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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미국 외교 정책의 대전환… 12년 만에 ‘개입’서 ‘절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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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부시 ‘선제공격론’… 오바마는 “개입 최소화”

2002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선제공격론을 주창했고, 12년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력 사용의 절제를 역설했다. 부시는 “우리는 여러분, 군인들을 필요한 곳에 보낼 것”이라고 말한 뒤 청중의 박수를 받았지만, 오바마는 “여러분들은 9·11 이후 전쟁에 나가지 않을 첫 기수”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미국 외교를 고립주의와 개입주의 사이클의 반복으로 도식화한다면 추가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왔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네오콘 이데올로그인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2년 전 무력을 쓰려는 미국과 국제법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유럽을 이런 비유를 들어 비교했다. “칼만 가진 사람은 숲속에 어슬렁거리는 곰이 자기를 해치지 않기만 바라며 그 위험을 그냥 참고 지낼 수도 있다. 반면 총을 갖고 있다면 참을 만한 위험에 대한 계산법이 바뀔 것이고, 왜 구태여 곰을 놔뒀다가 나중에 위해를 입으려 하겠는가.” 총 가진 사람은 미국이고 칼 가진 사람은 유럽이다. 이 말은 부시 선제공격론의 이데올로기적 토대가 됐다. 대척점에 있는 오바마의 비유는 “우리가 제일 좋은 망치를 갖고 있다고 세계의 모든 문제를 못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총과 칼은 12년 새 망치로 바뀌었고, 그나마도 사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됐다.

그런데 12년의 간격에도 부시와 오바마가 공통적으로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꼽은 것은 테러리즘이고, 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과는 대결보다는 협력을 강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이 전 세계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의 위협인식과 능력은 별로 바뀐 것이 없지만 세계를 보는 미국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셈이다.

미국 외교의 후퇴 국면은 얼마나 지속될까. 케이건은 “이번 것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고 브루킹스연구소 세미나에서 말했다. 나아가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만들고 70년 가까이 유지해온 세계질서의 변화라고 진단하며, 미국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오바마가 너무 ‘세계 문제에 지친(world-weary)’ 미국 대중들의 인식에 영합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진보성향 잡지 더네이션의 편집장 카트리나 유발은 NPR 라디오에서 미국의 젊은 세대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세계 문제에 관심이 많을 뿐이라며 오바마의 육사 졸업식 연설이 세계로부터의 후퇴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오바마 연설은 여전히 미국 예외주의라는 남성적 근육질의 세계관을 표출한 것이며 무인기를 이용한 전쟁, 해외에서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무기지원 등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점을 비판했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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