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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3분 사과’로 빠져나간 남재준 국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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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조작’ 국정원서 회견… 사과문만 읽고 질문 안 받아

책임 또 회피… 후폭풍 클 듯

남재준 국가정보원장(70)이 고개를 숙였다. 남 원장은 1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직원들이 증거 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원장으로서 참담한 마음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대국민 사과는 3분 만에 끝났다. 국정원은 전날 오후 10시51분 검찰 출입기자들에게 연락해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로 기자들을 불렀다. 질문은 받지 않았다. 기자들이 “질문 하나 하겠다”고 했지만 굳게 입을 닫고 자리를 떴다. 국정원 대변인은 ‘질문을 받지 않을 거라면 기자들은 왜 불렀느냐’는 항의에 “일문일답은 이번 자리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견에는 국정원 한기범 1차장, 김규석 3차장, 이헌수 기조실장이 배석했다.

남 원장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정원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물러날 뜻은 밝히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과문의 절반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무인기 사건을 거론하며 한반도 상황이 엄중함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경향신문

고개 숙였지만…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5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읽은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갑작스레 열린 국정원장의 회견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나오기에 앞서 형식적 사과를 한 인상이 짙다. 서천호 2차장의 사퇴에 이어 미리 준비한 각본에 따라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남 원장의 사과는 취임 이후 처음이다. 남 원장은 박근혜 정부 내내 정치 전면에 나서 소용돌이를 일으켰지만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무단 공개할 때는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라고 밝혔다. 그랬던 남 원장은 증거조작 사건으로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자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은 빠져나가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 여론의 온갖 비판에도 대통령의 신임만 받으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이번 증거조작 사건은 국정원 수장(首長)의 무능력도 여실히 보여줬다. 남 원장은 국정원 사무실에서 조직적으로 증거조작 행위가 벌어졌는데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했다. 증거조작 사건이 불거진 이후 국정원의 오락가락 대응 과정에서도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이 없다. 참여정부 임기말인 2008년 1월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은 방북 대화록 유출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사퇴한 바 있다.

국정원의 벽을 넘지 못한 검찰 수사와 남 원장의 책임 회피로 특검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원칙과 신뢰’ ‘비정상의 정상화’를 모토로 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남 원장만 예외라는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경우 6월 지방선거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안홍욱·이효상 기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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