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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박대통령 ‘정치적 멘토’…“낮은 자세로 소통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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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

매일경제

이병기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과 본격적 인연을 맺었다. 당시 친박 원로인 홍사덕 전 의원의 추천으로 합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때도 여의도연구소 고문을 맡아 외교·대북 문제에 대해 정책 조언을 했다.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평소 언행이나 처신이 튀지 않고 신중하다는 평가다. 일본과의 외교 갈등이 고조될 때 주일 대사를 맡았고, 국정원 댓글 파문이 불거지자 국정원장을 맡는 등 박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1981년 노 전 대통령이 정무장관 시절 비서로 발탁됐고,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을 지냈다.

6·29 선언문 초안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안전기획부(현 국정원) 2차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일본 게이오대에서 객원교수를 지내는 등 ‘일본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정치특보를 지내며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당시 이인제 의원 측근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인연이 깊다. 당시 법무장관이던 김 전 실장이 6공 시절 마지막 안전기획부장으로 내정돼 있었으나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 장관은 내가 쓰겠다”며 이병기 실장을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밀령’을 전했다고 한다.

박정희정부 때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커리어가 비슷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후락은 박정희 정권 초기 6년간 비서실장을 맡았고, 1969년 3선 개헌 후 주일 대사로 나갔다. 이후 권력 중심에 복귀해 1970년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사실상 정부 2인자로 군림한 바 있다. 이에 비해 이병기 실장은 주일대사, 국정원장을 거쳐 비서실장에 올랐다. 박 대통령이 현직 국정원장인 그에게 세 번째 중책을 맡긴 배경에는 인간적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의 성품으로 볼 때 박 대통령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고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와도 2007년 박근혜 캠프에서 상당한 친분을 쌓은 바 있어 당청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도 기대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 정권에 줄곧 몸담았으나 개인적으론 고 김근태 의원이나 조영래 변호사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대학생 때는 형편이 어려워 소설 전집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신혼 때는 13평 아파트에서 할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사위는 구자원 LIG그룹 회장의 조카인 구본욱 LIG보험 상무다.

한편 이 실장은 이날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임명 소감을 밝혔다. 그는 “어려운 때 대통령을 모시는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비서실장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하고,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에서 제 부족함 때문에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그는 또 “더욱 낮은 자세로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 가교가 되고, 여야를 막론해 정치권과 정부와도 더욱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신헌철 기자 /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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