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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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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 대학 학생상담과장 출신 저자

‘헬리콥터 양육’ 치르는 대가 분석

지친 부모·자녀 함께 살 길 제안


한겨레

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줄리 리스콧-헤임스 지음, 홍수원 옮김/두레·1만9000원


미국 중상류층 부모의 자녀 교육을 다룬 책이지만, 한국 중산층 가족을 보는 듯하다. <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자녀를 진정한 성인으로 키우는 법>(HOW TO RAISE AN ADULT, 2015)의 지은이 줄리 리스콧-헤임스는 스탠퍼드 대학과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 그는 가족과 함께 실리콘밸리 근처 대표적 중산층 도시인 팔로 알토에 거주하며 스탠퍼드 대학에서 10년 동안 신입생 상담과장으로 일했다. 그 자신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한 열혈 학부모로서, 학생들의 문제를 가까이 접해온 교직원으로서 학부모들의 자녀 과잉보호를 이해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두 눈으로 생생히 보고 겪었다. 500쪽이 넘는 책은 지은이의 오랜 경험과 학생 지도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많은 논문, 조사결과, 보고서를 참고하고 학자, 입시담당관, 고용주, 학부모, 학생, 기자 등 15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를 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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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줄리 리스콧-헤임스. 두레 제공


미국에서 중산층 자녀 양육의 두드러진 변화는 1980년대 초중반에 벌어졌다. 81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어린이 유괴 살해사건이 발생한 뒤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돌봐주기 시작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적 교육방식이 도입되었다. 1983년 미국교육수월성위원회가 내놓은 ‘위험해진 나라’(A Nation at Risk) 보고서 발표 뒤 ‘모두 1등을 향해 경쟁하자’는 연방정부의 교육정책이 시행되었고 성취 문화가 조장되었던 것이다. 이 문화는 싱가포르, 중국, 한국의 기계식 암기 학습을 강조했다. 어린이들은 숙제 부담에 시달렸고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 경쟁에 팔 걷고 나섰다. 90년에는 아이들 주변을 맴도는 ‘헬리콥터 부모’(1946~64년생)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그들의 첫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가 90년대 후반께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에 학부모가 등장하는 새로운 현상을 지은이가 목격한 것도 이때부터다.

부모의 과잉보호와 면밀한 관리 속에 유년 시절을 보낸 학생들은 우수했지만, 심한 우울감을 호소했다. 2000년대 들어 실제 미국 4년제 대학들의 큰 고민거리가 바로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였다고 지은이는 밝힌다.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추아가 쓴 <호랑이 어머니의 군가>(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는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지만, 이렇게 고압적인 ‘호랑이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 다수는 결국 ‘상처입은 호랑이’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주었던 학생들은 시키는 일은 곧잘 했지만 사유하는 힘이 딸렸고, 교수에게 ‘더 생각해보라’는 논평을 받으면 당황하기 일쑤였다. “제게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것인지 제발 이야기해 주세요.” 명문대 입학에 목을 맨 가족 모두가 기진맥진하게 된 데는 대학의 책임도 컸다. 대학은 학생의 대학진학적성시험(SAT) 성적이 부모의 재력을 나타낸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특정 매체의 대학 순위 발표가 ‘돈 주머니’와 연결되며 과장된 ‘대학 브랜드 엘리트주의’를 강화한다고 지은이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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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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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대학을 향해 치열한 경쟁을 끊어내라는 추궁을, 정책입안자들에게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의 반교육성을 일갈한다. 부모에게는 과잉보호를 대체할 수 있는 ‘권위적 양육 방식’을 권한다. 따뜻함과 엄격함, 감독과 자유 사이에 균형을 맞추라는 것인데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서 더 촘촘한 지침도 제공한다. 학령기에 따라 자녀들과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지, 대학 입학 전에 꼭 해야 할 경험은 무엇인지,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와 온 아이들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연령별로 어떤 허드렛일을 맡길 것인지까지 상세하게 일러준다.

‘헬리콥터 부모’를 준엄하게 꾸짖지만, 지친 마음을 달래며 당근도 준다. 현대인은 ‘마을 전체가 한 아이를 키운다’는 의식을 잃어버렸고 동네에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던 옛날과 달리 이제는 부모 스스로 엄청난 육아전문가가 되어 각자 스트레스 속에서 ‘내 자식’만 키울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부모의 결혼이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잉보호는 가족 모두의 행복을 망칠 수 있다.

지은이는 부모들에게 “자신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권한다. 항공기 구난지침에 나와 있듯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 전에 가장 먼저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이다. 자녀 대학등록금보다 부모 은퇴자금이 먼저고, 부모가 잘 살았을 때 자녀도 부모의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 결국 이는 철학자 미셸 푸코가 강조한 ‘자기배려’의 기술과도 연결되는 일이 아닐지. 지은이는 강조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돌볼 때 가장 큰 능력을 발휘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두레 제공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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