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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한국, 돈 풀 생각보단 바이오 등 성장동력 찾아라… 그것도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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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 넘어 부활한 日本] [10·끝] 한국이 가야할 길… 전문가들의 조언

좋은 정책은 정권에 상관없이 계속 이어져야 '축적 효과' 생겨

도시 면적만 넓히는 신도시 대신 기존 도심 '콤팩트 개발' 해야

고령화 시대, 현역 오래 뛸 수 있게 재택 간병 인프라도 더 늘려야

야마자키 히로유키(가명·46)씨는 일본 대기업 주재원으로 서울에 7년 근무하고 작년에 귀임했다. 서울 생활 첫 3년 동안 일본 경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후유증에 동일본 대지진이 겹쳐 골병이 들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2년 말 재집권해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인 게 그 직후였다. 야마자키씨는 "지금은 떠날 때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며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주가가 올랐고, 도쿄 도심도 몰라보게 말끔해졌다"고 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격차가 심하고 스트레스가 큰 탓인지 사회 전체에 '질시'의 정서가 팽배해 있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수렁에 빠져드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취재팀은 그동안 경제학자와 과학자, 부동산 전문가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한·일 양국에서 81명을 만나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분석하고, 한국이 갈 길을 물었다. 그들의 충고는 다섯 가지로 압축됐다.

새 성장 동력을 찾아라

이향철 광운대 교수는 "돈 풀어서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순 있지만 궁극적으론 다음 성장 동력을 찾아야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풀린다"고 했다. 불황에서 벗어난 일본은 이미 바이오·인공지능·자율주행차 같은 4차 혁명 기술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농업과 관광을 새 수입원으로 키우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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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윤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예전엔 우리 기업이 의사 결정이 빨랐는데, 이젠 일본이 우리보다 더 빠르다"고 했다. 임경순 포스텍 과학기술진흥센터장은 "과학에서도 우리가 벌써 경쟁이 불가능할 정도로 뒤진 분야가 많다"고 했다.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좋은 정책, 정권 관계없이 이어져야

일본 민주당 정권은 2010년 '신규 졸업생 헬로 워크'라는 청년 일자리 지원센터를 전국 57곳에 만들었다. 이 조직은 아베 정권 들어 더 강화돼 취업 성사 건수가 더 늘어났다(2011년 7만5000건→2015년 10만6000건·후생노동성). 이지평 L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전(前) 정권이 시작한 정책도 좋은 건 이어가야 '축적 효과'가 생긴다"고 했다.

위에서 아래로 지시를 전달하는 건 우리가 빠르지만, 수평적으로 부처끼리 조율하고 협력하는 건 일본이 더 잘한다. '1억총활약담당상'처럼 산하에 부처가 따로 없는 특임장관 자리를 만들어도 정책 성과가 나오는 게 이 덕분이다. 이학주 한국관광공사 일본팀장은 "외국인 관광객 증가도 외무성·재무성·국토교통성 등이 협력해서 이룬 성과"라고 했다.

신도시보다 도심 재개발이 중요

고령화 시대에 신도시 자꾸 만들면 자칫 유령 도시가 되기 쉽다. 일본이 이미 여러 번 저지른 시행착오이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도시보다 도심을 알차게 재개발해 서울이란 도시 자체를 반짝이게 만드는 게 정답"이라고 했다. 이세 나오히토(伊勢尙史) 국토교통성 기획조정관은 "일본은 고령화 추세에 맞춰 도시를 넓히는 게 아니라 핵심 기능을 한곳에 집중해 도시 면적을 축소하는 '콤팩트 시티' 정책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가계 부채, 최악 상황에 대비하라

한국은 가계 부채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져도 고민, 차가워져도 고민이다. 나카가와 마사유키(中川雅之) 니혼대 교수는 "양국 상황이 다르지만 정책 판단이 어려울 때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책을 짜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과거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이 부실화되고 소비까지 얼어붙었다. 나카가와 교수는 "일본처럼 안 되려면 1991년 일본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을 미리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고령 인구, 오랫동안 현역서 뛰어야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를 견뎌내려면 개개인이 일터에서 최대한 오래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 기존에 살던 곳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도록 재택(在宅) 간병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도심 외곽에 요양원을 짓는 것보다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만족도도 높다는 게 일본이 얻은 교훈"이라고 했다. 김현철 서울대 교수는 "저성장에 고령화까지 겹치면 정말 큰일 난다"며 "정신 차리지 않으면 본격적인 고통은 이제부터일 수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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