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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국정원, 비판광고 문구 ‘깨알 지시’…정부옹호 기사 주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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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선 댓글’ 원세훈 재판기록 취재 결과

심리전단 직원 ‘전방위 개입’

연평해전·MB 대북정책 옹호 등

동아·문화일보 광고로 실제 실려

1인 시위·전단 배포에도 관여

언론사 활용한 정황도

국정원 댓글 수사 비판한 교수

기고글 지방지 게재 주선하고

‘대북 식량지원 불필요’ 기사 등

인터넷 언론에 직접 전달하기도


한겨레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5일 오전 국정원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8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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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열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에선 국정원이 극우·보수단체의 오프라인 활동을 총지휘한 정황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대선 여론조작에 나섰던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보수단체의 의견 광고에 개입하고 1인시위와 전단지 배포 계획까지 관여했다. 또 보수 인터넷 언론에 기사를 제공하고 지역 언론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비판하는 대학교수의 기고문 게재를 주선하기도 했다.

25일 재판과 <한겨레>가 입수한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재판 기록과 취재 내용 등을 종합하면,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이었던 박아무개씨는 여러 보수단체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서울시 무상급식 반대 운동과 민주노동당 해체 활동 등에 개입해왔다. 이런 활동은 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한 해인 2009년 설립된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자유연합)을 통해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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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29일 '문화일보'와 같은해 8월2일치 '동아일보'에 게재된 자유주의진보연합의 광고. 국정원 심리전단 관계자는 자유주의진보연합 대표와 광고 문안을 서로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일보·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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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한달가량 앞둔 2011년 7월24일 자유연합 대표인 ㄱ씨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그는 “깜빡하고 회사(국정원)에서 문안을 안 가져왔다. 내 기억력에 의지해서 대강 보낸다”며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문구를 ㄱ씨에게 전달했다. 박씨가 보낸 문구는 일부만 수정돼 ‘복지 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 명의의 광고로 같은 해 8월2일 <동아일보> 등에 실렸다. 국정원이 보수단체에 의견 광고 문구를 제공해가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편에 서서 여론전을 주도해나간 것이다. 주민투표 직전인 2011년 8월20일에도 박씨는 ㄱ씨에게 “어디서 낯이 익은 전단이구료. 회사에서 작업할 때 ‘투표 거부는 비겁한 행동’이란 표현을 강하게 못해서 아쉬웠”다며 “첫 아스팔트 행산데 잘 하시오”라는 전자우편을 보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저조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국정원 직원이 보수단체들이 벌인 행사에 사용된 전단 내용을 검토해준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해체를 주장하는 신문 광고도 국정원을 거쳐 나온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2011년 9월13일 ㄱ씨에게 ‘민노당 광고’라는 제목의 한글파일을 첨부한 전자우편을 보냈다.

이밖에도 박씨는 ㄱ씨에게 연평해전 9주년 광고,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지원을 위한 희망버스 비판 광고,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옹호 광고 등의 문구를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이 내용들은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의 광고로 실렸다. 국정원이 보수단체의 명의 뒤에 숨어 여론전을 벌인 셈이다. <한겨레>는 국정원의 광고 지원 의혹 등에 대해 ㄱ씨에게 물었지만, ㄱ씨는 “오래된 일이라 모두 잊어버렸고 당시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며 관련한 답변을 거부했다.

국정원이 접근한 단체는 자유연합뿐만이 아니었다. 박씨는 또다른 보수단체인 ‘교육과 학교를 위한 학부모 연합’ 관계자와도 활발히 교류했다. 박씨는 학부모연합의 ㄴ씨에게 2011년 9월 전자우편을 보내 “김○○ 대표님과는 월~금까지 스티커 붙이기와 1인시위를 동화면세점 앞에서 낮시간대에 하고 월요일 저녁에 대학생 20명 정도 모여 청계광장에서 퍼포먼스를 하기로 얘기”했다며 “스티커 붙이기나 1인시위는 걱정할 게 없는데 저녁 행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당시 학부모연합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는 상황이었다. <한겨레>는 ㄴ씨에게 전화 연락을 했지만, ㄴ씨는 “다시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은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밖에도 박씨는 2012년 2월 ‘대한국인애국청년단’ 단장인 ㄷ씨에게보수단체들이 제작한 신문 배포와 관련한 전자우편을 보내기도 했다. 전자우편에는 석촌역, 방이역, 오금역 등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역에서 신문 배포 활동을 한 내역이 담겨 있었다. ㄷ씨는 <한겨레>와 만나 “신문을 나눠주는 일 등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때 잠시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 차원에서 단장을 맡았던 것일 뿐이다. 그때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고 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ㄷ씨는 보수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받은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국정원이 보수단체뿐 아니라 언론사를 활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박씨는 2011년 7월 한 보수 성향의 인터넷 언론사 기자인 ㄹ씨에게 ‘대북 식량 지원은 불필요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전달했다. 이 내용은 그대로 ㅁ씨의 기사로 해당 인터넷 언론에 보도됐다. 이밖에도 박씨는 ㅁ씨에게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에서 나온 보도 자료를 전달하며 취재를 부탁하는 등 보수단체의 입장이 언론에 실릴 수 있게 주선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7월23일에도 박씨는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는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의 기고글을 한 지역 일간지에 실을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조 교수의 기고글은 국정원의 댓글 활동을 정당한 국정원의 책무라며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글을 쓴 뒤 강원도 지역 기관에 있던 인물에게 연락해 어디에 게재하면 좋을지 찾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라며 “기고문 자체는 내가 쓴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보수단체 지원 정황 등과 관련해 “국정원 업무에 대해서 일일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정환봉 서영지 최원형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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