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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전문] “박 대통령 초당적 리더십 필요…‘문고리 3인방’부터 자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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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박근혜 정부 2년 진단 ⑥ 제언

전문가 좌담


단도직입,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성향과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 2년을 평가하는 참석자들의 언어는 신랄하고 직설적이었다. 그 2년은 무능과 무책임의 2년이었고, 국민에겐 실망과 낙담만 가득했던 2년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남은 임기 3년에 거는 기대치 역시 크지 않았다. 가시적 개혁 성과를 내기 위한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의 주문은 명료했다. “책임 의식을 갖고 초당파적 국가수반의 모습을 보여라.”

좌담은 지난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여론조사 전문가인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의 사회로 열렸다.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와 정치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참석했다.

한귀영: 현실 정치의 이론과 동학을 꿰뚫고 있는 분들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이철희: 지난 2년의 키워드는 ‘무능’이다. 근래 정부에서 가장 무능하지 않았나 싶다.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이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원전에 엉터리 부품이 들어가고, 통영함 납품 비리로 해군 총장이 옷 벗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연말정산 논란은 또 어떤가. 일이 풀리지 않은 건 야당 반대 탓도 아니고, 행정적 미스 때문이다. 대통령의 첫번째 역할이 뭔가. 행정부 수반으로서 행정을 원활하게 움직이는 거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권은 행정적으로 굉장히 무능한 정권이다.

박성민: 핵심을 짚었다. 그런데 그 무능의 책임이 어디 있는지 솔직히 난 모르겠다. 준비 부족인지, 대통령의 능력이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 시스템의 한계인지. 세계 환경 자체가 일국 수준에서 풀기 어려운 난제들을 쏟아내는 측면도 있을 거다. 그러다보니 국민들로선 이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국가는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른바 ‘시대정신’이랄까, 과거엔 명확하게 보이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 거다. 문제가 안 풀리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아는데 실행을 못하는 경우, 둘째는 원인은 아는데 해결책 모르는 경우, 셋째는 원인도 해결책도 모르는 경우다. 지금은 원인도 해결책도 불투명하고, 해결책을 안다고 해도 국민 모두가 기득권화돼서 실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니 대통령이나 특정한 누구에게만 책임을 묻기 힘든 상황이다.

이: 하지만 답은 대체로 나와있다. 중요한 건 선택을 하고 어떤 프로세스로 풀어나가느냐다. 그게 리더십의 영역 아닌가.그 부분에서 대통령이 독선·독주 행태를 보이니 문제가 안 풀리는 것 아닌가. 행정은 관리의 영역이다. 안전 역시 마찬가지다. 연말정산 파동이 야당의 발목 잡기 때문에 생겼나? 아니다. 행정조직이 다른 데 신경 안쓰고 현안에 집중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이 ‘관피아’라는 말까지 했다. 그건 행정조직의 수반으로서 해서는 안 될 모욕적인 말이다. 그러니 관료들이 의욕을 갖고 일할 수 있겠나. 공무원 조직에도 일부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박: 나 역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우리나라 관료들이 보여준 역량이었다. 그동안 관료들을 꾸준히 비판해왔지만, 이 나라가 그나마 굴러가는 건 똑똑한 엘리트 관료들의 공이 70~80%는 된다고 봤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그 신뢰가 무너졌다. 참사 전 누적된 비리와 무책임, 사건 당일 청와대와 군·해경이 보여준 허술한 대응과 명령체계, 이후의 부실한 해명과정까지 총체적 부실의 연속이었다. 이게 과연 박근혜 정부 들어와 생긴 문제일까?

