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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항소심 대반전…무분별한 재벌 증오가 부른 逆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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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아 석방 / '땅콩회항' 조현아 집행유예 감형 배경 ◆

매일경제

`땅콩회항`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석방되어 서울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재훈 기자]


항소심의 대반전이었다. 유례없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은 항로변경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김상환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에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항로'는 사전적 의미대로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죄형법정주의'란 범죄와 형벌을 법률로 정하고 이 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5일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KE086 일등석에 탑승해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박창진 사무장 등에게 폭언·폭행을 하고 항공기를 되돌리게 했다. 당시 항공기는 출발하기 위해 탑승구를 닫고 견인차에 끌려 22초간 17m가량 계류장에서 이동하다가 조 전 부사장 지시로 멈춘 뒤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이에 검찰은 "항공기의 예정된 '항로'는 탑승구를 닫은 뒤 지상에서 이동할 때부터 시작된다"며 조 전 부사장에게 항로변경죄 혐의를 적용했다.

1심은 "항공보안법 입법 취지와 목적을 고려해 항로에 지상로를 포함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항로는 하늘길인 '항공로'를 의미할 뿐"이라는 조 전 부사장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항로' 정의가 항공보안법 등 관련 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뚜렷한 근거 없이 '항로'를 사전적 의미보다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행 항공보안법은 승객에 의한 각종 기내 폭력행위를 유형화·세분화하고 있으므로 규제·처벌 대상 범위를 넓게 하기 위해 항로에 대한 의미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계류장 내 이동은 항공기의 지상 이동 중에서도 가장 위험성이 낮은 단계이고 이 사건의 램프리턴과 같은 계류장 내 회항은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므로 이를 항로 변경으로 보는 것은 법규를 지나치게 확장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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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기업 오너가(家) 일원의 '갑(甲)질'이 사회적 공분을 사면서 애초에 무리하게 법을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견 변호사는 "재벌이라는 신분 때문에 원심에서 과하게 처벌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1심 재판부가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조 전 부사장 부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 것도 '망신주기'에 불과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일었다. 물론 조 전 부사장이 재판 초반까지도 자기 행동을 부사장 업무지시 권한에 따른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린 것은 양형을 가중하는 데 작용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됐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고인은 사무장과 승무원 등 피해자들 자존감과 인격에 상처를 줬고, 그들은 여전히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며 "피해자들 상처에 공감하고 안쓰러워하는 적지 않은 시민들이 피고인을 엄벌하라고 탄원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고인 행위가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을 어느 정도 침해했는지 여부를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부사장이 항공기 안전 운항을 저해하려는 직접적인 의도나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은 두 살 쌍둥이 자녀의 엄마이고 범행 전력이 없는 초범이며 대한항공 부사장 지위에서도 물러났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한 차례 더 주는 것을 외면할 정도의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이런 처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판결문을 받아 보는 대로 무죄 부분을 분석해 다음주 중 대법원에 상고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상고심은 법리를 다투는 법률심인 만큼 '항로' 해석을 두고 다시 한 번 팽팽한 싸움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현정 기자 / 유태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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