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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정리뉴스][혐오사회]3회 정계-재계-보수 개신교계의 혐오선동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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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큐레이션사이트 ‘향이네’는 한국 사회 안팎의 혐오 문제를 진단하고 성찰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전문가·활동가 기고로 성소수자·여성에 대한 혐오 문제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봅니다. 연재글 의견은 h2@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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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지난달 22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청와대 집회 지시 및 전국경제인연합 뒷돈 지원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 앞서 ‘진실은 이것입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있다. 벽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다. | 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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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재계-보수 개신교계의 혐오선동 네트워크,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해야 할 때

“게임은 지금부텁니다. 지금부터. 왜냐하면 이미...여러분들이 모인 이 위력 앞에 두 당의 대표님이 오셔서 항복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항복선언!” (북소리 둥둥둥둥-)

이번 총선에서 가장 기가 막혔던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 나는 주저 없이 이 장면을 꼽을 것이다. 지난 2월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나라와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한 3당 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서 전광훈 목사는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발언을 들은 후 흡족한 표정으로 이렇게 발언했다. 20대 총선은 ‘반 동성애, 반 이슬람’ 사상검증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성애와 이슬람은 가장 편한 공격의 무기가 되었고,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후보들은 앞을 다퉈 뜬금없는 신앙고백과 항복선언을 하기에 바빴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의원도, 필리버스터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의원도, 혐오선동에 대한 법적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이들도 줄줄이 입장 선회와 항복선언을 이어갔다. 기득권 세력의 압력과 그들의 표 앞에서는 원칙도, 소신도 버리고 언제든 소수자 인권 따위 쉽게 폐기해 버릴 수 있는 이런 정치인들이 과연 다른 일에서는 원칙과 소신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그들의 언행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김무성·박영선 ‘동성애 반대’ 발언 영상···“두 당대표가 항복 선언”)

최근 몇 년 사이 점점 극심해지는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 선동과 대중집회를 보며 많은 이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왜 지금 이들은 이토록 격렬히 반 동성애 선동에 나서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반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로 시작된 선동은 이슬람 반대, 이주아동권리보장법 반대, 국가인권위원회 폐지 등으로 점점 확대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한민국 엄마부대봉사단, 서북청년단 재건위 등 우익 조직으로도 활동하거나 어버이연합 등과 서로 연합하며 곳곳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반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테러방지법 제정 촉구 등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덧 종북몰이의 색깔론을 대신하게 된 ‘반 동성애’, ‘반 이슬람’ 사상검증은 수차례 정치인, 공직자들의 동조와 승인, 항복을 거치며 점점 강화되고 있다. 이번 총선은 그렇게 정교분리와 인권 보장의 원칙이 처참히 무너져내린 집결판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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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지난 2월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도회에 참석해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다르게 던져야 한다. “왜 이들은 혐오 선동에 나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런 혐오선동과 낙인, 차별의 언사가 공공연히 정치의 장에서 승인되고 발화될 수 있는 지경까지 왔는가?”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명백히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인종, 국적, 종교, 성별, 장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에 의한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수많은 국제 인권협약을 지켜야할 당사국이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법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윤리강령에조차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금지’가 명시되어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벌써 수년째 국제 사회로부터 요구받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강화되어 온 정계-재계-보수 개신교계의 혐오선동 네트워크