한: 무능한 정권이라는 데는 두 분 다 동의하는데, 한 분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다른 한분은 부실한 행정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박: 관료들이 역량 발휘를 못하는 건 국정철학, 국정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기엔 시대정신이 뚜렷했다. 양김이 독재 잔재 청산하고 민주주의로 가자고 하면 관료도 국민들도 따라갔다. 그런데 지금은 뭘 해야하는지, 뭘 고쳐야하는지가 뚜렷하지 않다. 사회 전체가 길을 잃은 거다. 사람들한테 시대정신이 뭐냐고 물으면, 대체로 지금 결핍된 것들을 이야기하게 돼 있다. 일제시대엔 독립, 나라가 못 살 때는 잘 살아보자, 1970~80년대는 군사독재 끝내자는 데로 모아졌다. 2000년대엔 선진화, 국민소득 2만달러, 3만달러 얘기하고.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말을 못한다. 소득 3만달러 가면 복지도 늘어나도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좋아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거다. 기대했던 낙수효과도 없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이런 문제들을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다 알았다. 국민성공시대, 국민행복시대도 그래서 들고나왔던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집권해보니 쉽지 않은 거다. 경제는 수십 년 동안 수출의존형으로 고착돼왔는데, 갑자기 내수기반성장으로 전환할 수가 있나. 패러다임 전환을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지금 해야할 과제는 분명하다. 같이 살자는 거다. 중요한 건 ‘터닝’(방향전환)이다. 간디가 그랬다.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 없다고. 박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터닝을 약속했다. 그런데 말만 하고 터닝을 안 했다. 그러니 문제가 되는 거다. 시도를 했는데 저항에 부닥친 게 아니라, 시도 자체를 안 했던 거다.

박: 사실 한국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들은 터닝 자체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언제 미래 경제모델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한 적이 있나. 정치적 비판만 해왔을 뿐이다. 야당은 중소기업 서민중심의 경제성장을 이야기했지만, 속으론 대기업이 수출 많이 해 돈 벌어오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낙수효과가 실재했으니까. 그런데 이 시스템이 멈춰버렸다. 전략과 기조를 바꿔야 하는데 관료도 정치인도 두려운 거다. 여기엔 굉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에 주어진 과제는 이전 정권에 주어졌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 중산층 붕괴와 일자리 유출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이 문제를 풀었다는 나라가 한 군데라도 있나. 세계적 전환기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너무 큰 숙제를 안고 들어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 어떤 해법이든 명쾌한 것은 없다. 문제는 보수가 구사하는 해법 자체가 매우 낡았다는 거다. 부동산 움직여 경제살리겠다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경제가 불쌍하다’는 앞뒤 안 맞는 비문(非文)이나 들이대고. ‘불어터진 국수 먹은 경제가 불쌍하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어떻게 경제를 살릴 수 있겠나. 전세계를 둘러봐도 이렇게 후진 해법을 쓰는 보수는 우리밖에 없다. 부동산으로 경제살린다는 건 이미 2008년 금융위기로 실효성 없다는게 증명되지 않았나.

박: 역으로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만약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으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난 비관적이다.

이: 동의한다.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박: 과거엔 정권 중간평가를 할 때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평가하면 됐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 컨센서스(합의) 같은 게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학자도 관료도 길을 잃어버렸다. 암묵적 컨센서스도 없고.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남탓만 하고 있다는 거다. 국회에는 시한을 못박아 법안 통과를 압박하고, 걸핏하면 언론 탓을 하고.

한: ‘무능’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사례나 장면이 있나?

이: 세월호 참사다. 가깝게는 연말정산, 담뱃값 인상도 있다. 담뱃값 올려놓고 노인·저소득층 어렵다고 하니 저가담배 얘기 꺼내는 식이다. ‘방향 부재’가 문제였던 게 아니라, 한마디로 준비가 없었던 거다. 행정은 기본적으로 프로세스 관리다. 대통령과 정부가 그걸 안 하고 있다. 연말정산도 마찬가지다. 반발과 부작용에 대한 예측과 해법이 있어야 했다. 그게 행정권을 대통령에게 귀속한 헌법의 취지 아닌가.

박: 요즘 답답함을 느끼는 게 정치인이든 학자든 자기 전문 분야를 제외하면 아는 게 극히 단편적이라는 거다. 정치학자들은 경제를 모르고,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모르고, 정치인들은 경제 군사 안보를 모른다. 그러니 누구도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거다. 그러니 리더십이란 게 생길 리가 있나. 그 공백을 관료들이 다 메우고 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내는 세금이 어떻게 매겨지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그냥 내라는대로 내고, 돌려주는대로 받고, 토해내라면 토해내고.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좋은 사회라면 안보 교육 조세 등 그 나라의 모든 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커피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공적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부족하다는 얘긴가?

