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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사회헌납이 곧 국가헌납이다” MB정부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어떻게 장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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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사회에 환원한 장학재단의 운영에 삼성도 정부도 배제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신인령 제1대 이사장의 회고는 그와 달랐다. 그는 전방위 퇴진 압력을 받고 결국 물러났다. 삼성과 정부로부터 독립했던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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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마지막 공식 외부행사 갖는 이명박 전 대통령. /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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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이다. 2006년 2월 7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취재진 앞에 섰다. 이 본부장은 준비해 온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읽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경영진은 지난날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동안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와 국민들께서 지적해 왔던 삼성의 여러 현안에 대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이와 같은 방안들을 마련했습니다.”

2005년 7월, ‘삼성 엑스파일’이라고 불리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만나 특정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공모한 내용이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108개 시민단체는 ‘삼성 불법 뇌물공여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했다는 의혹으로 가뜩이나 불신을 샀던 삼성이었다. 여기에 ‘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더해지자 삼성에 대한 사회적 반감은 치솟았다. 삼성은 이듬해 2006년 2월 7일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에버랜드 주식 20만9129주(8.4%)도 내놓았다. 사죄의 뜻이었다. 2006년 8월,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사재와 이 회장 자녀들의 주식을 출연해 기존에 있던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의 보유재산을 8000억원으로 늘려 사회에 환원했다. 이 기금으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만들어졌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현 삼성꿈장학재단)은 사회환원이라는 기금 성격에 맞게 삼성은 물론 정부도 재단 운영에서 배제했다. ‘삼성 엑스파일’의 파동을 매듭짓는 대사회적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정부와 삼성으로부터 독립돼 운영된다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원칙은 잘 지켜졌을까. 지난 3월 신인령 전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은 <나의 인연이야기>(지식공작소)를 출간했다. 신 전 이사장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1대 이사장이었다. 책에는 MB정부 2년차였던 2009년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서술돼 있다. 2009년은 신 전 이사장이 정부 측으로부터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라는 퇴진 압박을 받다 결국 물러났던 해였다. 당시 신 전 이사장에게 가해졌던 외압은 전방위적이었다. 교육청, 교육부는 물론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까지 개입돼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MB정부가 신 전 이사장을 밀어내려고 한 것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갖고 있는 돈 때문이었다. 2009년 이와 관련해 국정감사를 진행했던 당시 민주통합당 안민석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그때 MB정부가 내걸었던 공약이 반값등록금이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서 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야당에서 압박을 했다. 압박이 심해지자 MB정부는 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맞춤형 장학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한국장학재단이다. 그런데 장학사업을 하려면 종잣돈이 필요했다. 수천억원의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 보니 MB정부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집어삼키려고 한 것이다.”

신인령 전 이사장은 당시의 외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임기 초부터 정부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흡수하려 한다는 소문은 돌았다. 본격적인 외압의 시작은 임기 2년차인 2009년 5월 느닷없이 이루어진 표적감사였다. 감사 대상이 아님에도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기준까지 바꿔가며 표적감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감사 결과 꼬투리를 잡을 게 없었다. 많은 체크리스트를 받아가지고 나온 교육청 감사위원들이 치밀한 감사를 끝내고 내린 결론은 ‘다른 장학재단의 모범이 되는 사례’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학사업과 전혀 무관한 직함을 가진 사람이 재단을 찾아왔다. 이갑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었다. 이 지원관은 자신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이라고 밝히며,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장학사업이 모범적이어서 관련 자료를 얻으러 왔다는 석연치 않은 방문 이유를 밝혔다. 공무원의 비리를 감찰하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 장학재단의 장학사업 자료를 받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명함도 제시하지 않고 신원과 소속을 수기로 써주었기 때문에 청와대에 전화하여 그 직원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MB정부에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 사찰로 큰 논란을 빚었었다. 2012년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일 목록에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도 포함돼 있었다.

