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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원내수석에서 정무수석으로, 두번째 수석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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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개월 연수 가며 “나는 자유다”… 가자마자 정무수석에 임명



경향신문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6월 5일 페이스북에 올린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사막에서의 사진. 이 사진 옆에 ‘사막에 왔다. 나는 자유다!’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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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아침 여의도 국회에서는 김재원 전 의원이 정무수석에 임명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SNS를 통해 떠돌았다. 김 전 의원은 이미 5월 24일 수많은 기자들에게 중국으로 떠난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대구·경북지역 신문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김 전 의원이 중국 외교학원 초빙으로 중국으로 간다는 기사를 실었다. <매일신문>은 김 전 의원이 인천공항에서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는 사진을 올리고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다”는 김 전 의원의 말을 전했다.

중국으로 떠난다며 대외적으로 ‘거창하게’ 알린 김 전 의원에 대한 인사설은 뜻밖의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전 의원은 6월 5일 오전 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막에 왔다. 나는 자유다!’라고 적혀 있었다. 6월 7일 오전에는 또 다른 사진에서 ‘중국대륙의 서역 끝 신장위구르자치구 카슈가르(喀什)의 찻집에 왔다. 나는 자유다!’라고 적었다.

6월 8일 오전 김 전 의원의 정무수석 임명이 속보로 떴다. 하지만 이날 점심때쯤 김 전 의원의 페이스북에는 사막에서 점프를 하는 또 다른 사진이 올라왔다. 이 옆에는 ‘자유롭게 훨훨’이라는 글귀가 붙었다. 여당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중국에 있어서 아직 임명 소식을 못 듣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김 신임 정무수석은 이미 6월 5일 귀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수석은 임명 이후 기자들과 만나 장기 상용비자로 바꾸려고 5일 귀국했다고 이야기했다. 당초 5일 귀국했다가 15일 다시 출국하는 일정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5일 오후 귀국한 후 이 같은 인사가 급박하게 이뤄진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사전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6개월간의 연수 일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국내에 와서 정무수석 내정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페이스북에서는 마치 중국 사막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듯한 사진과 글을 올린 점이다. 댓글이 수없이 달리자,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려 했는데… 10리도 못 가고 발병이 났다며 놀리네요’라는 글로 바뀌었다.

여당 내부에서는 이 같은 페이스북 해프닝을 놓고 김 수석의 일면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 여권 인사는 “혹시 수석 내정이 사전에 외부에 알려질까봐 페이스북에 사막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듯한 글을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석 임명이 발표된 이후에도 이런 사진과 글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여당 내부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여권 인사는 “김 수석은 여당에서는 유능한 인물로 손꼽히지만 능력에 비해 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페이스북 해프닝을 꼬집었다.

김 수석은 4월 총선의 당내 경선 당시 지역인 경북 상주시 선거사무실에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간판을 크게 내걸었다. ‘진박 중의 진박’으로 불리는 김 수석은 17대 국회 초선으로 입성할 당시에는 친박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치열하게 다툴 때 박 후보 캠프에 들어가면서 원조친박 대열에 끼어들었다. 서울대 법대 졸업-사법시험 합격-검사-변호사-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경력 덕분에 박 후보 캠프에서 이 후보 측 네거티브를 막는 해결사로 활약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양 캠프 간 미묘하게 오갔던 최태민 목사와 사위인 정윤회씨 의혹도 포함돼 있었다. 김 수석은 친박 가운데 박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맡은 대표적 인물이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대리인으로는 김 수석과 유영하 변호사(전 서울 송파을 예비후보)가 손꼽힌다.

경향신문

김 수석은 18대 총선에서는 친이 측의 미움을 사 공천을 받지 못했다. 공천을 받지 못한 후 바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버렸다. 때문에 친박 무소속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가 등장한 후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김 수석은 19대 국회에서 원내 수석 부대표로 활동하며 율사 국회의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당시 이완구 원내대표와 함께 세월호 협상을 이끌었다. 물론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원내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김 수석은 워낙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분인 데다가 법률뿐만 아니라 국회법을 꿰차고 있어서 야당을 압도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야당에서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 와도 합의문에서 표현하는 문구를 놓고 협상을 할 때면 김 수석의 즉흥적인 꾀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의 탁월한 능력은 박 대통령이 그에게 5월 24일부터 11월 24일까지의 중국 외교학원 연수를 포기하게 하고 청와대에 불러들인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여당 내부에서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김 수석만큼 능수능란한 지혜로 대국회 업무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다가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상존하는 당내 상황도 김 수석의 ‘꾀’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수석이 청와대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쌍두마차를 형성하게 됐다. 두 수석은 공교롭게도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두 수석은 학교 시절이나 검사 시절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고 한다. 김 수석과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과의 관계도 흥미롭다. 17대 초선 국회의원으로 만난 두 정치인은 2007년 대선 캠프에서 초선 의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게다가 지역 역시 경북으로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사이다. 최 의원은 연이어 20대 국회까지 4선 의원이 됐지만 김 수석은 한 회기씩 건너뛰며 재선에 그쳤다. 이번 총선에서도 TK(대구·경북)지역 공천에서는 두 정치인이 막후에서 협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도 당·청 간의 관계에 있어서 두 의원 간 협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원내수석부대표(원내수석)에서 정무수석으로 변신한 김 수석이 당내의 친박 간 협치는 이룰지 몰라도 당밖 야당과의 협치는 물음표다. 여기에다 여전히 그의 뒤에 따라다니는 ‘지략은 탁월하나 진실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존재감이 커진 야당에 김 수석은 어쩌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원내수석 당시는 여대야소였다”면서 “김 수석의 야당에 대한 협상 방식은 ‘그래, 싫으면 관둬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 방식대로라면 협치와는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하는데, 몸에 밴 협상 방식을 여소야대 국회에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김 수석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수완이 좋고 유능하지만 권모술수에 능하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비유되기도 한다. 국정원 개혁법을 놓고 김 수석(당시 국정원 개혁특위 여당 간사)과 협상을 벌였던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원내수석)은 “김 수석만한 협상가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은 “야당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지만 정치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을 감안하면 야당에서는 그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유능한 실력자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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