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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매경이 만난 사람] 증권업 26년만에 은행업 진출하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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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전통 은행업과 인터넷은행을 어떻게 같이 하냐고요? 그게 바로 마른날엔 짚신 장사와 비 오는 날엔 나막신 장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1991년 4월이니 여의도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딱 이맘때였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동원증권의 전신인 한신증권 대리로 금융업에 발을 디딘 지가 벌써 26년 전이다. 이후 동원증권은 2005년 한국투자신탁을 인수해 한국투자증권이 됐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태어났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금 4조원이 넘는 초대형 투자은행으로 변모했고,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인터넷전문은행 한국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면서 동시에 우리은행 지분도 4%나 인수했다. 김 부회장도 이제는 대형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은행지주사의 수장이 된다.

봄바람치고는 아직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는 3월의 여의도에서 김 부회장을 만났다. 한국투자금융지주 로고가 오른쪽 가슴에 큼지막하게 박힌 검은색 플리스를 입은 그가 나타나 반갑게 웃었다. 소탈하다 못해 소박하다. 빳빳한 와이셔츠와 핀 스트라이프 양복을 갖춰 입고 머릿속으로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전형적인 뱅커를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돈보다 먼저 사람을 보는 게 그의 오랜 경영철학이니까.

하지만 경영에서는 누구보다 냉철한 게 그다. 최고경영자이면서도 본인이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스스로 공부해서 결정하는 타입이다. 바닥부터 너무 잘 아니까 설명도 쉽다. 앞으로 은행업의 전략을 물어봤더니 짚신 장수와 나막신 장수의 비유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술술 풀어 나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인터넷은행 한국카카오뱅크의 대주주로 참여해 국내에서 23년 만에 처음으로 은행업 인가를 따냈다. 이제 한국투자금융지주가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 됐다.

▷ 카카오뱅크 덕분에 우리도 은행지주사가 되기는 했지만 카카오뱅크는 길게 보고 투자한 것이다. 당장 수익을 낸다기보다는 5년 이후를 보고 길게 투자한 것이다.

― 5년이 긴 건가? 장기 투자라고 보기엔 너무 짧은 것 같은데.

▷ 아니다. 의외로 금융업은 굉장히 빨리 바뀔 것 같다. 머지않아 소비자가 금융기관을 줄 세우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은 대출을 한 번 받으려면 이 은행 저 은행 찾아다니면서 어디가 싼지 다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출받으려는 사람이 은행을 줄 세워놓고 누가 나에게 제일 싼 금리를 줄지 결정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요즘 증권사에 비대면 계좌가 급증하고 있는데 다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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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전통적인 의미의 은행업은 사양 산업이라는 얘기인데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지난해 우리은행도 샀다(한국투자금융지주는 지난해 우리은행 인수전에 참여해 지분 4%를 인수해 과점주주 지위에 올랐다). 전통적인 은행업에도 투자하고 인터넷은행도 동시에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그게 바로 마른날엔 짚신 장사와 비오는 날엔 나막신 장사하는 거다. (웃음) 은행업은 수십 년의 역사가 있으니까 그만큼 노하우가 있다.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 역시 앞모양은 달라도 뒷모양은 은행이다. 대출심사도 해야 하고 자산운용도 한다. 마케팅 방식은 달라도 은행은 같은 거니까 우리도 배워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 은행업 투자를 통해 노하우를 배워서 인터넷은행에 전수시키겠다는 얘기인가.

▷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한다. 투자는 하나의 방법이다. 가령 골드만삭스가 펀드매니저를 해고하고 IT기술자로 채우고 있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나는 로보어드바이저라고 하면 자산을 배분만 해주는 곳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종목 선정까지 모두 해준다는 얘기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공부해봐야 한다. 책도 보고, 우리랑 거래하고 있는 운용사의 브리핑도 듣고, 리서치 애널리스트들의 설명도 듣고,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 등도 반기에 한 번은 꼭 들러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중국의 변화는 놀랍다. 한국투자파트너스가 7년 전 비상장이던 카카오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내고 빠져나온 적이 있는데 이후에 중국 텐센트가 들어왔다. 텐센트는 지금도 카카오 주식을 갖고 있는데 투자하면서 카카오의 노하우를 많이 배워 갔다.

― 중국에서 핀테크 변화가 빠르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런 기업이 없을까.

▷ 지나친 규제와 기득권자들 간의 마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가 가능하려면 최종 소비자가 가장 우선이 돼야 한다. 가령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부동산 중개를 해주려고 한 적이 있는데 기존 부동산중개업자들과 부딪혀 불발에 그친 적이 있다. 카카오와 대리기사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에게 물어봐서 집을 어디에서 알아보는 게 편하냐, 대리기사를 어디서 부르는 게 편하냐고 물어봐서 결정하면 될 텐데 우리는 그게 안 된다. 기득권을 지키려다 보면 변화나 혁신은 어렵다. 기존에 있는 것만 답습하면서 살아야 한다.

