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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구청장은 엄마…생활정치의 참맛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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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짬] 서울 비강남권 첫 여성 단체장

김수영 양천구청장


여성에게 ‘선거의 벽’은 여전히 높다. 지역 살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성 광역단체장은 여태껏 한 명도 없다. 6·4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 기초단체장이 당선됐다. 하지만 전체 226명 가운데 9명, 고작 4%다. 이 가운데 한명인 서울 양천구청장은 몇 가지 타이틀을 더 얻었다. ‘서울 비강남권 첫 여성 구청장’, ‘새정치민주연합 서울 첫 여성 구청장’, ‘부부 구청장’ 등이다. 수식어 이면에 담긴 사연을 들어봤다.

“영광이죠. 자부심도 있고요.”

지난 7일 서울 양천구청에서 만난 김수영(49·사진) 당선자는 “제대로 잘해서 ‘여성 구청장은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그 역시 40대 앵그리맘 아찔한 승리
2011년 구청장 재선거로 정치 첫발
당선무효 남편 대신 출마해 비판도
생활정치 실천…이번엔 “내 선거”
“교육문제·세세한 일상 돌볼 것”


후보 경선부터 험난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서 서울시의회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을 이끌었던 허광태 시의회 의장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났다. 100% 여론조사 경선에서 허 후보에게 0.69%포인트 차이로 졌다. 그러나 여성 가산점(본인 득표의 20%)을 적용하자 그가 앞서게 됐다. 본선도 아슬아슬했다. 오경훈 새누리당 후보에게 1.15%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 가장 적은 표 차이였다.

“심정이야 가산점 없이도 경선을 통과했으면 했지요. 여성이 정치 지도력을 갖는다는 게 현실에선 굉장히 힘들어요. 여성 가산점은 남녀 출발선의 차이를 인정하는 제도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선에서는 오히려 여성 후보라는 게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는 40대 ‘앵그리맘’이다. 아들(25)을 양천구에서 낳고 키웠다. ‘교육·복지·안전은 엄마의 마음으로!’가 선거 대표 구호다. 선거 캠프에는 “여자는 여자 안 찍는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30대부터 50대 초반 여성들에게 반응이 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양천구청장 선거의 ‘흑역사’를 끊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여성이라서 더 받은 것 같다고 했다. 2006년 이후 구청장이 네 차례나 바뀌면서 정치와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큰 상태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깨끗한 행정의 적임자’임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 흑역사에는 그의 남편인 이제학 전 구청장이 ‘허위사실 공표’로 당선무효가 된 일도 포함돼 있다. 어찌된 일일까?

‘2007년 이훈구(한나라당) 구청장 학력위조로 구속→2007년 보궐선거 추재엽(무소속) 당선→2010년 지방선거 이제학(민주당) 당선→2011년 이제학 구청장 당선무효→2011년 재선거 추재엽(한나라당) 당선→2012년 추재엽 구청장 위증·무고·허위사실 유포로 법정구속.’

이 전 구청장은 선거 과정에서 “추재엽 후보가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에 근무할 당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등을 고문했다”고 말한 게 문제가 돼 낙마했다. 아내인 김 당선자가 그로 인한 재선거에 출마한 것은 당시로서는 비판받을 만한 행위였다. 시민단체들은 재선거 비용 환수 운동을 벌였다.

“출마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우선 이제학 구청장이 말한 내용이 진실이라고 여겼어요. 이기고 지는 건 나중 문제고, 고문 문제가 묻히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어요. 두번째는 정치적 욕심이 있었어요. 저도 2002년부터 생활정치를 준비해 왔고, 남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죠.”

83학번 동기인 이 부부에게 ‘고문’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김 당선자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남편은 서강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김 당선자 자신도 학생운동·노동운동 과정에서 옥고를 3차례 치렀다.

재선거에서 낙선한 지 1년 만에 진실이 밝혀졌다. 추 전 구청장은 1980년대 간첩사건 조작을 위해 민간인을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 2012년 10월 위증·무고 등의 혐의로 법정구속됐고,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3월의 유죄가 확정됐다.

김 당선자는 당시 출마가 “위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제학의 부인’이라는 정치적 낙인 효과를 우려했다고 한다. 시민단체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활동, 열린우리당 여성국장 등으로 활동하며 정치의 꿈을 키워왔지만, 첫 선거 출마를 ‘남편 대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선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남편의 한 풀었다’는 제목을 부각시킨 당선 기사들을 보며 “기분 나쁘다. 유권자를 모독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가 꿈꿔온 생활정치는 무엇일까? 기초단체장의 임무를 묻자 “구청장은 엄마”라고 답했다. “교육, 세세한 보건·복지, 저소득층의 삶을 돌보는 일, 안전 매뉴얼 챙기기 등 주민들의 삶을 꼼꼼히 살피는 사람”이라고 한다.

“구청장이 굵직한 개발사업에만 신경 쓰고, 동네에서 어른 대접 받으려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2010년 지방선거 때 당선됐던 ‘젊은 구청장’들이 생활정치를 잘 실천하면서 유권자들이 지방자치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요.” ‘구청장 김수영’은 이제 첫걸음을 뗐다.

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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