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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진화한 '네티즌 수사대'…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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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소싱 수사인가, 무분별 신상털기인가

아시아경제

네티즌수사대(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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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부장은 일요일 저녁이면 '복면가왕'을 꼭 챙겨 본다. 복면을 쓰고 나온 이들이 기량을 펼치는 것을 편견 없이 감상하는 것이 좋고, 노래만 듣고 이 사람이 누굴까 상상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의 궁금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방송이 끝난 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어김없이 복면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 덕분. 이들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의 각종 정보를 수집해 사실을 밝혀내거나 단서를 찾아낸다. 복면가왕처럼 TV 프로그램의 제한된 정보로도 복면 뒤 얼굴을 귀신 같이 밝혀낸다. A부장은 궁금증이 해결돼 좋아해야 할지, 보는 재미가 반감돼 싫어해야 할지 난감하다.

네티즌 수사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활동 영역이 다방면으로 넓어져 누구나 이들의 수사력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연예인의 열애 대상을 찾아내고 논란이 된 인물의 신상을 터는 것만이 네티즌 수사대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대중이 쉽게 접하는 예능 프로그램 소재는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상을 올리는 평범한 삶 곳곳에도 이들의 관심이 쏠릴 수 있다. 대학생이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특출한 외모 때문에 이름과 재학 중인 학교가 공개된 사례가 심심찮게 있을 정도다.

◆네티즌 수사대의 진화 = 인권 침해 소지는 여전하지만 네티즌 수사대는 최근 전문성을 갖춰가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의 송유근 군 논문 표절 의혹이다. '천재소년'으로 유명했던 송 군의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해 네티즌들은 각종 근거를 들어 비판했다. 이들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물리학 분야의 논문을 상세히 비교하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송 군의 논문을 게재했던 저널은 철회를 결정했다. 네티즌 수사대가 박사학위 논문을 검증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한 것이다.

네티즌 수사대가 진화하는 모습 중 하나는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국정원 댓글 사건은 네티즌들이 대선 기간 미심쩍은 댓글을 등록하는 SNS 계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 2012년에는 성폭행 가해 학생이 교사 추천으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합격하자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 결국 입학을 취소시키기도 했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2013년 보스턴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의 용의자를 추적하는 데도 네티즌 수사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건 당시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분석해 수상한 인물을 수사 당국에 제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크라우드소싱 수사'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다.

◆무분별 신상털기도 여전 = 하지만 네티즌 수사대와 같은 온라인에서의 집단 활동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정당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그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고, 숫제 한 개인의 신상을 털어 피해를 입히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확산됐던 일반인 신상 유포 SNS 계정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유흥주점에서 일했다는 한 여성의 사진이나, 유흥업소에 출입한 남성들의 사진, 지하철 임신부석에 앉은 남성 사진 등이 이런 계정들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검증받지 않은 네티즌 수사대가 일반인들에게 권력을 행사한 모양새가 됐다. 결국 네티즌 수사대의 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네티즌 스스로의 자정기능이 제대로 작동돼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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