지난 4월 19일, JTBC는 특종을 보도했다.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로 보이는 어느 기독교선교복지재단의 계좌를 발견했는데, 이 계좌에서는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추선희씨에게 네 차례에 걸쳐 총 1750만원을 보냈으며,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법인 명의로 1억2000만원이 입금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앞서 <시사저널>은 퇴직 경찰 모임인 재향경우회와 엄마부대(대한민국 엄마부대봉사단)가 탈북자 단체 계좌에 돈을 주고 집회를 열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또한 JTBC의 보도 다음 날인 4월20일 <시사저널>은 어버이연합 측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집회를 했다”는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어버이연합은 이를 지시한 인물로, 청와대의 한 행정관을 지목했다고 한다. 거의 매일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는 가운데, 지금까지 보도된 기사들에 따르면 2012년 1월부터 5월까지 전경련 법인 명의로 입금된 금액만 총 5억2300만원에 달하며,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로 추정되고 있는 계좌의 명의 역시 ‘벧엘선교복지재단’, ‘비전코리아’, ‘희망나눔’ 등 여러 개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어버이연합 측에 연락을 했다는 청와대 행정관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인 허현준씨로 밝혀졌다. 심지어 국정원이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일방적이고 괴상한 기자회견을 하고는 22일 이후 종적을 감춘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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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과 ‘동성애’를 한데 묶은 차별금지법 반대 홍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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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정황들 속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들의 네트워크가 추적되는 최근 몇 년의 기간 동안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이 친 정부, 친 재계 집회를 하면서 선동해 온 핵심적인 키워드에 바로, ‘동성애자’,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혐오선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종북게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이제 ‘동성애자’는 ‘빨갱이’, ‘종북’과 연결되는 사상검증의 키워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현재 언급되고 있는 단체들의 지난 행적만 보아도 훤히 드러난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최근 몇 년 사이 엄마부대와 어버이연합은 현재 ‘반 동성애’, ‘반 이슬람’ 등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선동을 주도하고 있는 보수 개신교 단체들과 활발하게 같이 움직여왔다. 따라서 각종 친정부, 경제 입법, 노동시장 개편 관련 집회에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같이 나설 뿐만 아니라, 다섯 시간 넘게 퍼레이드를 막았던 2014년 퀴어문화축제 방해 집회를 비롯한 각종 반 동성애 집회에도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 등 우익 단체들이 함께 나타났다. 보수단체의 주장이 실린 신문 전면광고나 반 동성애 등 혐오선동 광고에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2010년 11월에는 어버이연합 소속 회원 30여명이 국가인권위원회 13층에 난입해 “군대에서 동성애 허용이 말이 되냐”, “빨갱이 새끼들을 다 잡아넣어야 해, 밥 처먹고 똑바로 해” 등의 고함을 지르며 전원회의장 문을 파손시키기도 했다. 당시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은 “인권위에서 군대 내 동성애 문제를 다룬다고 들어, 동성애에 찬성하는 위원이 누군지 알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2010.11.8)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가 재계-정계-보수 개신교계의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이고 있으며 돈까지 받고 있다는 정황은 이미 이전에도 몇 차례 드러난 바 있다. 일례로 2011년 8월 <주간경향>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어버이연합 등 ‘우파어르신’에게 1000만원을 줘서 버스 30대에 나눠 타고 350명이 가서 막았다”고 스스로 공개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지난 정황들을 볼 때, 오히려 최근 보도들은 이미 수년간 누적되어 온 이들의 비리와 네트워크가 결국 내부 모순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언더그라운드.넷]대한민국어버이연합, 그리고 전광훈 목사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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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엄마부대봉사단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이라며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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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네트워크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어버이연합의 인터뷰에서 언급된 허현준 행정관이 ‘시대정신’의 사무국장이었으며,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여성위원장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단체가 형성되던 시점이 바로, 이들의 네트워크가 구체화되고 향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까지 이어져 온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백중현씨는 <대통령과 종교 :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에서 이 네트워크가 시작되던 시점을 소개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연이어 교회와 목사의 비리 사건이 보도되고,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보수 개신교계가 이를 ‘친북 좌파 정권의 개신교 탄압’으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때, 조갑제씨가 보수 우파 단체들과 보수 개신교계를 잇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조갑제닷컴>에 ‘전 인구의 약 30퍼센트나 되는 잘 조직된 거대한 반공보루’로서 개신교를 언급하고, 이후 2년간 <월간조선>을 통해 조용기, 김장환, 옥한흠, 김진홍, 길자연 등 대형교회 목사들을 인터뷰하는 등 보수 개신교와의 연대활동을 본격화했다. 이 뿐만 아니라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한국 교회가 반 김대중, 반공산주의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2001년 7월 한 달 동안 ‘기독교의 궐기 : 카인의 후예, 사탄의 제자 타도’,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했던 김일성-김정일’, ‘기독교 뿌리에서 나온 이승만과 김일성의 차이’ 등을 게재하면서 적극적으로 보수 개신교계의 역할을 선동했다. 이에 부응해 보수 개신교계는 수차례 친미, 반공 집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거리에 나섰다. 이어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을 비롯한 4대 개혁입법 국면을 맞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을 위시로 한 보수 개신교계가 본격적으로 광장에서 연일 대규모 집회를 열기에 이른다. 특히 이 때는 개신교 신자들과 목사들이 광장에서 연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삭발투쟁까지 벌였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해방 이후 수백 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수많은 학교법인을 쥐고 있었던 보수 개신교의 기반을 흔드는 최대의 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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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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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개신교의 주요 인사들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뉴라이트전국연합’, ‘기독교사회책임’ 등을 조직하며 정·재계와의 네트워크와 정치세력화를 주도하였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김진홍 목사를 위시로 하여 뉴라이트전국연합에 적극적으로 결합했고, 이명박 정부의 당선에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내분 과정에서 유출된 자료에 의하면 2006년 3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출처가 모호한 거액 후원금이 31차례에 걸쳐 8억2000여만원 입금되었는데 이 중 김진홍 목사가 있는 두레교회 명의로 입금된 것이 3억8000만원 가량이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비리 문제로 수세에 몰렸던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등은 대놓고 “다시는 좌파 정권이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장로 후보를 마귀의 참소, 테러의 위협에서 지켜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등의 설교를 하며 전면적으로 이명박 후보 선거활동에 나섰다. 이렇게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보수 개신교는 이후 정치권과 연계된 내/외부 네트워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이어진 보수 개신교계 코드 인사는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다. 후보캠프에서부터 인수위원회를 지나 청와대 주요 직책과 장관직, 핵심 공직 인사와 위원들까지 뉴라이트 계열 보수 개신교계 인사들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앉히는 양태로 이어졌다.

