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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IT 후마니타스] ① 애플과 빨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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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애플이 21일 공개한 아이폰7 프로덕트(레드) 스페셜 에디션. [사진 애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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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새 '아이폰7'과 '아이폰7 플러스'를 21일 공개했다. 아이폰7은 이미 지난해 출시됐지만, 이번에 등장한 제품은 빨간색이다. 기존 아이폰7, 아이폰7 플러스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제트 블랙)과 무광택 검정(매트 블랙), 실버, 골드, 로즈골드로 출시된 바 있다. 이번 새 제품은 이미 출시된 같은 제품의 작은 변주인 셈이다.

중국에서는 특히 빨간색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데, 중국 시장에 대한 애플의 구애인 것은 아닐까. 해석은 자유. 하지만 애플은 원래 빨간색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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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의 리더 '보노'를 아시나요
빨간색 아이폰7은 '프로덕트 레드'로 제작됐다. 프로덕트 레드(RED) 스페셜 에디션이다. 제품 판매 수익 중 일부를 아프리카의 후천성면역결핍(HIV/AIDS) 퇴치 연구에 기부하는 '착한 빨간색'이다.

프로덕트 레드는 기업이 빨간색을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 일부를 에이즈 퇴치 연구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2006년 영국 유명 밴드 U2의 리더이자 사회운동가인 보노(Bono·폴 데이비드 휴슨)와 바비 슈라이버(Bobby Shriver) 등이 처음 제안했다.

개념은 단순하다. 기업이 프로덕트 레드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빨간색 제품을 만들면, 해당 제품의 판매 수익 중 최대 50%가 글로벌 펀드에 기부된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가나, 르완다, 탄자니아, 케냐 등지에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데 쓰인다.

프로덕트 레드 운동이 시작되고 10년 동안 총 4억6500만달러(약 5220억원)의 기금이 모였고, 이를 통해 9000만명 이상의 아프리카 지역 에이즈 환자들이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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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레드. [사진 레드닷오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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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빨간색을 좋아해
애플은 프로덕트 레드 운동의 금전적 지주나 다름없다. 프로덕트 레드로 10년 동안 모은 기금 5220억원 중 1460억원 이상은 애플로부터 온 것이다. 애플은 프로덕트 레드가 시작된 2006년 당시 MP3 플레이어 '아이팟 나노(2세대)' 프로덕트 레드 스페셜에디션을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프로덕트 레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이팟 나노 3세대(2007년)와 아이팟 나노 6세대(2010년)를 비롯해 아이팟 셔플, 아이팟 터치, 기프트 카드 등 애플의 과거 주력 제품들 대부분에 빨간색 몸체가 적용된 바 있다.

최근 애플은 새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출시할 때마다 직접 가죽이나 실리콘으로 케이스를 만들어 팔고 있다. 애플이 직접 만든 케이스 중 빨간색은 프로덕트 레드 운동에 동참하는 제품이다. 빨간색 액세서리는 예외없이 프로덕트 레드를 후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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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레드 아이폰 케이스(왼쪽)와 아이팟 나노, 아이팟 셔플. [사진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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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짜리 앱 부터 11억원짜리 빨간 '맥프로'까지
애플의 빨간색 사랑은 기존 제품 주변에만 머물지 않는다.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 특별한 가격으로 프로덕트 레드를 소개하기도 한다. 2013년의 '맥프로'가 대표 사례다.

애플은 2013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 맥프로를 내놨다. 공산품에 불과한 컴퓨터를 경매에 부친다는 점이 독특하지만, 당시 맥프로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몸체가 온통 빨간색으로 만들어져 이른바 '레드 맥프로'로 불렸다. 광택이 나는 매끈하고 빨간 금속 몸체의 맥프로는 당시 경매에서 97만7000달러(약 11억원)에 팔렸다.

원래 애플은 소더비 경매에 빨간색 맥프로를 출품하며 예상 낙찰가로 4~6만달러(최대 약 6700만원)를 예상한 바 있다. 예상 낙찰가의 16배가 넘는 금액에 새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11억원짜리 맥프로가 특별한 부자만을 위한 기금 운동이라면, 애플의 응용프로그램 장터 '앱스토어'의 세계 에이즈의 날 캠페인은 평범한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다.

애플은 2014년부터 매년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전후해 약 보름 동안 동안 판매 수익 전액을 글로벌 펀드에 기부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폰용 앱에서 앱 내부결제를 통해 프로덕트 레드 서비스를 구입하면, 해당 수익금 전액이 전달된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스마트폰용 게임 '클래시오브클랜', '앵그리버드', '모뉴먼트 밸리' 등이 애플의 에이즈 퇴치 돕기 운동에 단골로 참여하고 있다. '심시티'나 '클래시로얄' 등 행사가 진행되는 그 해 높은 인기를 얻은 게임들도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앱들을 애플은 '앱스 포 레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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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비 경매에서 11억원에 낙찰된 프로덕트 레드 맥프로. [사진 소더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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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시'한 기부의 섬세한 경제학
기부활동 대부분은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한다. 읍소하거나 기부 목표인 이들의 딱한 처지를 사진으로 전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으로도 사람들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거리에서 모금활동을 하는 이들도 이러한 전파 방법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프로덕트 레드는 조금 다른 각도에 어필한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감정에 호소하는 대신 사용자의 스타일에 소구한다. 언제, 어디서나 눈에 띄는 빨간색 운동화와 헤드폰을 만들어 감각을 자극한다. 하물며 빨간색 스마트폰이라니. 많은 이들이 쉽게 지갑을 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자가 추가로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도 프로덕트 레드는 영리하다. 빨간색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수익 일부를 전달하는 구조는 사용자가 착한 일에 동참했다고 생각하도록 한다. 사용자와 기업 모두가 기부에 동참하게 되는 셈이다.

팀쿡 애플 CEO는 이날 빨간색 아이폰7을 발표하며 "10년 전 애플과 레드(RED)가 함께 일을 시작한 이후 우리 고객들은 다양한 애플 제품 구매를 통해 에이즈 퇴치 운동에 기여해 왔다"라며 "이번에 선보이는 빨간색 스페셜 에디션 아이폰은 레드와의 파트너십을 기념해 선보이는 가장 큰 행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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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에이즈의 날 애플의 프로덕트 레드. [사진 애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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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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