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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제재 ‘종이호랑이’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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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공정위, 한국화낙·코텍 등 3개사에 시정명령만

기술요구 정당성 인정·요구서 미발급만 제재 논란

2010년 법개정 뒤 5건 제재…과징금 1건 16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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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요구하는 이른바 ‘기술 탈취’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가 솜방망이에 그쳐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공정위는 21일 한국화낙, 에이에스이코리아, 코텍 등 3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기술자료 요구서를 발부하지 않은 채 부품과 금형의 도면을 요구한 사건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도급법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정당한 사유로 요구하더라도 요구 목적, 비밀유지 사항, 대가 등을 명시한 기술자료 요구서를 중소기업에 발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3개 대기업은 2013년 6월부터 2016년 5월까지 23개 중소기업으로부터 공장자동화 로봇에 장착할 주변장치(부품)나 반도체장비 등에 사용되는 부품용 금형을 납품받으면서 146건의 부품·금형 도면을 요구했는데, 법에서 의무화한 기술자료 요구서를 중소기업에 주지 않았다. 하도급법상 과징금은 거래금액(하도급대금)의 최대 2배까지 부과할 수 있다. 3개 대기업의 하도급 대금은 85억원으로, 법상 최대 과징금은 17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 없이 시정명령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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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대기업들의 기술자료 요구 사유가 부품이나 금형의 불량으로 생산라인이 멈출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어서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법 위반 정도가 가볍고, 법 위반 관련 하도급대금 산정도 어려워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3개 대기업의 기술자료 요구는 공정위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 행위 심사지침’이 예시한 4가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침은 ‘정당한 사유’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개발한 특허의 출원, 공동 기술개발에 대한 약정 체결, 하도급대금 인상 폭 결정, 제품 하자 원인 규명에 필요한 경우로 국한하고 있다. 공정위는 2014년 7월 지침을 개정하면서 ‘정당한 사유’ 예시가 법 취지에 비춰 지나치게 넓다며 9개 중 5개를 삭제했다.

또 솜방망이 제재는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이라는 법 취지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는 기술 탈취가 실력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고 보고 2010년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제재 규정을 도입했다. 2011년에도 재차 법 개정을 통해 기술 탈취를 한 대기업은 중소기업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법 개정 이후 제제한 기술 탈취 사건은 7년간 단 5건에 그친다. 그 중에서 4건(80%)은 시정명령에 그쳤고, 2015년 엘지(LG)화학의 기술 탈취 사건에도 고작 1600만원의 과징금만 부과했다. 공정위 상임위원을 지낸 지철호 중소기업중앙회 감사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겪는 주요 애로사항인 기술 탈취를 근절하려면 보다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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