이갑수 지원관이 다녀간 후 외압과 퇴진 압박은 좀 더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2009년 8월 김경회 서울시교육감 직무대리가 찾아왔다. 김 직무대리는 “이사장님과 재단이 잘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물러나야 한다고 전하라 해서 어려운 전달을 하러 왔다.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신 전 이사장이 “힘든 역할하러 온 것 이해한다. 그러나 이 재단은 민간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부당한 관의 개입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답하며 “누가 전하라고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김경회 직무대리는 이에 대해 “제가 공무원 아닙니까. 먼 훗날에나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먼 훗날 말할 수 있을 거라던 김경회 전 직무대리는 7년이 지난 지금, 그때 누가 전하라고 했는지 말할 수 있을까. 사립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 이제는 공무원 신분이 아닌 김 전 직무대리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공직을 떠났기 때문에 공직에 있을 때 이야기를 안 하는 게 공무원의 불문율이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갑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현 청와대 근무)에게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기억이 잘 안 나고 특별히 상황 파악을 한 것은 없다. 팸플릿 보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온 것이다.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간 것이 아니다.”

외압의 실무자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지만 신인령 전 이사장은 외압의 핵심에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깊이 연계돼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그런 정황을 들었다. 국정원 직원이 우리 재단의 관련 있는 인사들을 만나 장학재단과 나에 대해 묻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당시 친정부 인사 중 우리 재단이 정말 장학사업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를 돕고 싶어하던 사람도 있었다. 무엇인가 오해에서 비롯된 사안으로 생각하여 정부와 이 문제를 조정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청와대와 국정원이 완강하게 거부한 것으로 안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신 전 이사장뿐만 아니라 삼성 측도 압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안민석 의원의 국정감사 대외비 문건에는 다음의 정황이 나온다. 청와대가 삼성을 압박해 신인령 전 이사장을 퇴진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삼성에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정부와 삼성이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하자 청와대 비서관이 삼성물산 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이 문제를 다시 언급. 처음에 실무자를 보내겠다고 하니까 ‘사장 들어오라’고 호통을 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MB정부가 신인령 전 이사장을 압박했던 상황을 알고 있었던 친이계 핵심인사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당시 신인령 전 이사장이 좌파인사라고 MB정권에 완전히 찍혔었다. 찍어내려고 했다. 당시 민간인 사찰은 국무총리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국정원이 같이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직원이 얼마 안 된다. 원래 그런 거는 국정원과 같이한다.” 당시 국정감사 대외비 내용을 삼성 측에 확인한 결과 삼성 측은 “재단은 사회에 헌납해서 삼성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된 기관이고, 자체적으로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한 적도 없다. 정부 쪽에서 요청이나 연락받은 적은 없다”고 답했다. <주간경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측의 답변을 듣고자 변호사를 통해 연락을 했으나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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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찍어내려는 것은 이미 정권 초기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2008년 3월 MB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한 일간지에 새 정부의 교육부 고위 관계자가 저소득층 장학사업을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돈을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이 보도됐다. 재단 측에서는 완전히 잘못된 기사라고 생각하고 언론사에 확인을 요청했는데, 당시 담당기자는 세세하게 확인을 해줄 수는 없지만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2009년 2월에는 <한국일보>에 ‘삼성 환원 8000억, 한국장학재단에 편입 추진’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민간 공익법인인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국가장학재단으로 흡수하려면 재단이사회의 의결이 필수적 절차다. 그러나 신인령 전 이사장이 강경하게 버티는 한 그러한 의결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한국장학재단이 출범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이사장 퇴진 압박으로 노골화됐다. MB정부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국가장학재단으로 흡수하려던 정황은 외압을 했던 실무자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김차동 교육부 인재실장은 당시 김경회 교육감 직무대리와 함께 신 전 이사장을 찾아가 이사진 교체 및 이사회 날짜 변경을 요구한 바 있다. 김차동 실장은 현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전 실장은 “그 당시 MB정부의 모토가 ‘어느 누구나 공부하고 싶은 열정이 있으면 대학에서 할 수 있게끔 하자’여서 국가에서 장학금을 많이 주든지 등록금에 상응하는 대출제도를 만들든지 해야 했다. 저소득층 장학금,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 등을 개발하고 있을 때인데,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과 상호보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2009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안민석 의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법인 해산 뒤 정부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이전 정황에 의해 충분히 예측 가능함. 한국장학재단 출범 뒤 교과부는 운용기금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취업 후 학자금 대출을 시행하려면 막대한 기금을 채권을 발행해 마련해야 함. 따라서 삼성장학재단이 편입되면 일정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