박: 민주화·선진화라는 게 별 건가. 은행 가면 있는 대기번호표 같은 거다. 번호표 장점이 뭔가? 예측가능성과 공정성이다. 번호표 뽑으면 승복하고 따른다. 세금이든 입시제도든, 공천제도든 마찬가지다. 정당에서 후보자 뽑으면서 수학자 불러 계산하고 가중치주고…. 이런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못 된다. 상식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 사회의 문제들에 논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다 분절돼 있다. 개인들은 성찰이 부족하고 사회는 통찰이 부족한 거다.

한: 거시적 평가는 나왔는데,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잘한 것과 못한 것 한가지씩 꼽아보면 어떨까?

박: 잘한 것? 이철희 소장은 없다고 할 것 같은데(웃음).

이: 복지 늘린 건 잘한 거다. 이명박 정부에 견줘 총량이 늘었고, 새로운 복지도 생겼다. 다만 재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복지 축소로 가려는 듯해 우려스럽다. 정치라는 건 ‘정의내리기’ 싸움이다. 돈이 없으니 복지를 줄이자, 혹은 돈이 없으니 세금을 더 걷자는 건 모두 빈곤한 논의다.

한: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에서 전문가 30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잘한 것으로 기초연금 도입 등 복지 확대를 꼽더라. 다만 연금 지급 범위를 애초 약속보다 줄인 것에 대해선 비판적 의견도 있었다.

박: 외교도 누구는 잘했다 하고 누구는 못했다고 한다. 사실 구체적 분야를 두고 평가를 내리기엔 이른 감이 있다. 대부분의 사업이 아직 진행 중이고, 내년은 돼야 평가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인사·정치 문제야 지금도 할 수 있지만, 이미 많은 평가가 있었으니….

한: 가장 잘못한 거는 뭘 꼽을 수 있을까?

이: 무능했던 분야가 워낙 많아서.

박: 역시 무능을 너무 강조한다(웃음).

이: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유능했다. 세월호로 비틀거렸지만, 6·4 지방선거에서 선전하고, 7·30 재보선을 압승하지 않았나. 지지율도 40%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무엇보다 과거 정부들과 달리 지배블록 내부의 불협화음이 크지 않았다. 외교는 평가가 엇갈리는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으면서 그런대로 잘 했다고 본다. 남북관계는 무능했고, 경제는 최악이었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가장 평가가 박한 게 ‘소통과 인사’다. 대부분 조사에서 100점 만점에서 30점이 안 된다. 긍정 평가가 많은 게 민생과 외교안보인데, 50점 수준을 유지하다 최근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대감을 갖고 높이 평가해왔는데, 이마저 실망스런 결과가 나오면서 대통령 지지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박: 박근혜 정부가 뛰어난 게 통치연합 관리다. 2012년 대선 때도 현직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고도 차별화에 성공했고, 초반 2년간 내부 분열 없이 선거도 잘 치렀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모두 ‘비박’이지만, 큰 무리 없이 끌고왔다. 권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는 거다.

한: 사실 지지율 떨어진 게 지난해말 비선 국정농단 의혹이 터지면서부터다.

박: 그때부터 <조선> <동아> 등 보수신문의 공격이 본격화됐다. 하지만 지지율이 떨어진 더 중요한 이유는 50대의 이반이다. 이들이 보수세력에 실망한 것인데, 다가올 총선·대선에서도 50대가 결정적 역할을 할 거다. 1차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1970년대 초중반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에 가면 저임금에 저항하고, 대학에 진학한 사람들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반정부의식을 키웠다. 2·12 총선, 6·10 항쟁의 주역이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주요하게 기여한 세대다. 그런데 이들이 2006년 지방선거부터 돌아섰다. 모든 선거에서 보수정당 후보에 투표하기 시작하는데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경제적 이유다. 김대중 정부 때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았고, 노무현 정부 때는 부동산 오를 줄 알고 집 샀다가 낭패를 봤다. 정치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다. 대통령 만들어줬더니 정작 자기들에게 절실한 민생 문제는 방기하고 4대개혁입법 같은 이념 이슈에 집중했다. 문화적 이유도 있다. 노무현 정권 들어 대학 나온 운동권들이 득세하면서 베이비부머 세대와의 이질감이 커졌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보수정부 들어서면 집값이라도 회복될 것이라 기대했던 거다.

