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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간첩증거조작 사건의 증인이 추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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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에서 근무하는 허재현입니다. 2년 전 이맘때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지요.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 기억나십니까.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행위를 했다며 기소됐는데 알고 보니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제출한 증거 서류가 위조된 것이었지요.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증거조작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 변호인의 역할이 무척 컸지만 엉뚱하게도 증거조작 실행자인 김원하씨의 역할도 막판에 한몫했습니다. 그는 증거조작을 세상에 실토하며 모텔에서 자살 기도를 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지요. 이후 그는 감옥에 갇혔고 2년형(사문서 위조)을 선고받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이 사건을 다시 설명하는 이유는, 김원하씨가 지난 11일 형기를 만료하고 출소해 중국으로 추방되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김씨는 출국 직전 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15일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기자님, 제가 다시 한번 사건 전말을 밝히면 국정조사나 특검 같은 것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외국인보호소에 더 갇혀 있게 된다 하더라도 중국으로 가지 않고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김원하씨는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저는 냉정하게 조언했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요. 특검과 국정조사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야 벌어지는 것인데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김원하씨는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문성·이시원 등)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지금까지도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증거조작 의혹 관련 진상조사팀’은 고발(사문서 위조 혐의 등)됐던 이문성·이시원 검사의 휴대전화도 살펴보지 않고 불기소 처분했고 대검찰청 감찰팀은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검사들의 진술을 받아들여 정직 1개월(직무태만)의 조처만 내렸습니다.

김원하씨는 16장의 자필 편지를 새로 건넸습니다. 편지에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국정원 직원을 만나 무슨 지시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검사들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써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건,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증거조작 서류가 8건(출입경기록 등)이 아니라 15건(출입경기록 외 선양주재 한국대사관 확인서 등)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서류를 위조해 재판정에 제출하는 동안 검사가 몰랐다는 건가요. 한국 사회는 그것을 믿습니까?” 김원하씨는 항변했습니다.

증거조작을 부탁한 국정원 직원이 검사가 시킨 일이라며 자신에게 부탁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건 국정원 직원이 김씨에게 그냥 한 말일 수도 있고, 또한 이것을 같이 들은 제3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증거조작은 이미 사실로 드러났기에 위조된 서류가 8건인지 15건인지 그것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새 증언이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제가 비록 잘못은 했지만 그 증거를 왜 조작했는지 하늘은 알 것이기에 감옥 안에서 성경책을 보면서 버텼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희망이 사라지자 적잖이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이문성(현 전주지검 부장검사)·이시원(현 법무연수원 기획과 과장) 검사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김원하씨의 소망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그는 조선족(중국 국적)이 아니라 1965년 북한을 나온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합니다. 김씨 어머니의 고향은 경남 밀양입니다. 1965년은 한-중 수교 이전이라 남한에 올 수 없어 중국에 머물며 조선족처럼 살아왔다는 게 김씨의 설명입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법무부에 대한민국적 판정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김원하씨는 국정원 직원이 “국정원에 협조하면 애국자 특별귀화 형태로 국적 회복을 돕겠다고 해 증거조작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김원하씨는 혹여 자신의 양심선언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불편하게 한 것 때문에 국적 회복을 거부당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한겨레

허재현 토요판에디터석 기자


김원하씨는 18일 중국으로 추방됐습니다. 곧 중국 당국의 추가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추가로 중국에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우성씨는 비록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어디에도 취업이 되지 않아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은 과연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긴 걸까요.

허재현 토요판에디터석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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