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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미세먼지 10년대계 만들자]④ 중국엔 한마디 못하는 정부...유럽·싱가포르 배우고 ‘미세먼지 외교’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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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지역 싱가포르도 한국만큼이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국가다. 바로 옆 인도네시아에서 팜유나 종이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로 숲을 태우기 때문이다. 볏짚이나 소나무 가지 연소입자는 세포에 노출됐을 때 반응을 분석하는 세포독성이 상당히 유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정부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2013년부터 저소득층 20만명에게 미세먼지를 막기 위한 마스크 100만개를 지급했다. 인도네시아 기업들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법을 제정했다. 인도네시아에 압박만 한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산불이 심할 땐 별도로 소방대를 파견해 지원하기도 했다. 2015년 아세안 회의 때 싱가포르 외교부장관은 국경을 초월하는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아세안 국가들이 협력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국제사회에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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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산불의 위성 사진./위키미디어 제공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외교’는 낙제점에 가깝다. 한반도에서 봄철 미세먼지의 최대 50%를 차지한다고 알려진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명확한 액션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정부의 대책 수준은 경유차 제한, 석탄화력발전소 배출허용 기준 강화 등 국내용 정책이다. 중국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미세먼지 정책도 ‘반쪽짜리’에 그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국제협력으로 돌파...유럽에서 배워라

지난 12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슈와 논점 1296호’에서 ‘월경성 장거리이동 대기오염 물질에 관한 협약(CLRTAP)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방안’이라는 제목의 이슈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간 대기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모범사례로 꼽히는 CLRTAP를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CLRTAP는 1979년 11월 UN유럽경제위원회(UNECE) 34개 회원국 가운데 31개국이 서명한 협약이다. 대기오염 물질을 줄이기 위해 오염물질의 이동, 국가별 대기오염 관리 전략, 배출 축소 기술 등에 대한 정보 수집과 교환에 초점을 맞췄다.

유럽의 CLRTAP 협약의 발단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숲의 면적이 줄어들고 호수의 물고기 수가 급갑했다. 1967년 스웨덴의 과학자인 스반테 오덴(Svante Oden)은 산림 황폐화와 호수 내 산성도 상승의 원인이 외부에서 유입된 아황산가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1971년 OECD가 영국과 서독이 스칸디나비아 산성비의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영국과 서독이 이를 부정했고 스웨덴이 1972년 UN인간환경회의에서 국제 이슈로 제기했다. 이후 UNECE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협력방안이 논의됐고 1979년 UNECE 31개 회원국이 협약에 서명했다.

CLRTAP는 협약서에서 언급된 과학적 조사, 감축 대상 선정, 감축목표와 기준연도 설정, 공동 이행 등을 실행했고 이는 기후변화 국제협상의 모델 역할을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준영 입법조사연구관은 “유럽은 국제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국간 협력체계를 구성하고 지속적 노력을 통해 대기오염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왔다”며 “중국, 한국, 일본 등 동북아 지역도 CLRTAP와 같은 과학적 조사 연구 기구 구성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대선 후보들 미세먼지 공약...중국 끌어들이는 협력체계 구축해야

해마다 황사와 함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봄철, 많은 이들이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미세먼지 관련 기사에 네티즌들은 저마다 댓글을 달며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를 성토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문재인·안철수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은 최근 미세먼지 공약에서 중국과 환경외교를 강화하고 대기오염 국제협력 추진 등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블로그에서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할 말을 하는 환경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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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3일 미세먼지 관련 대책을 발표하기 전 기침을 하고 있다./조선DB



싱가포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유럽 여러 국가의 협력체계 구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북아 지역 미세먼지 발생 핵심 국가인 중국과 함께 공동으로 공기 질을 개선하기 위한 공세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준영 연구관은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가 1999년 스타트를 끊었지만 동북아 대기 환경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공유하는 데 그치고 실제적인 성과는 크지 않았다”며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 조사사업도 법적인 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CLRTAP처럼 과학적 연구조사의 중심으로 기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대기오염 문제 인식을 공유하는 틀은 갖춰졌지만 동북아 지역 오염물질 기원과 이동, 변화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부족해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 도출이 어렵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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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이 촬영한 한반도 상공 대기와 미세먼지 이동 모습./NASA 제공



문제는 동북아시아 한중일 3국이 국가간 신뢰도가 낮고 주도권 다툼이 심하다는 점이다. 또 과학적 연구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수용하겠느냐는 문제도 있다.

그래도 전문가들은 “국가간 협력체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입모아 말하고 있다.

중국 자체도 내부적으로 대기오염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준영 연구관은 “유럽도 냉전시대에 이념 갈등을 넘어 환경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의적으로 동의해 협력체계를 이끌어낸 것처럼 차기 정부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문제제기하면 중국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주도로 돌파구를 만드는 데 차기 정부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기자(rebor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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