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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폭사한 헤즈볼라 1인자, 죽기 전 휴전 동의했다”···이스라엘, 휴전 불씨 밟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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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논의 급물살에 미 특사 레바논 방문 예정

네타냐후, 갑자기 입장 바꿔 휴전 거부·암살 단행

이란 최고지도자, 특사 보내 이스라엘 암살 경고

경향신문

2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의 이스라엘군 공습 현장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군의 표적 공습으로 지난달 폭사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초상화를 걸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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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군의 표적 공습으로 피살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죽기 전 이스라엘과의 휴전에 동의했다고 레바논 외교장관이 밝혔다. 국제사회의 휴전 제안에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의 동의를 받아내며 논의가 급물살을 탔으나, 이스라엘이 갑자기 입장을 뒤바꿔 휴전을 거부하고 나스랄라를 암살했다는 것이다.

2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등 보도에 따르면 압둘라 부하비브 레바논 외교장관은 나스랄라가 암살되기 며칠 전 미국과 프랑스 등 국제사회가 제시한 ‘3주 휴전안’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헤즈볼라와 (휴전 문제를) 협의했고, 나비흐 베리 국회의장이 헤즈볼라와 협의한 결과를 미국과 프랑스 측에 알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하비브 장관은 CNN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헤즈볼라에게 휴전 동의를 받았고, 미국과 프랑스로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휴전에 동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미 백악관 수석 고문인 아모스 호크슈타인이 휴전 협상을 위해 레바논으로 곧 출발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부하비브 장관 주장이 사실이라면 휴전이 충분히 가능했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암살 작전으로 오히려 전면전 불씨를 지핀 것이다. 나스랄라 암살은 헤즈볼라뿐만 아니라 이란을 주축으로 한 반이스라엘 연대 ‘저항의 축’에 확전의 신호탄으로 작용했고, 결국 이란은 전날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보복 공격을 단행했다.

앞서 미국, 프랑스 등 12개국은 유엔 총회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25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에 3주간 일시 휴전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네타냐후 총리가 27일로 예정된 유엔 총회 연설에서 휴전을 공식 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과 달리 네타냐후 총리는 이튿날 곧바로 휴전을 거부했고, 유엔 총회 연설에선 이스라엘 북부에 살던 피란민들이 귀환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헤즈볼라를 공격할 것이라며 전쟁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연설 직후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수뇌부 회의가 열린 베이루트 남부 외곽 다히예 건물 지하 벙커를 공습해 나스랄라를 제거했다.

이스라엘의 ‘퇴짜’로 휴전안을 추진한 미국과 프랑스는 체면을 크게 구겼고, 이스라엘이 휴전안을 수락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미 당국자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자국 내 극우 여론을 의식해 자신들의 뒤통수를 쳤다고 분노하며 이스라엘 측에 항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메네이, 나스랄라에 암살 위험 경고…메시지 전한 특사도 함께 폭사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나스랄라에게 이스라엘의 암살 가능성을 경고하며 레바논을 빨리 떠나라고 권고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지난달 17일 헤즈볼라 대원들의 통신수단이었던 무선호출기(삐삐) 수천대가 동시다발 폭발한 사건 이후 헤즈볼라 내부에 이스라엘 첩자가 침투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나스랄라에게 즉시 레바논을 떠나 이란으로 대피하라고 권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 고위 관리에 따르면 이런 경고에도 나스랄라는 측근들을 신뢰한다며 레바논에 머물기를 고집했고, 이에 하메네이는 나스랄라에게 특사를 보내 재차 설득에 나섰다. 하메네이가 보낸 이 특사가 지난달 27일 나스랄라와 함께 건물 지하 벙커에서 폭사한 이란 혁명수비대 작전 부사령관 아바스 닐포루샨이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전날 이스라엘에 탄도미사일 공격을 단행하며 이 공격이 나스랄라와 닐포루샨,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야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은 최근 2주간 표적 공습을 통해 나스랄라를 비롯한 헤즈볼라 주요 지도부와 최고위급 지휘관 다수를 제거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대원들의 호출기·무전기를 잇따라 원격으로 폭발시키며 통신수단을 파괴한 데 이어, 지하 18m 깊이 벙커에 숨겨진 지휘본부까지 정밀 타격해 지도부를 제거한 것은 이스라엘 정보전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나스랄라 암살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 첩자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고위 관리는 내부 첩자를 잡기 위한 대대적인 조사가 혁명수비대는 물론 안보 관련 고위 관리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연이은 지도부 피살로 조직이 궤멸 위기에 몰린 헤즈볼라는 추가 공격을 우려해 새 지도자를 공식적으로 선출하지 못한 것은 물론 나스랄라의 성대한 장례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웨덴 국방대학의 헤즈볼라 전문가인 마그너스 랜스토프는 “기본적으로 이란은 수십년간 이어온 가장 큰 투자 대상을 잃었다”며 “이것이 이란을 중심부까지 흔들었으며, 나스랄라뿐만 아니라 닐포루샨도 죽었다는 것은 이란 내부가 얼마나 깊숙이 외부의 침투를 받았는지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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