한: 그랬던 50대가 다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건가?

박: 이명박·박근혜를 찍어줬는데, 생활이 더 어려워진 거다. 그러니 패닉이 찾아온 거다. 이들은 원래 보수정당 지지했던 세대가 아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봐도 수도권 50대에서 야당 지지율이 40%를 넘는다. 다음 대선에서 이 세대의 45%만 야당 후보를 찍어도 정권은 넘어간다. 앞으로 지지율에 부분적 반등은 있겠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놓기 전에는 추세를 뒤집긴 어려울 거다.

한: 지난 2년을 전임 정부의 초반 2년과 비교하면 어떤가?

박: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명박은 2008년 취임하자마자 총선 공천하면서 친박이 이탈했다. 노무현도 1년 뒤 치를 총선을 앞두고 분당했다가 탄핵 맞았다. 두 정권 모두 초반에 지배블록이 깨진 거다. 반면 박근혜 정권은 2013년 위협요소가 없었다. 국정원 댓글 파문이 있었지만, 야당이 대선 승복 했잖나. 국회도 과반 안정의석을 확보하고 있었고. 2013년에 속전속결로 개혁과제를 밀어붙였어야 하는데, 국정원 댓글, 종북과의 싸움으로 허송해버렸다.

이: 동의한다.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고도 일이 꼬인 건, 국정원 선거개입 파문을 잘못 풀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본인이 책임질 일이 없으면 털고 갔어야 하는데, 채동욱 검찰총장 날리면서 제동을 걸었다. 더 들어가보면, 워낙 안정적으로 집권하다보니 내부 주도권 다툼이 있었다. 2012년 대선 막판 엔엘엘(NLL) 이슈를 주도한, 남재준으로 상징되는 ‘안보 보수’가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의제선정을 주도했고, 대통령도 거기 말려들어간 거다. 만약 그때 박 대통령이 안보 보수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복지·경제민주화 쪽으로 의제 선정을 했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박: 취임 1년차에 김영삼의 금융실명제 도입 같은 개혁조치를 전격적으로 시도했어야 한다. 하지만 첫 1년을 종북과 싸우느라 다 보내고, 2014년에 세월호로 타격을 받았다. 올해가 골든타임이라지만 다 끝난 거다.

이: 이제 와서 새로운 뭔가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번에 내년 총선 출마할 정치인들을 내각에 불러들였다. 상식에 어긋난다. 10개월짜리 장관이 뭘 할 수 있겠나? 이건 무능의 차원을 넘어 무책임하기까지 한 거다.

박: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움직이려면 정치를 자기 편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이: 심지어 야당 복도 컸다. 강성도 아니고 대선을 두 번 연속 질만큼 유능하지도 않고. 이만큼 파트너로 삼기 좋은 야당이 어디 있었나?

한: ‘지지율의 덫’도 컸다고 본다. 인사 문제 때문에 취임 당시 지지율은 좋지 않았지만, 1년차 지나면서 60% 후반까지 치솟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전임들과 달리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갖게 됐고, 뭔가를 준비하고 실행해야 할 시기를 놓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박: 박 대통령 지지율이 오른 건 ‘초당파적 국가원수’의 모습을 보이면서 ‘외교 이벤트’ 할 때였다. 그러는동안 주요 지지기반인 50대는 취임 2년째가 돼도 삶이 나아지지 않으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 지지율의 덫에 빠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7·30 재보선이었던 것 같다.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깨고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지지율이 반등했고 결국 오만에 빠졌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친 거다.

