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먼 듯 가까운 존재, 카우보이와 무슬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화 리뷰] 나의 딸 나의 누나

"그 밤을 기억하네, 그때의 테네시 왈츠도. 이제야 알았네, 내 사랑을 잃었음을. 그 밤, 그들이 아름다운 테네시 왈츠를 연주할 때."

아버지 '알랭'(프랑수아 다미앙)이 마을 축제에서 미국 컨트리 명곡 '테네시 왈츠'를 부를 때, 16세 딸 '켈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문제 한 번 일으켜 본 적 없는 착한 딸. 동생 '키드'에겐 자상한 누나였다. 그런데 켈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날 저녁 파키스탄 이민자 집안의 무슬림 남자 친구와 함께.

오늘(23일)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나의 딸, 나의 누나'(감독 토마 비드갱)는 문명 간 충돌이라는 묵직한 주제에 실종된 가족을 추적하는 부자(父子)의 스릴러의 외투를 입혔다. 배경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 문화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프랑스 동부의 카우보이 공동체. 작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올랐을 때,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서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수색자'(1956)를 발견해냈다. '수색자'에서는 전직 보안관(존 웨인)이 동생 가족을 살해하고 조카딸을 유괴해 달아난 인디언(미국 원주민)들의 뒤를 쫓는다. 충돌의 대상이 인디언에서 무슬림 이민자와 테러 조직으로 바뀌었을 뿐, 낯선 존재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인간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프랑스 동부의 카우보이 마을 축제에서 미국 컨트리 음악에 맞춰 춤추는 아버지 ‘알랭’(프랑수아 다미앙)과 열여섯 살 딸 ‘켈리’(아가트 드론). /판씨네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성한 아들 '키드'(피네건 올드필드)가 대를 이어 켈리의 뒤를 쫓는 동안, 가족의 삶은 피폐해지고 일상은 무너진다. 이어 9·11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주저앉고, 마드리드와 런던의 열차에서는 폭탄이 터진다.

인물의 내면 풍경을 상상하게 하는 사색(思索)적인 광각 화면과 감정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음악도 수준급. 무엇보다 충돌하는 두 세계가 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뜻밖의 결말이 인상적이다. 좀 더 현명해진 젊은 세대들이 주도하는 두 세계의 화해를 의미하는지, 혹은 여전히 화해할 수 없는 차이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것 같다.

각본가로 더 널리 알려진 토마 비드갱의 감독 데뷔작. 그가 각본을 쓴 영화들은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2010년 '예언자') 한 개와 황금종려상 두 개(2012년 '러스트 앤 본', 2015년 '디판')를 받았다.

[이태훈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