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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원세훈 판결 분석] 원세훈 '選擧개입' 지시했나… 1審 "확인 안돼" 2審 "궁극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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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실' 두고 1심은 엄격하게, 2심은 폭넓게 해석]

- 1심은

'휩쓸리지 말라'는 지시… '선거운동 말라'고 판단

- 2심은

'직원들 활동 들키지 않게 조심히 하라'는 취지로 봐

1심서 배제한 트윗 수십만건… 2심에선 증거로 추가 채택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을 동원한 원세훈(64) 전 국정원장의 '선거 개입' 혐의에 대해 1심과 2심이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이 사건 최종 판단은 대법원 몫이 됐다. 9일 공개된 2심 판결문과 작년 9월의 1심 판결문을 비교해 보면 그 사이에 새로운 증거가 나온 것은 거의 없고, 재판부의 해석에 따라 유·무죄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원 전 원장의 내부 지침을 둘러싸고 1심은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지시로 해석한 반면 2심은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라"는 지시라고 정반대 해석을 내놨다.

◇"휩쓸리지 말라"…같은 말 정반대 해석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심리전단의 활동이 선거운동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선거운동을 했다면 특정 정치인의 당선 또는 낙선이라는 목적이 객관적으로 인정돼야 하고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도 있어야 하는데, 원 전 원장에겐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1심은 "원 전 원장이 명시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시했다고 볼 만한 내용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선 정국을 맞아 원(院·국정원)이 휩쓸리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관리하라' '전 직원들이 선거 과정에서 물의를 야기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라'면서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명확히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2심 판단은 정반대다. 2심 재판부는 '대선에 개입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원 전 원장의 주장과 1심의 판단에 대해서는 "선거 개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들의 활동이 외부에 드러나 문제 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하라는 것에 방점을 둔 말"이라고 해석했다. 선거운동을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하라는 취지의 지시라고 본 것이다. 2심의 이런 판단에는 심리전단에서 선거운동 성향 글을 계속 올리고 있었고 원 전 원장도 그들의 글을 이미 보고를 통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 관계자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라며 "원장이 어떻게 심리전단 개개인이 무슨 글을 올리는지를 알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1심에서 배제된 증거 추가로 채택해

검찰이 확보한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에 첨부돼 있던 파일에 대해 1심과 2심은 증거 능력을 다르게 봤다. 1심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없을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증거로 인정해주지 않은 반면, 2심은 예외적인 증거 능력까지 폭넓게 인정해 증거로 채택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메일 계정 관리자인 김씨가 해당 파일을 작성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첨부 파일에 포함된 내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통상 법원은 형사소송법 313조에 의거해 작성자가 인정하지 않은 디지털 문서 내용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예외적으로 증거 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인 형사소송법 315조를 들면서 "첨부 파일은 김씨가 업무상 작성한 통상 문서인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트윗 또는 리트윗글 수십만 건을 증거로 추가 채택했다.

또한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사이버 활동에 따른 궁극적인 책임은 원세훈 전 원장이 부담해야 한다"며 국정원 직원들의 선거 개입에 대한 책임을 최고책임자인 원 전 원장이 부담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마치 배임 사건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하급 직원들의 행동을 CEO가 모를 리 없다'는 판단 아래 유죄를 선고하는 판결과 비슷한 맥락이다.

2심 판결에 대해 보수단체 등에선 "이는 북한 사이버 공격을 배제한 상태에서 내린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대선이 임박하면 더욱 거세지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수 진영 후보 탈락을 위해 더욱 노골적으로 댓글 등 인터넷 공격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판결대로라면 선거철에는 북한 인터넷 공격 등에 일절 대응하지 말고 손 놓고 있으란 말이냐"면서 "그러면 앞으로 누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과 조작에 대응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석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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