이: 박 대통령의 특기가 진영대결을 잘 만들어내는 거다. 지지를 철회하려던 중간층들을 꼼짝없이 붙든다. 겸손하게 방향 전환을 해야 할 시기에 7·30 재보선에서 이기면서 ‘양극으로 갈라치면 버틸 수 있다’는 유혹에 휘말린 거다. 하지만 ‘갈라치기’를 통한 지지도 결집이란 것도 일시적이다. 실질적인 민생 성과가 안 나오면 무너진다.

한: ‘민생 프레임’도 양날의 검이다. 사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위기를 넘긴 것도 ‘민생 살리기 프레임’이었잖나. 민생을 그렇게 강조했는데도 피부로 느끼는 변화가 없으니 국민은 더 분노하는 거다.

박: 한국 보수의 특징이다. 정권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고, 정권을 잡고나서도 모든 것을 다 한다. 선거 국면에선 혁신을 세게 내걸고, 정권 잡고나면 눈치 안 보고 기득권으로 회귀한다.

이: 한마디로 싸움에 능한 거다.

박: 정치라는 건 권력을 다루는 기술이다. 새누리당은 이걸 잘 안다. 새누리당이 선거 때 혁신하는 건 혁신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들에게 대선은 전재산을 거는 도박이다. 두 번이나 져보니 잃는 게 너무 많았다. 그러니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반면 진보는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걸지도 않고, 집권하고 나서도 뭔가를 하는 데 굉장히 소극적이다.

이: 권력관이 달라서 그렇다.

박: 대선은 ‘권력 투쟁’이지 ‘담론 투쟁’이 아니다. 1대0으로 지나 10대0으로 지나 마찬가지다.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보수는 이게 회로화돼 있다. 선거 때 어떤 말을 하면 누가 좋아하는지, 심지어 지지율을 시간단위로 체크한다.

한: 박근혜 정권 2년을 상징하는 장면하면 뭐가 떠오르나?

이: 패러디물인데, 길 가는 사람에게 정홍원 전 총리가 ‘총리 하실래요?’라고 묻는 장면이다. 이완구 총리가 후보자 시절 낙마 위기에 몰렸을 때 나온 건데, 무수히 반복된 인사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만약 진보정권이 이랬으면 보수는 어땠을까? 그 다음이 신년 기자회견할 때 장관들 돌아보며 “대면보고가 필요해요?”라고 물었던 장면. 최경환 부총리 얼굴 벌개지더라.

박: 내 스마트폰 화면에 ‘인수위 대변인에 윤창중 임명’이라는 속보가 떴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정작 그 분이 미국에서 사고쳤을 때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선거기간 보여준 혁신의 모습이나 ‘100% 대한민국’이란 구호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선택이었다. 인재풀의 한계나 이후 인사의 방향이 그 속보 문자 한줄로 다 읽히더라.

한: 설연휴 때 부산 시댁을 갔더니 박근혜를 지지했던 그 지역 친지들이 대통령 얘기 자체를 않더라. 부산 뿐 아니라 대구 지역 민심도 많이 돌아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은 임기가 3년인데, 반전 기회 있을까.?

이: 대통령이 하기 나름이다. 대선 때 상징 인물은 김종인이었다. 그런데 집권 뒤 남재준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최경환으로 대체됐는데 실력이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남은 3년은 누굴 내세울 건지 궁금하다. 잘 하려면 김종인 같은 인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한: 체질과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쉬울까?

이: 마음 먹기에 달린 거다. 그런데 지금 하는 것 보면 안 바뀔 것 같다.

박: 박 대통령이 생각을 잘 바꾸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40%대까진 회복할 것으로 본다. 고정지지층이 워낙 탄탄하니까. 국민들 역시 어떤 특효약을 써도 경기가 갑자기 살아나고 중산층 소득이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대통령이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도 이해하지 않을까.

한: 지난 2년도 끊임없이 민생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국민들이 쉽게 납득할까?

이: 민생도 민생 나름이다. 지난 2년은 나토(NATO·No Action Talk Only) 민생이었다. 말만 했지 실행이 없었던 거다. 그러니 앞으로 3년은 시늉만 해도 민심이 돌아설 가능성은 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는 내야하지 않겠나.

