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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레이더P] 참여정부 때 급성장 경남기업, 권부 출신 전방위 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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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성공신화를 쓴 인물이다. 그는 자서전 '새벽빛'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1000원을 밑천으로 사업이라는 거친 바다에 뛰어든 것도 이 무렵이다. 끈질긴 노력과 세상의 흐름을 읽는 안목 그리고 성실하게 가꾼 인맥을 바탕으로 1977년 건설업계에 뛰어들어 현재 연매출 2조원을 넘나드는 대아그룹·경남기업 오너이자 최고경영자가 됐다."

그런데 성 전 회장의 사세 확장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는 바로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그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자연히 관심이 모인다. 또 권력 심장부인 국정원, 대검찰청, 감사원, 금감원, 선관위 출신 등을 사외이사 등으로 전방위로 영입한 점도 눈길을 잡는다.

◆ 행정수도 이전 테마주 대아건설 그리고 경남기업 인수

성 전 회장은 대아건설을 통해 경남기업으로 이어지는 충남 최대 건설사를 일궜다. 그는 자서전에서 대아건설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나는 7억원을 우선 지불해 경영권을 인수한 뒤 나머지 2억원어치 지분을 가진 분들을 회의에 소집해 지분 인수를 제안했다. 나는 자산 19억원을 가진 대아건설 사장으로 취임했다. 1982년 내 나이 서른 둘."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으로 서울로 상경해 화물 중개업으로 돈을 벌었다. 이 돈을 바탕으로 대아건설을 인수했던 것이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사를 키워 대아건설을 충남 지역 1위 건설사로 올려놓았다. 이후 이 같은 상황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외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은 대아건설 성장에 날개를 달았다. 노무현정부 탄생과 더불어 대아건설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 테마주는 유명한 일화다. 대아건설은 '행정수도 이전 테마주'로 엮이면서 주식시장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03년 대아건설은 보성건설 금광기업 등 경쟁자를 제치고 경남기업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매출 성장도 극적이었다. 참여정부 초기였던 2003년 대아건설과 경남기업 매출액은 각각 4888억원과 3254억원으로 합계 8142억원이었다.

그런데 참여정부 말기였던 2007년 합병회사 경남기업 매출액은 1조4189억으로 74% 증가했다. 반면 이명박정부 시절 말기였던 2012년 매출액은 1조3034억원으로 이명박정부 초기보다 오히려 줄었다.

참여정부 시절 성 전 회장이 이끌던 경남기업은 (주)행담도개발에 120억원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성 전 회장은 2007년 2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성 전 회장이 (주)행담도개발에 이 같은 특혜를 주면서도 흔쾌히 제안에 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남기업은 351억200만원에 행담도매립공사를 따냈다. 발주처인 행담도개발이 '갑' 지위에 있었던 만큼 '을' 위치에서 요구를 들어줬던 것으로 단순히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행담도개발 사업 추진 주체를 보면 그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행담도개발 사업은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등 참여정부 실세들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참여정부 핵심이 추진하는 사업에 적극 협력해 '공사 수주' 등 사업적 이득을 취할 목적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성 전 회장과 참여정부 간 밀월관계의 일단이 드러난 사건일 수도 있다. 대아건설 과거 사업보고서에서 "당사는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관급공사 위주 수주 매출을 통해 성장했다"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참여정부 시절 성 전 회장 포지션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 성 전 회장 사업은 참여정부 시절 번창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은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우리 회사가 급성장한 것은 인프라 확충이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농업 기반 조성공사와 통신시설 설치공사를 많이 수주했기 때문이었다"며 "전체 수주액의 20~30%는 이윤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공사가 끝나면 직원들 편에 공사를 도와준 분들에게 과일이나 고기 같은 것을 보내곤 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 정·관계 인맥 영입에 올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그동안 권력 심장부인 국정원, 대검찰청, 감사원, 금감원, 선관위 출신 등을 전방위로 영입했다.

성 전 회장은 이들을 주로 사외이사로 끌어들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대표이사와 감사를 맡기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퇴 성공신화로 유명한 성 전 회장이 부족한 인맥을 외부에서 확보하려고 공을 들인 대목이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성 전 회장과 같은 충청권 출신이었다.

14일 경남기업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04~2014년 사업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경남기업 주요 외부 인사는 총 26명에 달했다.

주요 인사들로는 김의재 전 15대 국회의원, 강창모 전 감사원 국장, 임좌순 전 선관위 사무총장, 한광수 전 대검찰청 부장검사, 임창열 전 재정경제원 장관, 전형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이향렬 전 건교부 차관보, 차문희 전 국정원 제2차장, 김상우 전 금감원 부원장보 등이 꼽힌다

성 전 회장은 2003년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경남기업을 인수했다.

그 직후 김의재 전 자민련 의원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충남 보령 출신인 김의재 전 의원은 이명박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한 김효재 전 의원(18대) 형으로도 유명하다. 2004년 당시 경남기업에는 강창모 전 감사원 제3국장이 감사로, 임좌순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사외이사로 각각 근무했다. 이듬해부터 2006년까지는 한광수 전 대검찰청 부장검사가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서울고검 사무국장 출신인 성백영 전 경북 상주시장도 2006년 약 8개월간 사외이사로 있었다. 2006년은 앞서 성 전 회장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밝혔던 시점이다.

노무현정부 말기인 2007년에는 사외이사 진용이 종전 검찰·선관위 출신에서 경제 관료로 대폭 바뀐다. 또 대표이사도 현대건설 출신으로 교체된다.

당시 임창열 전 재정경제원 장관(2007~2010년), 전형수 전 서울지방국세청장(2007년), 이향렬 전 건교부 차관보(2008~2009년)가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또 이근식 전 행자부 장관은 2011~2012년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김호영 전 현대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영입됐다. 이후 김 전 부사장은 2012년까지 대표이사로 활동한다. 또 성 전 회장은 감사로 충남 서천 출신인 차문희 전 국정원 제2차장을 영입했다. 차 전 차장은 2007년 국정원 대전지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상태였다. 그는 2010년까지 경남기업 감사로 활동한 뒤 이명박정부 말인 2012년 국정원 제2차장이 됐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전옥현 전 주홍콩 총영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된 점이 눈길을 끈다. 또 올해는 이영배 전 신한은행 기업여신관리부장이 추가 선임됐다. 2011~2013년에는 김덕기 전 신한은행 충남영업본부장이 사외이사로 근무했다. 이 무렵은 경남기업이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시기였다.

[이상덕 기자 / 박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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