간살해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둘은 범행을 인정한 바 있다. 두 명이 같은 날 사형 집행을 당한 것은 2000년 텍사스주 사례 이후 처음이다.

제약사까지 반대 행동에 가담

이런 와중에 제약사나 의약품 유통사까지 적극적으로 집행에 반대하고 있다. 미다졸람은 대부분의 경우 사형수의 의식을 잃게 만드는 효력을 무리 없이 발휘했지만, 미국 일부 주들에서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 사형수들이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는 보고가 있다. 사형 반대론자들을 비롯해 이번에 집행 명단에 오른 사형수들은 미다졸람을 쓰는 것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방식의 사형 집행을 금지한 수정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쟁점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2015년에 미다졸람을 계속 집행용 약물로 쓸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2단계 집행 약물’인 베큐로니움 브로마이드를 두고 싸움이 붙었다. 미국 최대 의약품 유통업체 맥케슨이 이 약물을 아칸소주 사형 집행에 쓰는 것을 막아달라고 법원에 요구한 것이다. 이 업체는 “아칸소주는 제조사가 이 약품을 교정시설에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사용 목적을 전혀 밝히지 않고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 약품 제조사인 화이자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남은 한 명, 가열되는 반대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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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브라이어 연방대법관. 아칸소주의 사형 집행은 자의적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숨 가쁘게 진행된 곡절과 반전 끝에 8명 중 7명의 운명이 결정됐다. 3명은 세상을 떠났고, 4명은 계속 ‘대기’ 상태로 남게 됐다. 남은 이들은 상당 기간 집행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 아칸소주가 보유한 미다졸람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제약사들이 비난을 무릅쓰고 새 제품을 아칸소주 교정국에 팔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운명이 결정되지 않은 사형수는 27일로 집행 날짜가 잡힌 케네스 윌리엄스다. 애초 1998년 치어리더를 강간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는 탈옥해 도주하는 과정에서 농부를 총으로 살해하고, 경찰과의 차량 추격전 때 다른 차를 들이받아 또 한 명을 숨지게 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치어리더를 살해한 날 다른 살인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모두 4명의 목숨을 빼앗은 것으로, 8명 중 가장 죄질이 안 좋은 편이다. 그는 21일 지적장애를 이유로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미국 언론들은 가해자들이 20여년 만에 최종적 심판을 받았다는 소식에 피해자 유족 등이 “이제야 정의가 실현됐다”, “비로소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칸소주의 ‘집단 사형 소동’에 사형 반대 진영은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주도 리틀록으로 집결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번 일이 사형제도의 잔혹성과 비합리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컨베이어벨트 사형’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20일 리에 대한 사형 집행 결정에 반대 의견을 낸 스티븐 브라이어 연방대법관은 “언제, 누구에 대해 사형 집행을 할지를 무엇으로 결정하냐”며 이번 집행 시도가 자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아칸소주가 8명의 사형을 집행하려는 것은 약물의 유효기간 때문임이 분명하다”며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사형할지를 구분하는 절차가 무작위에 가깝다”고 했다. 일련의 소동이 벌어지는 와중에 아칸소주에서는 지방법원 판사가 사형제 반대 집회에 참가한 사실이 드러나 사형 문제가 걸린 재판에서 배제당하기도 했다.

연방대법원이 사형제가 합헌이라며 입장을 번복한 1976년 이후 미국에서는 1448명이 사형당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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