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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한국에 '정치컨설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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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조기대선의 숨은 실력자 '정치컨설턴트']②서비스영역으로 남기 힘든 정치컨설팅의 현실 …'오세훈법' 정치관련 산업발전 저해]

머니투데이

한국의 정치컨설팅 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정치컨설팅이 태동한 것은 민주화 이후인 19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관련 법률 미비, 정치컨설팅 산업의 의식 부재 등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젼병민의 '동숭동팀'에서 여의도 정치컨설턴트까지 = 김영삼 대통령은 1992년 대선 전부터 당의 공식기구와는 별도로 비밀 사조직을 구성해 집권 후 국정개혁 청사진을 그린다. 정책구상과 캠페인의 구분이 모호한 시절이었지만 정책은 ‘동숭동팀’ 캠페인은 ‘광화문팀’이 주로 맡아서 했다. 동숭동팀에는 선거기획과 정책연구를 1990년 6월에 설립된 전병민씨의 임팩트코리아가 중심에 있었다. 이 팀을 정치컨설팅의 시초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1948년 직선제의 시작과 함께 한국 정치컨설팅이 태동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동숭동팀은 정치·행정, 경제, 사회·문화 등 3개그룹으로 나눠 집권전략과 집권 후 내각인선을 포함한 개혁정책을 구상했다. 금융실명제, 통합선거법 등도 다 동숭동팀이 구상한 기획이라는게 정설이다. 동숭동팀을 이끈 전병민씨는 40대의 젊은나이로 YS 초기 내각에 신설된 정책수석으로 발탁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수석전략가였던 셈이다. YS의 차남인 김현철씨가 주축이 된 ‘광화문팀’은 대선 일정을 조정하고 언론대응을 전담했다. 동숭동팀이 세운 캠페인 전략을 광화문팀이 전면에 나서 수행했다. YS집권 후 동숭동팀과 광화문팀의 일원들 대다수는 정책 연속성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내각에 들어간다.

이후 전략과 캠페인을 수립하는 컨설턴트는 사실상 자취를 감춘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연우기획, 민기획, 파이론, 코마콤 등 대통령직선제, 지방자치제 부활 등의 시대적 변화에 맞게 정치기획사들이 대거 성장했다. 1991년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된 지 30년만에 광역 및 기초의회 의원선거가 부활되자 정치기획사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치컨설턴트들은 1990년대를 ‘정치홍보기획사’ 전성시대라고 정의한다.

당시 정치홍보기획사를 운영하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처음 출마자들이 회사로 몰려드는데 돈은 많지만 선거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며 “하루에 기초의원에 출마하려는 사람 수십명씩 홍보해주고 그랬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당시 기획사들은 사실상 선거홍보물을 인쇄하던 인쇄소 내지는 홍보기획사였지 엄밀한 의미의 정치 컨설팅회사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정치컨설턴트들의 시각이다.

여의도에 ‘정치컨설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 김헌태 상상정치센터 센터장, 이재술 인뱅크코리아 대표, 김윤재 변호사,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등 정치권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 컨설턴트들이 대거 출연한다. 분류하자면 정치컨설턴트 1.5세대 내지 2세대 쯤 된다.

김 대표는 여론조사와 현실정치를 넘나들며 정치컨설팅 위상을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정치컨설팅 협회 회원인 김 변호사는 국내 정치컨설턴트로는 보기드물게 미국에서 굵직한 선거를 경험했다. 국내에서는 2012년 경기 성남 분당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손학규 후보를 도왔고 같은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후보의 전략을 맡아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유 대표 역시 지금은 정치컨설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각 캠프에서 그에게 자문을 구할정도로 정치권에서 ‘모셔가려는 컨설턴트’중 하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 이강원 변호사 등은 정치컨설턴트 3세대다. 빅데이터를 통한 전략분석·수립 등 뉴미디어를 통한 선거 전략수립에 능하다.

◇여의도에 정치컨설텅은 없다(?) = 그러나 이들의 활동과 활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컨설턴트 산업은 아직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정치컨설턴트들은 그 이유로 ‘오세훈법’과 ‘정치계 분위기’를 꼽는다. 오세훈 법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기로 상징되는 불법 정치자금을 통한 정경유착 등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혁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정치자금법’을 말한다. 새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 투명화에 기여했다.

그러나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현실과 괴리가 커진 것이다. 정치 관련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컨설팅의 댓가로 금액을 지불하기보다는 집권 후 ‘자리나누기’식으로 보상하는게 일반화 됐다. 정치컨설팅의 영역이 캠페인, 전략수립, 메시지, SNS, 빅데이터 분석, 여론조사 등 세분화·전문화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 컨설팅의 영역은 여전히 모호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선거에는 외부의 정치컨설턴트나 수석전략가를 영입하기보다는 동료 국회의원들이 업무를 나눠서 맡는다. 여론조사와 홍보물작성 등을 패키지로 묶어 비용을 지불하는 1990년대 ‘홍보기획사식’ 정치 컨설팅이 여전히 보편화 돼있다.

이렇다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자리나누기’는 특정 세력의 ‘패권’으로 귀결되기 가능성이 크고 선거 때 도와준 이들에게 보상하다보니 전문성과 상관없는 자리에 인사를 하는 ‘낙하산인사’를 하거나 없는 자리를 억지로 만들기도 하는 기형적 구조를 만든다. 컨설턴트들이 전문적인 분석가, 전략가로 남길 원해도 정치권에서는 자기사람이 되라고 강요하기는 상황도 컨설팅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

정치컨설턴트들은 이같은 상황이 정치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수십억원을 주고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도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질 대통령과 정치인에게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다”며 “돈을 벌 방법을 연구하는 기업 연구소는 많아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싱크탱크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라고 지적했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보상의 수단이 ‘자리’ 등으로 한정되다보니 시장의 투명성은 더 낮아지고 있다”며 “전략컨설팅 시장이 커지고 외주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우, 김태은 기자 min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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