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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박근혜의 눈물’은 배터리 방전 신호, 이정현의 살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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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임석규의 ‘정치 빡’ ③

이정현 수도권 출마하면… 7.30 재보선 ‘정권 심판론’ 강해질 것

‘눈물 카드’ 치른 6.4 지방선거…곳곳에서 방전 신호가 감지된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교체의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두말 필요 없이 문책성 경질이다. 홍보수석은 <한국방송>(KBS) 파행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자리다. 해임제청안이 가결된 길환영 사장의 ‘청영방송’ 논란과 김시곤 보도국장이 폭로한 청와대의 보도 통제 의혹, 후임인 백운기 보도국장 임명과 1주일 만의 교체 등 일련의 과정에 이정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KBS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정현은 스스로 사의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궁지로 내몰렸을 가능성이 크다. 이정현은 ‘감’이 빠른 사람이다. 어차피 물러날 수밖에 없다면 자진 사퇴가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불통’ 문제가 논란에 오르자 ‘원칙대로 하는 게 불통이라고 한다면 자랑스런 불통’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사람이 이정현이다. 청와대로서도 이정현을 경질하지 않고서 국정의 변화를 말하기는 쑥스러웠을 것이다. 문책성 경질임이 분명한 이상, 이정현이 문화부 장관으로 입각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본다.

“지금은 국정 운영에 있어 작전 타임 요구 찬스다.
청와대도 정부도 여당도 작전 미스가 잦다.
역량 발휘도 안 되고 실수투성이다. 운도 없다.
국정 전반에 걸쳐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
이럴 때는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여당 대표도
작전 타임을 요구해야 한다. 분위기 쇄신을 위한 특별한 시간이 필요하다.
속수무책이고 수수방관이 계속 되어서는 안 된다.
점점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악화하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정현이 청와대의 쇄신을 요구하며 쓴 글이다. 2008년 7월27일 한나라당 홈페이지 국회의원 발언대에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이정현이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의 국정 난맥상을 지적한 내용이다. 그의 쓴소리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 그대로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일대 쇄신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이정현은 이 글을 그대로 옮겨 청와대 게시판에 다시 한 번 올리는 것은 어떤가.

이정현이 서울 동작을 등 7·30 재보선 지역에 새누리당 후보로 차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정현은 한때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그래도 ‘친박’은 통하는 측면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친박’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서병수와 유정복은 부산과 인천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긴 했지만 살아남았다. 여권 핵심부는 ‘친박 카드’가 재보선에서 다시 한 번 약발을 발휘할 것이라고 계산할 법도 하다. 더구나 이정현은 ‘말발’과 ‘화력’을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재보선에 이정현을 내보내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청와대 홍보수석 출신이 수도권 지역 재보선 후보로 나서면 7·30의 구도는 ‘박근혜 심판론’의 성격이 한층 명확해지게 된다. 여당의 성적표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여부가 가려지는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몰라도 패배하면 대통령이 적잖이 상처를 입게 된다. 유력한 당권 주자인 김무성도 이런 점을 들어 이정현의 동작을 출마에 강력히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정현은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광주에 출마해 나름대로 선전했다. 당시 ‘대구의 김부겸, 광주의 이정현’이 쌍을 이루며 ‘지역구도 타파의 전사’로 각광받았다. 이정현은 서울이 아니라 광주 광산을 재보선에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 이정현이 사는 길이다.

박 대통령은 사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버렸다. 박 대통령에게 6·4 지방선거는 ‘눈물로 치른 선거’였다. 눈물은 달리 손을 써볼 도리가 없을 때, 최후로 꺼내드는 마지막 카드다. 눈물의 효험은 강력하되 오래가진 않는다. 마개 빠진 병에 든 술처럼, 눈에서 빠져나온 눈물의 약효는 곧 휘발하고 만다. 그리하여 ‘선거의 여왕’이 선거 때마다 발휘해온 괴력 에너지는 방전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본다.

배터리는 방전되기 이전에 여러 조짐을 내보인다. 선거 결과를 보면 ‘박근혜 에너지’도 방전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는 경고등이 곳곳에서 켜졌다. 충청권 광역단체장 4곳을 새정치민주연합에 싹쓸이 당한 게 대표적이다. ‘세종시 원안 수정’에 끝까지 반대하며 충청권에 각별히 공을 들여온 박 대통령으로선 매우 뼈아픈 대목일 거다. 충청권의 ‘세종시 약발’은 이제 시효가 다했음을 보여준다. 서울의 정몽준, 충북의 윤진식 등 ‘친박’이 아닌 후보들이 패한 것도 ‘박근혜 에너지’의 고갈 징후라 할 만하다. 앞서 당내 경선에서도 ‘친박’ 성향 후보들이 시들시들 힘을 써보지도 못했다. 국회의장 경선에서도 ‘친박’을 표방해온 황우여가 ‘친이’ 정의화에게 큰 표차로 패배했다.

박 대통령이 이정현의 후임 홍보수석에 YTN 보도국장 출신 윤두현을 앉힌 것은 선거 결과를 오독했거나 상황을 오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와대 참모진의 추가 개편이나 후임 총리 인선과 내각 개편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하겠지만 어째 조짐이 불길하다.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입’이기도 하지만 ‘대국민 소통 창구’라고 할 수 있는 자리다.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대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여론이 무엇인지 잘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온 게 ‘불통’이라는 점에서 후임 홍보수석은 소통에 능한 인물이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윤두현 수석은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데는 유능할지 몰라도 국민과 소통을 잘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7·30 재보선을 정면돌파 전략으로 나간다면 민심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대통령을 지켜달라며 읍소작전으로 지방선거를 치른 지가 얼마나 됐다고 고개를 뻣뻣이 세우느냐고 혀를 차는 국민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분석한 대로 이번 재보선은 지방선거 연장전의 성격이 짙다. 여당이 연장전에서 패한다면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의 중대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은 여권 내부의 급속한 이완과 분화, 그리고 해체다. 대통령의 힘이 빠진 것으로 나타나면 여권 내부에서 ‘박근혜 때리기 현상’이 돌출할 수도 있다. 역대 대통령의 위기는 내부의 이완에서 출발했다.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민심 오독과 상황 오판은 여권이 위기에 빠지는 시기를 더욱 재촉할 가능성이 크다.

임석규 논설위원sky@hani.co.kr



■ ‘정치 빡’을 시작하며…

정치, 그 속엔 세상의 오욕과 칠정이 다 들어있습니다. 치욕과 영광이 교차하며 탐욕과 연민이 뒤섞이고 투쟁과 타협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정치입니다. 그곳을 향해 무수한 손가락질이 쏟아집니다. 그래도 정치의 진흙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제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정치가 더럽고 구역질난다고 외면하기만 하면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따금, 정치 안팎의 잡사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표리가 부동한 현실의 정치판을 조금이나마 쉽고 정확하고 재미있게 이해하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눈으로 세상사를 바로 보긴 어려울 테니까요.



임석규 논설위원은 기자 생활 대부분을 <한겨레> 정치부에서 보냈으며 정치부장과 정치·사회에디터 등을 거쳐 지금은 정치 분야 사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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