외압은 시간이 지나면서 ‘좌파 프레임’ 공격으로 변했다. 언론에도 보도됐다. 2009년 8월 <월간조선>에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친노·좌파 인사가 핵심 관계자로 참여’라는 기사가 실렸다. 신 전 이사장은 당시 취재과정이 이상했다고 회고했다. “기사 마감 전날이라고 하면서 15개 정도의 질문이 왔다. 질문의 내용은 ‘종북분자들에게 왜 돈 줬나’ ‘7000명 멘토들 중에 전교조 교사가 있지 않나’ ‘(신 전 이시장이 1970년대 활동했던)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아류가 아니냐’는 등의 악질적인 질문이었다.” 신 전 이사장은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내가 아는 언론계의 지인을 통해 알아 보니 이런 경우는 그 기자의 재량은 전혀 없고 어디서 작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언제 어디에 무엇을 서명했고, 누구와 친하고는 본인도 기억 못하는 내용들인데, 기자가 자기 정보를 가지고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기자는 다음날 사무실로 와서 우리 직원과 대화를 했고, 우리 장학재단에 관한 이해를 하고서는 ‘자기는 도울 형편이 못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기사의 끝에 우리 사무총장의 말을 조금 인용해줬다.” 결국 기사 작성자로 되어 있는 기자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임을 확인한 셈이다.

이후 정부의 외압은 더 거세졌다. 김차동 교육부 인재실장은 신인령 전 이사장을 찾아와 8월 21일 열리는 이사회를 연기하라고 했다. 8월 21일 이사회에서는 1차 임기가 끝나는 임원에 대한 유임 여부와 공석을 채우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게 돼 있었다. 신인령 전 이사장은 김차동 실장의 요구에 “규정대로 7일 전에 안건을 제시하고 소집된 이사회를 공무원의 요구에 연기하다니 말이 되느냐”며 “삼성은 기금을 사회에 헌납한 것이지 국가에 헌납한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김 실장은 “사회 헌납이나 국가 헌납이나 다를 것이 없다. 다 국가를 위한 것이다”라는 요지의 강요를 거듭했다. 결국 이사회 회의에서 교육부와 세게 부딪혀서 좋을 것 없다는 의견이 제시돼 이사회는 24일로 연기됐다. 연기된 이사회에 김경회 직무대리가 찾아와 2인의 이사 명단을 내밀었다. MB캠프에 있었던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과 신영무 변호사였다. 김경회 직무대리는 이력서를 내놓으면서 “이것만 받아주면 이제 자기는 다시 여기 올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사회에서는 격론 끝에 낙하산 이사 후보 2명을 받는 것으로 더 이상 휘둘리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외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올 일 없다던 김경회 직무대리가 다시 방문해 신 전 이사장 연임이 결정됐음에도 손병두 이사를 이사장으로 이사회에서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받으라고 강요했다. 결국 이사회에서 3명의 이사를 제외하고 정부 외압에 승복한 이사들이 손병두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신 전 이사장은 “내가 시달린 만큼 각 이사들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정부에서 접근한 것으로 안다.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그 이사들 중에는 회의 끝나고 조용히 내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얼른 사라진 분도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이사로라도 남아 재단을 지키려 했던 신 전 이사장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부산저축은행 투자로 손실을 입자 사직을 했다. “손병두 이사장 때 부산저축은행 투자 손실 사건이 터졌다. 투자액이 500억원이었다. 손 이사장은 도의적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 하도 기가 막혀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 싶어서 나라도 이사직을 사임한다고 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평이사 중의 하나인 나라도 책임진다고 사직원에 기록하고 물러났다. 사임한 후의 일은 잘 모른다.”