박: 경제분야 실적이 좋다고 지지율이 오르는 것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엔 주가, 국민소득 등 외형적 지표가 좋았어도 지지율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미 굳어진 편견을 깨기가 어려웠던 거다.

이: 양극화 때문이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책수단을 투입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박: 수출 실적 늘고 경상수지 좋아진다고 국민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골든타임은 안 온다. 구조개혁 자체가 어려운 상황 아닌가. 다만 국민들이 착해서 인사 문제 잘 풀고, 통합·화합하려는 모습 보이면 마음이 누그러질 수 있다.

한: 공적 이미지를 회복하는 게 절실한 거 같다. 지난 2년간 원칙과 신뢰라는 박 대통령의 공적 이미지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이: 장담컨대 그건 회복이 안 된다.

박: 박 대통령이 가진 상징자본이 대단하다. 양김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공적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욕망조차 공적으로 비쳤다. 문재인 대표가 고전한 건 친노라는 계파 이익을 공적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데 힘이 달렸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야당과 부지런히 소통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서라도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이란 이미지를 보인다면 지지율은 회복 될 거다. 하지만 근본적 개혁을 이루기엔 타이밍을 놓쳤다.

이: 대통령이란 자리가 당파성을 안 가질 순 없는 자리다. 하지만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탈정파’를 통해 보수, 새누리당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탈정치’로 가서는 안 된다. 어려운 게 아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들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국회 안에 여야 개혁파들이 합의해 만들어놓은 법안들이 상당하잖나. 과거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르윈스키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을 때 공화당과 거래하면서 민주당을 살렸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박 대통령이 지금 그걸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회의 이니셔티브를 인정하면서 야당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박: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초당파적 국가수반의 지위를 부여한다. 앞으로 3년간 당파 지도자가 아니라 초당파적 국가원수로 거듭나야 한다. 외교안보뿐 아니라 복지·조세·교육 문제 등 국민들에게 모든 기득권 다 버리고 동참해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대통령, 청와대부터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국민과 공무원한테만 바꾸라고 하면 통할 리가 없다.

한: 한마디로 박 대통령의 원칙주의는 편의적 원칙주의인 거다.

이: 지금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조치가 ‘3인방’ 자르는 거다.

박: 설령 그들에게 잘못이 없고, 그들 없이는 일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국민 요구가 있다면, 거기 오해가 있든 없든 따라주는 게 맞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들에게 잘못이 없는데 왜 그러세요?’ 하잖나. 그건 대통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 주권자인 국민에겐 오해도 권리다.

한: 박 대통령에게 추천할 만한 롤모델이 있을까?

이: 박 대통령은 지금 몰락한 대처를 모방하고 있다. 대처만큼 내용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메르켈 따라가겠다고 쇼도 했는데, 메르켈 리더십이라는 건 기다려주고 포용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그리스 문제 대처할 때 보면 단호하다. 대처 모델에서 메르켈 모델로 빨리 갈아타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국정이 제대로 굴러간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을 위시한 보수진영은 과거·현재·미래 평가에서 야당, 진보에 다 밀린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지지도를 보면 6·4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명박·박근혜 지지율이 김대중·노무현에게 역전당했다. 현재 지지도는 부정평가가 긍정평가의 2배에 이르고. 미래 평가인 차기 주자 지지율은 야권 주자 4명의 합이 50%를 넘는다.

이: 엊그제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고 했는데, 이게 말인가 막걸린가. 경제가 불쌍하면 국민은 비참한 거다.

박: 공직자는 국민이 분노하는 지점에서 함께 분노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퍼포먼스가 뭐였나? 대통령 눈물을 닦아달라는 것 아니었나. 국민을 편들어주겠다고 해야지, 국민에게 편들어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다.

한: 대통령이 되기 전엔 그런 메시지가 지지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부분들이 있었다.그런데 대통령이 되고난 뒤에도 그러는 건 굉장히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박: 마지막으로 주문인데, 언론탓, 국회탓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갈등과 상처, 증오가 많은 나라 아닌가. 진정한 리더십은 다름 속에서 에너지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거다.‘모든 게 내 책임’이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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