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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법정관리 기업 돈내라?"...구조조정서 시장원칙 스스로 깬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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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한진해운(117930)발(發) 물류대란 해결을 위한 정부의 대주주 고강도 압박이 논란을 빚고 있다. 시장 원리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을 내건 정부가 주주의 유한 책임을 무시하는 등 스스로 시장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 최대주주(지분 33.23%)인 대한항공은 전날 긴급 이사회를 열고 한진해운에 600억원을 담보 대출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항공이 지난 8일부터 불과 열흘 사이 벌써 네 차례 이사회를 열고 같은 안건을 논의한 것은 한진해운 추가 지원을 촉구하는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다.

정부는 지난 5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진해운 선박의 화물 하역을 위한 자금은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총대를 멘 이후 한진그룹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5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11일)에 이어 급기야 지난 1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섰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 노력이 매우 미흡했다”며 “한 기업의 무책임함과 도덕적 해이가 경제 전반에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작심 발언’으로 물류난 해결을 위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와 그룹의 추가 지원을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재계와 학계에서는 정부의 이런 압력이 법 원칙을 무시한 ‘관치’라며 우려하고 있다. 국내 상법(331조)은 “주주의 책임은 그가 가진 주식의 인수가액을 한도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주주의 유한 책임’ 원칙이다. 주식회사에 투자하는 주주는 개인 재산으로 회사의 채무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학계에서는 주주의 유한 책임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주식을 시장에서 사고파는 ‘주식 양도의 자유’도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등이 한진해운의 알짜 자산을 다 빼먹었으니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 오너 일가가 친족·임원·계열사 등을 동원해 자기 지분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황제 경영’으로 회사 이익보다 사익을 챙겼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영자가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를 위반했다면 사재 출연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검찰 고발 등을 통해 법적 책임을 추궁하면 될 일”이라며 “도의적으로 돈을 내라는 것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고, 계열사가 자금을 대라는 것도 배임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업 구조조정 관련 법과 제도가 굉장히 잘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과거 정부 비호를 받고 컸으니 통제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공무원 태도와 여론 재판 등으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면서 “구조조정 때마다 계열사에 연대 책임을 지라고 하면 기업 환경이 극도로 악화하고 기업가 정신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회사법상 주주 유한 책임의 원칙은 과실이 없는 주주를 보호하려는 것이지 불법·부당 행위로 부실을 초래한 지배주주를 면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한진 오너 일가와 계열사가 한진해운에 신규 자금을 대는 것은 도의적 차원이 아니라 법률적 책임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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