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5 (토)

서방 국가들, 테러 의심 무슬림 시민권 박탈 확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국, 지난해 1년간 20명 박탈… 귀화인도 적용 검토

캐나다·호주 등도 입법화 추진… 형벌 도구화 논란

국적과 시민권은 언제든 줬다가 뺏을 수 있는 특혜의 일종일까, 아니면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일까. 과연 시민권 박탈을 형벌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는 최근 영국 등 일부 서구권 국가들이 테러리스트로 의심받고 있는 무슬림들의 시민권 박탈을 잇따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 같은 논란이 일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모하메드 사크르의 가족들은 2010년 영국 정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집트계이기는 하지만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크르의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는 통지서였다. 사크르는 소말리아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 활동을 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당시 소말리아에 있던 그는 이 소식을 접한 후 “시민권을 박탈당하면 나는 무국적자가 된다”며 영국 정부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7개월 후 사크르는 소말리아에서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정보 당국은 그의 사망을 언론에 발표하면서, 그를 “이집트인”이라고 지칭했다.

영국 탐사보도협회 조사 결과 2006년 이후 영국에서 시민권을 박탈당한 사람은 42명이었다. 그중 20명이 2013년 한 해 동안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영국은 ‘테러 혐의’가 있는 이중국적자의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한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은 “시민권은 권리가 아니라 특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영국 의회는 현재 이 규정을 이중국적자뿐 아니라 일반 귀화시민에게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이중국적자가 아닌 일반 시민의 시민권을 박탈할 경우 이들은 사크르처럼 무국적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시민권 박탈 확대 움직임은 영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호주, 네덜란드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정부에 시민권 박탈 권한을 주는 법안이 의회 상정을 앞두고 있고, 호주와 네덜란드에서도 법안 초안을 준비 중이다. 시리아나 예멘 등 이슬람 분쟁국에 참전을 자원한 무슬림 ‘위험분자’ 시민들이 귀국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는 지난 4일 연방법원이 중앙정보국(CIA)의 드론 공격에 희생당한 미 시민권자의 유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해 논란이 일었다.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던 안와르 알올라키와 그의 10대 아들은 2011년 예멘에서 드론 공격으로 숨졌다. 알올라키 변호인 측은 “미국 시민권자는 헌법에 따라 정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국가의 방침에 따라 전쟁 중 업무를 수행했다면 그에 따른 보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대전 당시 형벌의 일종으로 시민권을 박탈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것이 전체주의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후에는 거의 사장돼왔다”면서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시민권은 쉽게 박탈될 수 없는 기본권으로 인식돼오고 있지만, 최근 ‘공공을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이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