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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취재파일] 軍 먹튀로 유출된 기밀…軍 검찰 "기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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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취재파일을 통해 수차례 보도했던 합참 지하 벙커 도면 유출 사건이 ‘예상에 정확히 부합하게’ 꼬여가고 있습니다. 사건 내용을 다시 설명하기도 지겹지만 처음 보는 독자들을 위해 약술이라도 해야겠습니다. 군이 민간인에게 합참의 방호시설 설계를 시켜놓고 돈은 안주고 설계도만 받은 사건입니다. 그 민간인은 어쩔 수 없이 돈을 받기 위해 방호시설 관련 도면을 군에 반납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지요. 민간인이 갖고 있는 도면이란 것이 합참과 계룡대 지휘통제실 같은 최고 보안이 필요한 시설의 도면이라 사건의 파장이 컸습니다.

군 검찰이 나섰습니다. 잘 처리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민간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용역비를 찾아내서 민간인에게 돌려주고, 그 돈에 손 댄 군인은 처벌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사 내용을 보면 과한 믿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 검찰이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에게 “유출됐다는 도면들이 군사 비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민간인이 하등 쓸모 없는 종잇장을 들고 다니고 있다는 주장이고, 민간인에게 군이 휘둘릴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럴까요? 기자도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도면 중 상당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 검찰의 말대로 기밀이 아니라면 이 도면들 다 공개해버릴까요? 공개 뒤에 벌어질 일들은 군 검찰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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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시설본부 “공개되면 합참 새로 지어야 한다”

민간인을 등쳐 돈을 빼먹은 사건의 주역은 국방부 시설본부입니다. 2년 전 기자가 이 사건을 취재할 때 시설본부측은 기자에게 수차례 부탁했습니다. “그 도면 공개되면 우리 다 죽는다. 기사보다는 안보를 먼저 생각해 달라. 사라진 설계비 문제는 곧 해결하겠다.” 시설본부는 민간인이 갖고 있는 도면이 실제와 같기 때문에 공개되면 합참 건물을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무사도 비슷한 취지로 기자를 설득했습니다.

기자는 일단 덮었습니다. 도면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기사를 내보내도 되지만 이런 도면이 밖에서 나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을 유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줍지만 안보를 생각했고 무엇보다 군을 믿었습니다. 시설본부는 군 검찰에 의뢰해서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말도 하길래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났습니다. 2년 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 시설본부는 사건을 군 검찰에 맡기지도 않았고 민간인에게 대가를 치르지도 않았습니다. 믿을 데가 아니었습니다.

● 없던 일로 하고 덮자?

우여곡절 끝에 이 사건은 모 언론이 먼저 보도를 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 즈음 기자는 “기사가 나왔으니 군이 좀 움직이기는 할텐데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영원히 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군 검찰이 움직였습니다. 또 예상대로 군 검찰이 김재원 의원을 통해 내놓은 첫 입장은 “유출 도면은 기밀이 아니다”였습니다. 건물을 직접 지은 시설본부와 기밀 여부를 판단하는 권한을 가진 기무사도 다 기밀이라고 하는데 군 검찰만 아니랍니다.

군 검찰의 입장이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라면 ‘기밀 유출’은 없는 겁니다. 이제 돈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데 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 가장 잘 아는 인물은 이미 전역했습니다. 원흉이 민간인이 돼버렸으니 군 검찰과 국방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군이 민간인을 오라 가라 할 수 없으니까 조사를 못한다고 드러누우면 그만입니다. 군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시나리오가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밤을 새면서 군을 위해, 국가 안보를 위해 군 시설에 방호설비를 설계해준 그 민간인은 이제 영원히 버림받을 위기입니다. 군 검찰은 조사를 한다면서 그 민간인의 컴퓨터 하드웨어를 모조리 떼어가 버렸습니다. 방호설비 노하우가 모두 들어있는 소중한 민간인의 자산인데 그 역시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여차하다가 그 민간인은 스스로 재기할 기회조차 잃을 수 있습니다. 군이 민간인 한명을 철저히 짓밟는 과정을 여러분은 보고 계십니다.

[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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