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탓… 국민 눈높이 아랑곳 않고 ‘자기 사람’ 고집이 주원인
제도 탓… 박근혜 야당 시절 ‘청문회 강화’ 주도해놓고 자기모순
시간 탓… 국정공백 자초해놓고 ‘경제 시급’ 총리 유임 억지 논리
■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 찾기 쉽지 않아”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새 출발을 공언했다. ‘국가대개조’와 ‘국민안전 시스템’ 등을 국정혁신을 위한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시대적 과제”라고 했다.
그러나 물러난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그 적임자가 아니라는 게 여론 평가였다. 안 전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의지에 맞지 않게 고액 수임료를 받아 문제가 됐다. 문 전 지명자는 친일·반민족 발언으로 세월호 참사로 요구된 국민통합을 이끌기에는 자격 미달로 분류됐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월27일 “총리로서 응당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정홍원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인 것도 그가 국정혁신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적쇄신이 원점으로 회귀한 데는 박 대통령 인재풀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민이 신뢰할 인물을 찾는 게 아니라 과거 인연, 강경보수 성향 등 자신의 스타일만 고수한 것이 근본 이유라는 것이다.
■ “신상털기식·여론재판식 검증 통과 어려워”
박 대통령은 “총리 후보자의 국정 수행 능력이나 종합적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여론이 반복돼 많은 분들이 고사했다”며 “여야가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도덕적 기준이 강화됐다고 볼 근거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전관예우,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등은 과거 정권에서도 낙마 사유였다.
인사청문회 제도 강화를 주도한 것도 현재 여권이다.
현 새누리당인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던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됐고 추후 인사청문 대상도 확대시켰다. 박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청문회법 강화를 주장했다. ‘인사 참사’는 제도 문제가 아니라 박 대통령 인사 자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인사수석실을 신설한것도 이전 인사가 비체계적으로 이뤄졌음을 자인하는 측면이 있다.
■ “국정공백에 시간이 없다”
박 대통령은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혼란이 지속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어 정 총리 유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 여기서 경제회복 불씨를 살리지 못하면 길을 잃게 된다”고 했다.
정 총리가 헌정 사상 최장기간인 60일간 ‘시한부 총리’를 한 것은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공무원 조직이 박 대통령 인사만 바라보느라 국정이 올스톱되고, 민심 이반도 급속히 확산됐다. 정 총리 유임으로 국정혁신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날 국민을 향해 유감 표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약속을 위반하면서 향후 국정쇄신 동력도 훼손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이 없다”며 경제 상황을 거론하는 것이 공허하게 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홍욱 기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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