한편, 재계 쪽으로는 전경련과의 네트워크 뿐 아니라 한국기독실업인회(CBMC)를 통한 이명박 전 대통령, 이영훈 목사, 김진홍 목사,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 등의 네트워크도 존재한다. 보수 개신교계에서 운영하는 사학재단이나 선교, 복지, 탈북자 지원 사업 등의 명분을 건 재단들 중 다수가 이러한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법 제정, 정책 마련, 재정 지원, 조직 동원 등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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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3 총선에 출마한 기독자유당의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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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 나섰던 기독자유당은 전광훈, 조용기, 김홍도, 길자연, 이영훈, 조일래 목사 등 지난 보수 개신교의 역사를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기득권으로 단단히 굳히기 위해 활동해 온 대표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명분상으로는 ‘반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 ‘이슬람 척결’을 내세우고 있으나, 지난 몇 년 간의 활동을 보면 실질적으로 이는 교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닌 교회 기득권 유지를 위한 세속적인 목적에서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예수교 나라’로 세우고자 했으며 제헌의회가 목사의 기도로 시작되었고, 해방 이후 개신교가 공산세력과 싸우면서 동시에 중요한 정치·사회 각 분야에서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역사 인식과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 보수 개신교의 종교적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한국사회가 움직여야 하며, 따라서 그들이 사회 전반에 영향력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합리화하면서 신도들에게 그에 대한 사명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한국사 교과서의 개정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시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이 만약 현재와 같은 보수 정치권과의 네트워크를 강화가는 것을 넘어, 의회 진입까지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회와 사법기관은 이들이 그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축적해 온 비리와 불법행위의 진상을 반드시 철저하게 조사하여 처벌해야 할 것이다.

