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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아침햇발] 봐줄 때가 아니다 / 여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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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여현호
논설위원


2006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초청 토론회에 패널로 나섰을 때의 일이다. 외교·통일 분야의 질문을 하나 했더니 판에 박힌 답변이 나왔다. 그런데 한 대목이 이상했다. “이런 뜻이냐”고 되물어도 허술함과 모순을 모르는 눈치다. ‘걸렸다’고 생각했다. 엄하게 추궁해 무지와 통찰력 부족을 자인받는 일만 남았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으로선 망신이겠다. 사정없이 따지려는 순간 박 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챈 듯 당황한 눈빛이었다. 애원하는 듯도 했다. 마음이 약해졌다. 추궁하긴 했지만 무디고 약했다. 도끼 대신 뿅망치였다.

추상같이 물었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수 있다. 그래도 그로서는 기자에게 추궁당하는 것이 십수년 뒤 검찰 조사실에서 구속을 걱정하면서 닦달당하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부끄럽다. 그는 사람들의 ‘모른 체’가 쌓여 대통령까지 올랐다. 마음이 약해져서건, 정치적 이득을 노려서건, 혹은 몰라서건 많은 이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그의 허물과 부족을 못 본 체하고 넘겼다. 그 결과가 지난 4년이다.

바로잡을 기회는 또 있었다. 2014년 말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이 돌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둔갑했을 즈음, 비선 실세는 정씨가 아니라 그의 전처 최순실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최씨가 매일같이 대통령을 만난다거나, 최씨 등 몇몇이 세상사를 다 주무른다는 첩보였다. 지금이라면 달랐겠지만, 그때는 ‘설마…’ 했다. 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된 박관천 경정이 검찰에서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이고,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는 소식에도 ‘아무러면 설마 그럴까’라는 생각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언론과 정치는 총체적으로 게을렀거나, 아니면 일이 터져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에 빠졌을 것이다. 주어진 책무를 외면한 것은 같다.

반성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제 구속과 기소의 갈림길에 선 박 전 대통령 앞에서 또다시 마음이 약해지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정경유착과 뇌물로 처벌된 전직 대통령이 처음도 아니다. 나치 부역자 숙청 당시 ‘인간은 누구나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관용론에 대해, 알베르 카뮈는 “지난날 과오를 범한 자를 처벌하지 않은 것이 오늘날 같은 과오가 반복되게 만든 원인이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일의 범죄를 고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금이 딱 그렇다. ‘죄를 저지른 자를 눈감아주면 무고한 사람을 벌하는 결과가 된다’는 법률 격언도 있고, ‘면죄는 항상 더 큰 죄로 이어진다’는 법률 격언도 오래됐다.

요즘의 관용론은 ‘나라의 통합과 품격’을 내세우지만, 무분별한 관용이 더 큰 해악이라는 주장은 보수에서도 진작에 나왔다. “잘못한 공직자들을 법에 따라 처벌하고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는 대신 ‘국민통합’이란 미명하에 선심 쓰듯 용서하는 등 무원칙하게 다뤘다. … (이는) ‘쉽게 잊어버리기’를 제도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공적인 온정주의는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중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지도층이며 권력자일 경우 특히 엄격하게 처벌되는 것이 중요하다.”(박효종, ‘로마인들과 법의 정신’)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은 우리 사회가 꼭 기억해야 할 일이다.

‘모른 체’하지 말아야 할 일은 또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이나 미래 권력의 작은 과오 조짐에도 이제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지나고 보니 소문이나 첩보는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제2의 최순실’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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