― 요즘 증권사들마다 점포 대형화 경쟁이 심하다. 은행은 점포를 줄이는데 증권사는 대형화라니 거꾸로 가는 건가.

▷ 요즘 투자자들은 주식·채권만 하는 게 아니다. 상품이 정말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주식형펀드를 내놓으면 몇 조원짜리 펀드가 조성됐는데 지금은 그런 시장이 아니다. 오히려 해외투자와 대체투자가 트렌드다. 과거처럼 주식·채권으로 국내에서 큰돈 벌기는 어려우니까 금리 1%짜리 저금리 시대에 어느 정도 리스크를 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상품을 고객들에게 공급해 주려면 한 사람이 다 알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 예전처럼 10평짜리 점포에서 주식이나 채권 같은 것으로 조금 팔아서는 이런 게 안 된다. 지점을 크게 하고 여러 사람이 각자 전문성 있는 분야를 다뤄줘야 한다. 그래서 점포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있는데 그런 건 아마 일부일 것이다.

꿈을 줘야 사람 얻고…내돈 먼저 잃을 각오해야 고객돈 얻는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증권업계의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타이틀을 고수하고 있다. 2007년 업계 최연소 CEO였던 그는 10년 이상 CEO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도 지난해 가치투자펀드 10년을 자축했을 정도로 한 회사에 오래 남아 있다. 이직이 유난히 많은 금융투자업계인 점을 감안하면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의 인재 관리가 그만큼 특출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 시절 때 우수한 인재 유출이 심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대우를 잘해주는 게 문제가 아니더라"며 "단순히 보상보다는 꿈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게 우리의 꿈이고 같이 가자고 했을 때 한마음으로 같이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보상에 연연해서 직장을 옮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랫사람들에게도 한결같이 존댓말을 쓴다. 한껏 낮춰 쓰는 말이 '말해보소' '해보소' 하는'~소'체다. 반말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꾸짖지 않거나 엄격하게 교육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전을 제시하고 이 비전을 향해 같이 갈 사람인지 아닌지를 꾸준히 되묻는 것이 그의 인재 관리 비법이다.

김 부회장은 돈에 대해서도 철저하다. 특히 그 돈이 고객 돈일 때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그는 "사람을 얻을 때는 꿈을 줘야 하지만 남의 돈을 구할 때는 내 돈을 먼저 잃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이 3년 전 고객 수익률에 따라 직원을 평가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직원들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직원들에게 "금융업으로 번 돈이 사회에 기여하고 번 것이어야지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벌 수는 없지 않겠냐"고 응수했다. 고객 수익률은 마이너스인데 회사는 돈을 버는 기형적인 수익구조로는 오래 못 간다고 본 것이다.

4조원짜리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된 한국투자증권이 자본을 활용하는 철학도 여기서 비롯된다. 대형 투자은행이 된 만큼 위험을 크게 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구조화 투자금융 상품에 투자할 때 증권이 먼저 위험을 떠안고 덜 위험한 부분은 고객들에게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부회장은 "4조원이라고 하면 큰 것 같지만 거대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보면 티도 안 난다"며 "다만 이 돈으로 투자의 바다에 나가면 더 큰 리스크가 있는 상품에 접근할 수 있으니까 그때 고객들보다 먼저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들에게 상품을 팔 때 '이 상품이 만에 하나 손실이 나면 우리가 먼저 손해를 보고 그 다음에 고객님이 손해를 보십니다'라고 하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냐"며 "자신 있으니까 이렇게 파는 거다"고 웃어넘겼다.

김남구 부회장은…
원양어선 선장처럼 현장 진두지휘하는 금융리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196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1987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3월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경영관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1월에는 중국 칭화대에서 Executive MBA 학위를 땄다.

그의 첫 직장은 수산회사인 동원산업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7년 동원산업에 입사해 일본 유학 직전인 1989년까지 다녔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수산업을 내려놓고 개척정신이 필요한 금융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1991년 동원증권 명동지점 대리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이듬해인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회사를 대폭 성장시켰다.

그가 대학교 4학년이던 1986년 겨울, 북태평양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 오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재벌가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한 번 사회생활 해보자'는 오기가 나 배 위에서 하루 18시간 넘는 중노동을 4개월간 했다. 다시 육지를 밟은 그는 '이제 죽는 것 말고 땅 위에선 겁날 게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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