성적 낙인을 이용한 혐오선동, 동성애 반대에서 멈추지 않는다

집권 권력의 안위가 불안정해지고 정치경제적 위기로 대중들의 불안이 고조될 때마다, 성적(性的) 낙인을 이용한 선동은 역사적으로 항상 가장 편리한 공격의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권력에 저항하거나 기득권과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이들에게는 쉽게 성적 낙인을 덧씌웠다. 고조되는 대중의 불안이 자신들을 향하는 대신 특정 대상에게 향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성역할을 따르지 않는 자, 친족 체계의 성적 규범을 위반하는 자, 섹슈얼리티 통제의 원칙을 벗어나는 자들에게는 ‘문란하다’는 혐의를 씌워 공격의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문란함’은 곧 열등함, 질서 파괴, 질병 전파, 사회 혼란, 안보 위협으로 이어지는 연쇄 공격의 시작점이 되었다. 중세시대의 마녀재판이 그러했고, 흑인 노예와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던 시대의 이데올로기 역시 그러했으며, 나치 시대의 동성애자 학살 또한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는 ‘가족가치를 약화시키고 국가의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로 취급되었다. (현재 한국의 보수 개신교 반 동성애 단체들이 이 논리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반면, 비 서구권의 권력층은 ‘동성애는 비전통적이며 변태 문화를 퍼뜨리려는 서구의 음모’라고 선전한다. 그리고 종교는 여기에 가장 강력한 근거를 부여한다.

문제는 종교가 평화와 공존이 아닌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를 위한 무기로 이용될 때, 이는 차별과 낙인은 물론 가장 잔인한 고문과 학살, 그리고 이른 바 ‘성전(聖戰)’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전쟁까지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IS가 간통과 동성애를 이유로 잔혹한 처형을 내리는 모습이 끔찍해 보이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간 수많은 폭력의 역사와 전쟁들 속에서 그와 같은 장면들을 끊임없이 목도해오지 않았던가? 어떠한 종교를 불문하고 말이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적용할 때, 고문과 돌팔매질, 신체절단이나 사형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위험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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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SNS에 이슬람국가(IS)가 동성애자 남성 2명을 고층건물에서 떨어뜨렸다는 설명과 함께 유포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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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한국에서 ‘반 동성애’를 외치는 이들이 그런 처형이나 성전(聖戰)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단체들의 기자회견이나 집회 현장에서는 실제로 그런 발언들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지난 4월28일 이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었던 기자회견에서는 한 목사가 “이제는 가정을 지키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거룩한 전쟁, 성전을 해야할 때이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독립투사이다.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마음, 목숨을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거룩한 성전을 결단하자”라는 발언을 했으며, 기자회견 참석자 중 일부는 “어떻게 동성애를, 다 사형시켜 버려야 돼”, “다 죽여버려야 돼”라는 발언을 하며 다니기도 했다.

‘반 동성애’를 선동하는 대표적인 조직인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는 2014년 3월 기독일보에 게재한 칼럼에서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 인권 유린은 없다…성소수자들에게 대체 어떤 인권 유린이 있었는지 명쾌히 설명해 보라. 특히 우리나라에서, 어떤 인권 유린이 있었다는 것인가?”라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인권에 동성애를 할 ‘권리’, 동성애를 홍보할 ‘권리’는 포함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 인권 유린은 없다고 말하는 모순.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되지만 동성애에는 반대한다’거나, 동성애가 무슨 전염성 질병도 아닐진데 ‘동성애 확산은 반대한다’거나, ‘동성애는 성중독이므로 치유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돌팔매질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존재의 부정’을 통해 낙인을 합리화하고, 이것을 대중적인 이데올로기로 확산시켜 배제와 분리를 정당화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종교와 정치가 기득권을 위해 협력할 때, 보다 끔찍한 상황은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 있다. 자신들의 주장이 차별이나 혐오선동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위해 “사랑하니까 반대한다”고 외치면서, 동시에 “항문섹스를 하는 문란한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퍼뜨리고 세금을 낭비하며 가정과 국가와 사회를 파괴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에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의 삭제’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중요하게 보아야 할 사실은 동성애 혐오가 어떠한 논리로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동성애 혐오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빈곤층’, ‘제3세계’, 한부모 가정, 이혼 가정, 장애인, 비혼모에 대한 편견을 통해 연결되고, 이들을 다시 ‘성문란’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을 통해 특히 여성들과 청소년에 대한 성역할과 성적 단속을 강화한다. 이러한 논리들은 이들이 게재한 몇 개의 신문광고나 선전물만 보아도 금방 드러난다.

