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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현대상선 '운명의 열흘'…사상초유 구조조정 성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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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없던 현대상선 마지막 카드 조건부 자율협약…산업 구조조정 첫타자 해운업 구조조정 성패 갈라 ]

머니투데이

김충현 현대상선 CFO와 현대상선 측 마크 워커 변호사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상선 본사에서 진행된 해외선주들과 용선료 인하를 위한 마지막 협상을 마치고 건물을 나서고 있다.현대상선은 이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참여한 가운데 전날 방한한 해외 선주사 4곳(1곳은 화상회의 참여)과 용선료 인하를 위한 마지막 협상을 가졌지만 뚜렷한 결과 없이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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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이 3개월간 진행해온 용선료 협상 결과가 이달 내 나오며 현대상선의 생사도 열흘 안에 갈린다. 현대상선 구조조정은 용선주·은행 채권단·사채권자가 모두 채무재조정에 참여하는 유례없는 전방위적 구조조정인 데다 현대상선과 유사한 구조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한진해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답 없던' 현대상선 마지막 카드…유례 없는 '조건부' 자율협약의 등장=현대상선 처리방안은 지난해 말 채권단의 최대 골치거리였다. 현대상선은 아직 '정상' 기업이었던 현대그룹의 계열사였던 때부터 사업부문과 자산매각 등의 자구노력을 해 왔다. 현대그룹이 2014년 산은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뒤 현대상선은 그해 LNG 운송사업부와 현대로지스틱스 등 알짜 사업부를 매각해 1조원대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팔 수 있는 걸 다 팔았음에도 전세계적인 물동량 감소로 매년 2000억~5000억원의 영업손실이 그치지 않았다. 경기둔화로 운송할 화물은 줄었는데 호황기 때 장기간 맺은 용선계약으로 선주들에게 고가의 용선료는 꼬박꼬박 지급해야 해서다. 급기야 현대그룹이 자구안의 일환으로 추진한 현대증권 매각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오릭스PE의 중도 포기(지난해 10월)로 어그러지면서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가 한층 더 부각됐다.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해운업황 악화로 자생이 어려워진 현대상선은 채권단에 도움 요청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채권단도 일반적인 경우처럼 현대상선을 도와줄 수 없었다. 현대상선 채무 중 은행에서 빌린 돈이 25%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회사채나 해외 금융기관에게 받은 선박금융이어서다. 은행 주도로 자율협약(채권은행 공동관리)에 들어가서 채무 상환을 미뤄주고 출자전환을 해줘도 은행 외 채권단의 동참이 없으면 현대상선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미미했다. 무엇보다도 호황기에 맺은 용선계약으로 빠져나가는 용선료가 근본적인 영업적자를 초래하고 있다는 게 은행 채권단의 시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운사 구조조정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STX팬오션 처럼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매각하는 방식도 적용하기 어려웠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상거래 채권도 동결되니 최대 문제인 용선계약이 무효화된다. 하지만 벌크선 위주인 팬오션과 다르게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을 위주로 영업하는 회사다. 벌크선과 다르게 컨테이너선은 글로벌 해운동맹 체제로 유지 되는데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이 동맹에서 탈퇴되고 사실상 사업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등장한 게 '조건부 자율협약'이란 새로운 형태의 구조조정이다. 현대상선이 용선주들과 직접 협상을 해서 용선료를 깎는 조건이 선행되면 은행들도 출자전환을 해서 부채비율을 낮춰주는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은행 측은 현대상선이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회사채 채권자들도 출자전환에 동참해야 한다는 전제도 붙였다. '답이 없어 보이던' 현대상선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이런 틀을 마련한 현대상선은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협의를 거쳐 2월말부터 용선료 협상에 나섰고, 은행들(채권금융기관협의회)은 지난 3월 29일 현대상선이 신청(21일)한 자율협약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렇게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은 전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변수가 워낙 많아 구조조정 시작이 본격적으로 결정되는 데만 3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 사채권자집회를 통한 회사채 채권자들의 채무재조정이 병행된 사례는 지난 2013년 STX 구조조정 당시 있었다. 하지만 상거래 채권자인 용선주까지 채무재조정에 포함시킨 건 전세계적으로 거의 처음이다. 이스라엘 최대해운사이자 세계 10위권대 해운사인 짐(ZIM)이 용선주까지 채무재조정에 동참시킨 선례가 2014년 있으나 당시엔 소수의 용선주들과만 협상했다. 현대상선처럼 22곳의 전 용선주를 대상으로 전방위적 협상을 벌이는 경우는 사실상 처음이다.

◇현대상선 '운명의 열흘'…한진해운도 노심초사=현대상선이 2월말부터 추진한 용선료 인하 협상은 이달 내 어떻게든 결론이 난다. 금융당국은 사실상 30일을 데드라인으로 못박았다. 31일과 6월 1일 사채권자 집회 전까지는 용선료 인하가 결론이 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용선료 인하가 성사되면 예정된대로 은행들과 회사채 채권단으로 부터 출자전환 등의 지원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법정관리 행이 불가피하다.

현대상선은 매물로 다시 내놓은 현대증권을 KB금융이 1조2400억원에 사가며 예상보다는 유동성에 여유를 얻었다. 그렇지만 용선료 인하가 실패하면 채권단이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해 결국 몇달 못버티고 법정관리 행이 불가피하다. 법정관리 행은 컨테이너선 사업을 하는 현대상선엔 '청산'을 의미한다.

용선료 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18일 컨테이너선주 4곳이 현대상선 본사사옥에서 현대상선·주채권은행인 산은과 회의를 열었다. 최대한 용선료를 덜 깎고 깎는 대가로 많은 걸 얻으려는 용선주들과 어떻게든 용선료 인하를 성사시켜야 하는 현대상선 간 막판 기싸움이 4시간 여의 회의 동안 이어졌다. 5개 컨테이너선주 중 이번 회의에 불참한 영국 조디악과는 다음주 중 현대상선 측이 직접 영국에 방문해 개별 협상을 벌인다. 컨테이너선주를 포함한 용선주들은 다음주 중으로 현대상선에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누구도 결과를 예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 타결 여부는 뒤이어 같은 구조로 조건부 자율협약 추진을 시작한 한진해운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용선료 협상이 안 돼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양대 국적선사 중 한 곳인 한진해운의 부담이 약간은 경감될 수 있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두 곳 모두 법정관리에 보내긴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반대로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에 성공한다면, 한진해운이 받게 될 압박감은 더 커지게 된다.

현대상선 구조조정 개시가 성사될지 여부는 정부가 소매를 걷어부친 산업 구조조정 첫타자인 해운업 구조조정의 성패를 가늠한다는 의미도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이 시급한 업종으로 조선·해운 두 산업을 지목했다. 이중 한 축인 해운업 구조조정의 핵심이 현대상선 구조조정이다. 해운업 구조조정이 사실상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으로 요약되고 이 양대선사 구조조정 핵심이 결국 고액 용선료 인하에 있기 때문이다. 이달 중 결론이 날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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