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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약점 많았던 이승만 정부, 그래도 품격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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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 그리고 공유정부…' 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백지상태서 민주주의 정부 세워 亂世 극복 위해 애썼던 지도자

본보기 삼되 관료주의 탈피해야…

상호소통 막는 정부의 벽 허물고 국민과 교집합 키워 협동 필요"

행정학계 원로인 김광웅(77)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가 최근 출간한 새 연구서는 '이승만 정부 그리고 공유(共有) 정부로 가는 길'(기파랑)이다. 60여 년 전 정부에 대한 연구와 미래의 정부에 대한 전망이 700여 쪽 분량의 두꺼운 책 한 권에 1·2부로 묶여 있다.

지난주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만난 김 교수는 "내년 정부 수립 70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 역대 정부의 시작이자 원형인 이승만 정부에 대해 꼭 짚고 싶었다"고 했다. 역사학계와 정치학계에서 이승만의 리더십을 많이 다뤘지만, 행정학자로서 당시 정부의 행정 시스템과 정책·인사·재정·교육까지 속속들이 분석해 보려 했다는 것이다.

역대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요소는 이승만 정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최고 지도자의 아집과 독선, 소수 참모에만 의존해 흐려진 판단력, 망각된 법치(法治), 이인자(二人者) 정치의 실패 같은 것이 그렇다. 기껏 법을 마련해 놓고도 법외(法外) 기구가 존재하는 등 편법·탈법이 이뤄졌고 국가 자원을 관리하는 능력과 정책 대응력이 부족했다. 인재 풀이 턱없이 빈약했지만 새로운 인물이 진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정의 벽이 높았다.

조선일보

김광웅 교수는 “제1공화국 정부에선 장관이 국회의원에게 당당히 맞서는 등 지금 정치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많았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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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교수는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신생 국가의 현실에서 이승만이 난세 극복을 위한 큰 지도자였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부를 세웠습니다. 필요하면 미국에도 맞서 원조를 얻어냈던 외교의 달인이었고, 장관들과 격의 없는 토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 말에는 향후 경제 발전의 기틀도 자리 잡았고요." 대통령뿐 아니라 관료 중에도 훌륭한 인물이 많았다. "이시영(초대)·김성수(2대) 부통령이나 조병옥 내무부 장관은 격조 있으면서도 강하게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물러났습니다. 지금 같으면 감히 그럴 수 없을 테지요."

그런 점에서 지금 정치는 그때보다 오히려 더 엉망이 됐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세계를 보지도 못하고 역사의식도 없는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했거나 대통령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달라질 게 없지 않겠어요?"

김대중 정부 때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맡아 정부 조직 개편에 참여했던 김 교수는 책의 2부에서 과거를 귀감으로 삼아 '미래의 정부'에 대해 논한다. 그가 말하는 '공유 정부'란 정부와 국민(시장·기업 포함)이 권력을 나눠 갖는다는 개념이다. 과거 수없이 되풀이됐던 '작은 정부'나 '규제 철폐' 정도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잘하지 못하는 것, 하지 않아도 될 일은 아예 손을 떼란 얘깁니다. 상호 소통을 막는 정부의 벽은 허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부를 없앤다'는 허황한 말을 할 게 아니라 교육부 내 부서 중에서 학교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곳을 없애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김 교수의 '공유 정부'에선 관(官)이 갑(甲)이고 민(民)이 을(乙)이 아니라 서로 동등한 '관갑민갑'이나 '관을민을'이 된다. "정부는 국민과의 교집합을 키워 협연(協演)이나 협주(協奏)가 되도록 나서야 합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배울 것은 배우되, 그때부터 이어져 온 뿌리 깊은 관료주의는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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