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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대학생 칼럼] 백수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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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안진오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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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수 대학생’이다. 대학생의 신분을 가장한 백수다. 졸업을 미뤘다는 소리다. 동기, 후배들과 졸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졸업유예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족·친지들이 모두 모이는 할아버지 팔순잔치에서 집안 어른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하셨다. 아직 대학생이라 말씀드릴 수 있었다. 만약 졸업했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백수라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백수에서 도피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백수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씁쓸했다.

나처럼 씁쓸함을 삼키고 있을 ‘백수 대학생’이 10만 명을 넘었다.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률을 보이고 있지만 백수 대학생들은 수치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왜 이렇게 증가하고 있을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백수’, 즉 ‘취업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다. 기업들은 기졸업자를 기피한다. 취업 시장의 낙오자들로 규정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은 지원자의 자격을 평가할 때 졸업 시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졸업 시점이 3년이 지나면 채용을 꺼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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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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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이런 행태가 ‘백수 대학생’ 같은 기형적 구조를 만들고 있다. 지난달 취업준비생 수는 70만 명에 육박했다. 나 같은 ‘백수 대학생’과 4학년들을 포함하면 취업준비생은 100만 명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청년들이 ‘탈조선’을 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부에서도 ‘탈조선’을 ‘K-Move 사업’과 해외취업으로 돕고 있지 않은가. ‘탈조선’을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은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졸업유예와 같은 사소한 것까지 남들과 경쟁해야 한다.

졸업유예는 정말 사소한 부분이다. 단지 이력서에 졸업자와 졸업예정자로 기록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외에도 경쟁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기본적인 취업 스펙 10가지는 물론 수강신청부터 학원등록 경쟁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노력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한 외모와 나이까지 갈수록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이런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은 나처럼 경쟁에 뛰어들거나 외면하는 수밖에 없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지만, 어떤 후보도 청년들의 심화된 경쟁사회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처럼 아직은 백수가 아니라며 안도감을 느끼는 ‘백수 대학생’들의 마음을 그들이 알아줄 수 있을까.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수강신청한 강의를 거래하는 대학생들의 마음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은 청년들과 대화하며 지친 마음을 함께 소통할 어른이 필요하다.

안진오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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