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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월드 톡톡] 눈사태 속 '렛 잇 고' 부르며 48시간 버틴 꼬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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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이탈리아 호텔 속 9세 소년

동화 들려주며 "꼭 구조될거야"… 겁먹은 6·7세 아이들 다독여줘

조선일보

지난 21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중부지방 눈사태로 무너진 호텔에서 구조된 아홉 살 ‘꼬마 영웅’ 에도아르도 디 카를로(가운데). 에도아르도는 무너진 건물 안에서 6·7세 ‘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며 이틀을 기적처럼 버텨냈다. /EPA 연합뉴스


눈사태로 붕괴된 호텔 내부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마실 물도, 먹을 것도 없었다. "어른들이 꼭 우릴 구해주러 올 거야" 아홉 살 남자아이는 배고픔과 두려움에 떠는 6·7세 아이를 안아주며 다독거렸다. 노래도 불러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악몽 같은 48시간이 지났고, 천사처럼 나타난 구조대원들이 세 아이를 세상의 밝은 빛 속으로 구출했다.

최근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발생한 눈사태 때 동화에나 나올 법한 '꼬마 영웅'의 활약이 알려져 이탈리아 전역을 감동시키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이 2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18일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주(州) 산간 지방에 있는 리고피아노호텔에 눈사태가 발생했다. 폭 300m, 무게 12만t에 달하는 엄청난 눈이 시속 90여㎞ 속도로 호텔을 덮쳤다. 호텔은 무너졌고, 눈이 그 위를 가득 덮었다.

눈사태 당시 게임방에 갇힌 에도아르도 디 카를로(9)는 무서웠다. 사방은 캄캄했고, 주변이 모두 막혀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작았다. 잠시 후 에도아르도는 게임방에 자기보다 어린 루도비카 파레테(6)와 사무엘 디 미켈란젤로(7)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 공간의 산소는 줄었지만 에도아르도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동생뻘인 두 아이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에도아르도는 둘을 안아주고,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를 불러주거나 동화를 들려줬다"며 "이틀 전 생일이었던 여자아이 루도비카가 당시 '겨울왕국' 주인공인 엘사의 옷을 입고 있었을 만큼 '겨울왕국'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도아르도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알려졌다. 페스카라병원의 심리치료사 알레산드라 파냐니는 "세 아이가 함께 놀고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세 아이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아이의 부모들은 생사가 엇갈렸다. 루도비카는 눈사태에서 살아남은 부모 품으로 돌아갔지만, 에도아르도의 부모는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무엘의 부모는 실종 상태다.

한편 긴급 구조대는 이날 오전 현재 사망자 18명의 시신을 수습했고, 나머지 실종자 11명에 대한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런던=장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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