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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바닥난 수첩·공감 능력 부족…청와대 참모들조차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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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헌정사상 첫 ‘사의 총리 유임’]

세월호 책임질 총리 재기용

유족·국민에게 해명도 없어

인사 실패 청문회 탓 돌리며

독단 국정스타일 유지 예고


26일 청와대가 발표한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결정’은 지난 1년4개월여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인사 난맥상의 결정판에 가깝다. 국정 분위기를 쇄신해야 할 ‘인적쇄신 카드’가 오히려 여론의 화를 돋우고 비판세력과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형국이다. 여권에서조차 이번 ‘유임 결정’에 대해 ‘무능·무책임·오기 인사의 종합세트’라는 평가가 나온다.

■ 무능 인사 이날 결정으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현 정부가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총리 후보자 1명을 지명할 실력조차 없음을 보여줬다. 청와대는 총리 인선 국면에서 “할 만한 사람은 검증이 두려워 손사래를 치고, 하겠다는 사람은 능력이 안 된다”는 하소연을 자주 했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가 보수적인 인사들 중에서도 박 대통령의 말을 잘 따를 인사들로 인사기준을 맞추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박 대통령의 ‘수첩’ 범위를 넘어 인재를 널리 구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액 수임료(안대희 후보자)에 대한 국민정서를 간과한 것도, 극단적인 보수성향과 식민사관(문창극 후보자)을 문제로 느끼지 못한 것도 결국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공감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총리 후보자의 경우 국회 인준 투표 통과가 필요하지만, 청와대가 국회를 설득하려는 진지한 노력도 없었고 그런 수완도 발휘하지 못했다.

■ 무책임 인사 잇단 인사 실패를 청문회나 ‘신상털기’ 탓으로 돌리는 태도 역시 인사권자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홍원 총리 유임 결정 이유로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로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어”라고 설명했다. 인사 실패 원인에는 눈을 감은 채, 그 결과인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만 내세우는 본말 전도의 어법이다.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퇴임 총리 유임’ 사태에 대해 홍보수석을 내세웠을 뿐, 자신이 직접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 총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부실대응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던 인물이다. 정 총리를 다시 기용하는 것은 청와대 스스로 누구에게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방선거 직전 박 대통령은 ‘눈물’로 세월호 유족들에게 사과했지만, 총리 유임 발표문에는 유족들에 대한 어떠한 양해나 배려의 설명도 없었다.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겠다는 발표는 있었지만, 여권에서조차 경질 요구가 높았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책임론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침묵했다. 인사 참사의 모든 책임이 ‘청문회 제도’에 있다는 투다.

■ 오기 인사 박 대통령의 총리 유임 결정에 대해 청와대 일부 참모들조차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대부분 수석들은 유임 사실을 몰랐다. 유임 전날 청와대 직원들은 총리 유임론을 주고받으며 “설마…, 그렇게까지야…”라고 농담처럼 여겼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총리 임명을 위해 지금껏 치른 사회적 비용이나 국민들의 답답함은 아랑곳 않고, ‘정 그렇다면 청문회 안 하는 이런 방법도 있다’, ‘더는 후보가 없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오기 인사로 대응한 셈이다. 사퇴한 총리를 다시 기용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거취가 대통령 1인에 의해 좌우되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기도 하다. 어떤 비난에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향후 고위공직자의 책임 여부가 결국 대통령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공직자들에게 줄 수밖에 없고, 이는 공직자들이 ‘국민’이 아닌 ‘대통령’ 의중만 살피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대독 총리’이자 ‘시한부 총리’였던 정 총리의 재기용은, 박 대통령이 향후 국정에서도 모든 걸 직접 결정하는 ‘만기친람 스타일’을 유지하겠다는 예고나 다름없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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