2006년 삼성과 정부로부터 독립했던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10년 후 어떻게 됐을까. 삼성꿈장학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보유했던 에버랜드 주식은 삼성이 다시 사갔다. 손병두 이사장은 호암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장학재단에 현재 삼성 출신 이사가 2명 있다. 40년 동안 삼성맨이었고 삼성생명 사장을 역임한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이 기금위원회 위원이자 재단 이사다. 마찬가지로 40년 동안 삼성맨이었던 이우희 전 삼성 에스원 사장도 이사로 있다. 우진중 삼성꿈장학재단 사무총장은 삼성 측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기존의 취지가 훼손된 거 아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이사에 참여하는 게 그게 뭐 문제가 되나. 이해가 안 간다”며 “여기 들어오신 두 분은 벌써 삼성에서 오래전 그만 두셨다. 이사회에서는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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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목록에 기록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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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는 에버랜드 주식도 에버랜드에 되팔았다. 우진중 사무총장은 “에버랜드에서는 주식을 매입해 줬다. 우리뿐만이 아니고 한국장학재단에도 똑같은 기회를 제공한 걸로 알고 있다. 에버랜드 주식이 비상장 주식이어서 무수익 자산이었는데, 이를 장학사업에 활용하기 위해서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이다. 세 배 이상 남기고 팔았다. 장부가가 70만원 정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200만원 정도에 팔았다.”

우 사무총장의 말대로 판 게 이익이었을까. 신인령 전 이사장의 말은 달랐다. “내가 재단 이사장을 맡은 초기에 삼성 임원에게 들었던 조언을 잊을 수가 없다. 재단 운영상 필요할 때 삼성전자 주식 등 다른 주식은 매각해서 현금화하더라도 에버랜드 주식만은 장차 상장되면 엄청나게 뛰어오를 것이니 그때까지는 절대로 팔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주식을 비상장 상태에서 팔았다니 재단의 기금운영 원칙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 만일 그것을 상장 때까지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은 조 단위의 재단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에버랜드 주식은 2년 후인 2014년에 상장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팔지 말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상장 이후에 엄청난 가격이 된다는 게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주식이 지배구조나 승계구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조다. 삼성이 매각을 막은 것은 아무에게나 팔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애초의 설립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 의혹 중심엔 원세훈 전 국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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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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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반, 국정원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2013년 3월 18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원 인트라넷에 ‘(원세훈)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공개했다. 진 의원에 따르면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은 2009년 5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최소 25회 게시됐다. ‘원장님 말씀’ 중에는 민간인 사찰로 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심리전단이 보고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은 내용 자체가 바로 우리 원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2010년 7월 19일)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확실한 징계를 위해 직원에게 말하기보다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기 바람.”(2011년 2월 18일)

이와 관련해 <신동아>는 2013년 7월 보도에서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문건의 양식과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용한 문건의 양식이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국정원의 조직적인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기사는 전직 지원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에 공조했을 의혹을 제기하며 “여러 기관이 서로 정보를 공유해가며 사찰과 감찰을 진행했다면, 당연히 그것을 조율한 곳도 있었을 것이다.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박영준 전 차관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국정원 정치개입을 주도한 원 전 원장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은 이 문제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이 국정원의 지시와 예산으로 이뤄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2013년 11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소관 예산안 심의를 위한 전체회의에서 강원경찰청의 민간인 사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 후 실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진 의원은 “원 전 원장의 2009년 2월 취임 이후 ‘원장님 지시 강조말씀’을 통해 살펴보면 2009년 5~7월 3개월간 시민단체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확실하게 대처하라는 지시를 반복적으로 내리고 있다. 강원경찰청의 민간인 사찰은 그 이후에 이뤄진 것”이라며 “보안수사대의 국가보안법 혐의 공작과 내사 첩보 건에 대해서는 경찰청 자체 수사 예산이 아니라 국정원에서 기획조정할 수 있는 특수활동비가 집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이 대학 총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0년 5월 이화여대 총장 선출을 앞두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고위 간부들이 이화여대 학교법인 이사들을 잇따라 접촉하는 등 총장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1년 4월 <주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국정원 고위 인사들이 총장 선거를 3개월 앞둔 2010년 2월 이화여대 법인 이사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국정원 2차장 등이 윤후정 전 이화여대 이사장 등을 만나고 싶다고 전해왔다는 것이다. 당시 이화여대 내에서는 한쪽에서는 ‘좌파 후보는 안 된다’는 말이 나왔고, 다른 쪽에선 ‘국가 권력을 이용하는 후보가 있다’는 식의 말이 회자됐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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