“한국에서 자녀를 공짜로 키워주고, 치료해주고, 유학시켜준다는 말을 들은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의 빈곤층은 한국에 몰려와 아이를 낳고 합법적 체류 자격을 얻고자 할 것입니다… 한국에 오고 싶은 아시아 빈곤 가정들은 딸이 13세만 넘으면 한국의 소아성애자와 결혼하게 할 수 있어 미성년 여성의 인권침해가 우려됩니다… 우리나라 여성부는 가정폭력에 ‘정서상 폭력’ 뿐 아니라 ‘방임’도 가정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여성 초우대 국가입니다. 한국 국적만 취득할 의향의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을 사유로 이혼 소송에 대거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이자스민·임수경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한 「대한민국의 자살」 신문광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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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빈곤층은 가난하므로 한국에 몰려와 자녀를 소아성애자와 결혼시키고, 결혼 이주 후 이혼 소송으로 한국 남성들의 돈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반 동성애’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인 이태희 목사 겸 변호사는 2015년 JTBC의 한 프로그램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되고 동성커플이 아이를 입양하면 그 가족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부모 가정이나 입양 가정이 행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빗대어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인 김영오 씨가 단식투쟁을 할 때에도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을 반대하던 ‘반 동성애’ 단체들과 엄마부대 등 보수 우익 단체들은 그가 이혼 가정의 아버지이며,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를 공격했다.

이렇듯 동성애 반대는 결국 궁극적으로 모든 소수자와 이주민, 가난한 이들과 소위 ‘정상가족’의 범주 밖에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편견과 차별에 기반하고 있으며, 성차별과 성적 보수화를 향한 명분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반 동성애’ 낙인을 이용한 사상검증과 선동은 결국 집권 권력의 유지와 기득권 수호를 위해 활용되는 이데올로기이기에, 결국 권력의 비리와 폭력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저항하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이들의 ‘반 동성애’ 주장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이는 더욱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반 동성애 단체들의 혐오발언과 폭력 앞에서 성소수자들이 외쳤던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구호가 있다. 연인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이나 ‘검은머리 파뿌리 되기’까지의 의리를 약속하는 부부 간의 사랑, 내 아이, 내 가족끼리의 사랑만이 아니라, 이 사회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관계 맺고 서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랑,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향한 폭력에 함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랑, 권력의 폭압과 부정의에는 저항하고 맞설 수 있는 연대의 사랑, 그런 사랑은 진정 혐오보다 강하다. 예수 역시 이러한 사랑을 가장 강조했고 몸으로 실천했다. 이는 또한 모든 종교의 근간이 되는 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정치와 자본 권력을 확보하고 이를 마음대로 휘두르고자 할 때, 그리고 이를 위해 혐오를 선동할 때 그 가치는 가장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논리로, 잔인한 폭력의 명분으로 돌변한다. 지금 그 싹에 정치계와 재계, 종교계의 권력집단이 서로 물과 양분을 부어주고 있다. 이들의 네트워크와 성장을 중단시키기 위해선 가장 취약한 이들을 향한 혐오선동을 막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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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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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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