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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정리뉴스] 다시 보는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오피스텔서 파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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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야당 의원들이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비밀 태스크포스(TF)’가 운영된 서울 혜화동 국립국제교육원을 급습했습니다. TF 직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버텼고 대치는 이틀간 이어졌습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비밀 TF 사무실을 급습한 야당 의원들을 두고 “2012년 12월 국정원 여직원을 미행하고 감금한 것과 똑같다”고 말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서울 동숭동 국립국제교육원 앞에 진을 치면서 TF 직원들을 건물에서 나오지 못하게 막아 ‘감금’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3년 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여러 모로 닮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해당 사건을 돌아봤습니다.

■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서 파일 삭제

18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2012년 12월11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 앞에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과 당직자들, 언론사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가 수개월 동안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는 불리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는 유리한 내용의 댓글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 급습한 것입니다. 민주당 측은 김씨가 인터넷에 댓글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범죄 현장을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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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12일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오피스텔 앞을 지키고 있다. | 김문석 기자kmseok@kyunghyang.com


해당 오피스텔 안에는 김씨가 있었습니다. 민주당 측은 김씨가 댓글 작업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컴퓨터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이틀간 오피스텔 앞에서 대치했습니다. 현장에는 당시 관할서인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이 상황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공론화됐고, 경찰은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김씨는 당시 집 안에 있으면서 하드디스크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디스크 조각 모음’까지 하며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신이 사용한 아이디와 닉네임 등이 적힌 텍스트 파일과 인터넷 접속 기록을 지운 것입니다. 그런 뒤 김씨는 업무용 노트북을 경찰에 임의 제출했습니다.

■ 인권 침해 ‘프레임’

민주당 측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반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국정원 직원을 감금해 인권을 침해했다며 역공에 나섰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12월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3차 TV토론에서 “증거도 없이 2박3일 동안 여직원을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부모도 못 만나게 한 게 인권침해 아니냐”며 “문 후보는 여성인권 침해에 대해 한마디 말씀도 없고 사과도 안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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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왼쪽)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013년 8월16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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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 직후인 오후 11시, 서울 수서경찰서는 돌연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문자메시지를 서울경찰청과 수서경찰서 출입기자들에게 발송했습니다. 당시 수서서 수사팀 관계자는 “갑자기 서울경찰청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습니다.

언론에 배포한 서면 보도자료는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일방적으로 밀린 것으로 평가받은 TV토론이 끝난 지 한시간 만입니다.

그러나 이후 경찰의 후속 수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사실이 드러납니다. 의도가 뭐든, 졸속 수사 결과 발표였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발언과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국가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본질은 흐려지고 ‘여성 감금’ ‘인권 침해’ 프레임이 부각됐습니다. 국정원 직원 김씨와 새누리당도 민주당 전·현직 의원 10여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 결과는…

검찰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 2013년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1심은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2심은 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을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원 전 원장을 법정 구속했습니다. 국정원의 댓글 활동은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고, 다른 후보를 낙선시킬 의도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심에서 증거로 인정된 e메일 파일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현재 파기 환송심이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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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월9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검찰은 당시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앞에 있던 강기정·문병호·이종걸·김현 의원을 200만~500만원에 약식 기소했습니다. 우원식 의원을 기소유예, 유인태·조정식·진선미 의원은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법원은 “공판 절차에 의한 신중한 심리 필요성이 상당하다고 인정된다”며 직권으로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습니다. 현재 공판이 진행 중입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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