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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경제성장 영원하지 않다"…日서 '저성장이 정상' GDP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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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성장론에 문제제기 "25년 제로성장에도 편익은 비약적 향상"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 언제부터인가 '경제성장'은 당연한 것이 됐다. 그런데 일본 아사히신문은 하라 마고토 편집위원의 기명기사를 통해 "경제성장은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사히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핵심인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에 대해 "상당히 위태로운 정책"이라고 규정했지만 현재 일본 여론은 아베노믹스를 지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화점의 새해 마수걸이 세일 대기 행렬
[오사카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2017년 첫세일 시작 앞둔 2일 오전 개점을 기다리는 긴 소비자 행렬. 소비사회는 성장을 지탱한다.



이런 지지 배경에 대해 아사히는 "성장이여 다시 한 번", "물가는 반드시 올라가 일본경제는 선순환 된다"는 아베 총리의 공약에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일본은 정부도 국민도 고도성장이나 거품경제를 지나면서 세입이나 급료가 불어나는 것에 익숙해졌으므로 이런 흐름을 전제로 제도나 인생을 설계해 왔다.

그러나 25년간 명목성장률은 거의 제로였다. 그렇다고 제로 성장이 악(惡)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잃어버린 20년 동안에도 일본인의 삶은 풍부했었다. 택배 덕택에 먼 곳의 특산 신선품을 쉽게 입수할 수 있고 비데의 보급으로 화장실은 각별히 쾌적해졌다.

하지만 편익의 비약적인 향상은 국내총생산(GDP)이라고 하는 척도에선 보이지 않는다. GDP에서는 보이지 않는 풍요로움의 향상을 고려하지 않는다. GDP 늘리기 경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경제사에서 지금 같은 경제성장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200여 년 전이다.

GDP의 역사는 그 한참 뒤에 시작됐다. 현재의 GDP는 1930년대 영국, 미국에서 대공황의 대책을 모색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기 위한 생산력 분석에 기초해 창안됐다.

일반적으로 성장의 기점은 1760년대 영국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서기 1년~2000년대의 세계의 성장을 추정한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에 의하면 1인당 GDP는 1820년대 이후 늘었다. 사유재산, 교통통신수단 등 문화·제도가 정비되어 풍요로워진 시기다.

사에키 게이시 교토대 명예교수는 성장을 필요로 한 이유에 대해 경제이론은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지만, 원래 냉전기에 자본주의 진영이 사회주의 진영에 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냉전종식 뒤 성장의 한계나 폐해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조차 거의 사라졌다. 1970년대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 정도가 자원낭비와 환경악화를 부른 경제성장을 추구한 인류에 대한 경고였다.

현재 세계경제의 성장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뒤 마이너스 성장에 빠진 선진국은 이전과 같은 성장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3년 전 장기정체론 등 저성장 일상화 주장들이 속속 나왔다.

최근 일본과 미국,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려는 듯 제로금리 정책, 양적 금융완화, 마이너스 금리정책 등 성장을 되찾기 위한 이례적인 완화책을 차례로 동원하고 있다.

이같은 시도에 대해 일본은행 출신으로 세계 금융사에 정통한 이와무라 미쓰루 와세다대 대학원 교수는 "이것은 긴 안목으로 보면 중앙은행 종말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정부에서 독립할 필요가 있는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돈의 가치가 변함없는 금융정책을 계속하는 것이 경제의 안정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중앙은행은 정부와 함께 움직인다.

경제사학자 이노키 다케노리 오사카대 명예교수는 인류가 성장을 구가한 최근 200년을 "경제사 가운데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라며 "저성장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성숙이 필요한 시점"고 강조했다.

19세기 경제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제로성장의 정상사회를 구상했다. 그런데 근대경제학은 경제성장을 제외하고는 이야기조차 안 된다. 모든 경제이론이 성장 지속을 전제로 논의된다.

최근 현실사회에 변화의 조짐이 나왔다. 상품을 사지 않고 공유하는 공유경제는 대량소비경제에 선을 긋는 움직임이다. 4반세기에 걸쳐 제로 성장기를 보낸 일본인의 의식 변화도 생겼다.

하쿠호도생활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현상이 앞으로도 특별히 변화는 없다'고 보는 사람이 작년 54%로 9년 전보다 22%포인트 늘어났다. 저성장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연합뉴스

백화점의 새해 복주머니 후쿠부쿠로 구입 경쟁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1일 오전 도쿄 세이부 이케부쿠로본점에서 마수걸이 세일 복주머니(福袋) 구입 경쟁하는 고객들.



세계가 직면한 저성장이 성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인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앵거스 매디슨의 2000년간 성장률 추계를 보면 최근 200년의 2∼3% 성장은 마치 거품경제를 나타내는 급등곡선 같다.

최근의 성장률 둔화는 오히려 경제 활동의 정상화를 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성장은 영원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쪽이 좋은 것 같다고 아사히는 결론지었다.

작년 여름 일본에서 GDP 통계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는데, 배경에는 일본은행이 초금융완화를 해도 GDP가 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초조함이 있었다고 지적된다. 올해 또 일본에서 GDP 논쟁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tae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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