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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최현정의 이슈탐색] 르세라핌을 향한 비난이 너무 가혹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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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사진=Natt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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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수가 실력 논란에 휩싸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절치부심해서 이후부터는 논란을 만회할만큼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례로, 2012년 비디 아이(Beady Eye)로 런던올림픽 개막공연에 올랐던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는 오아시스(Oasis) 시절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인해 '완전히 맛이 갔다', '재기불능'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지만, 이후 철저한 목관리를 통해 실력을 회복하면서 지금은 전성기 못지 않은 보컬을 뽐내고 있다.

이에 실력에 대한 논란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다시금 전 세계 많은 팬들이 그의 목소리에 열광을 보내고 있다.

다만, 이는 원래 지닌 바 재능에 의해 그 성패가 크게 좌우되는 방법이기에 모든 가수들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두 번째로 선택하는 방법이 '뻔뻔해지는 것'이다.

딱히 나쁜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이 뻔뻔해지기는 꽤 유구한 전통을 지닌 방법이다. 라이브에서 스튜디오 음반보다 한 두음을 낮춰 부르는 건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자신이 소화하기 어려운 하이라이트 파트를 '다같이!'라는 구호와 함께 은근 슬쩍 관객에게 떠넘기는 것도 라이브에서는 흔한 장면이다.

심지어 미국의 록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는 자신들의 대표곡 'Welcome to the Black Prade'(웰컴 투 블랙 퍼레이드)의 후반 고음 파트를 아예 개그맨 이수근의 '고음불가'가 생각날 정도로 낮춰 부르기까지 하지만, 팬들은 이를 납득하고 받아들인다.

즉 '뻔뻔해지기'의 핵심은 라이브가 불안정한 것을 인정하고 이를 디폴트로 가져가는 것으로,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팬들은 '원곡자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기 위해' 현장을 찾기 때문이다.

실제로 잘 부른 커버 가수의 라이브와 못 부른 원곡자의 라이브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아무리 라이브가 불안정하다고 해도 원곡자의 라이브는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는 법이기 마련이다.

이쯤되면 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장황하게 서두를 늘어 놓았는지 눈치 챘을 것이다. 바로 르세라핌(LE SSERAFIM : 김채원, 사쿠라, 허윤진, 카즈하, 홍은채)에 대해서다.

지난 13일 (현지시간) 미국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르세라핌은 당시 불안정한 라이브로 인해 온갖 비난과 조롱에 직면했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르세라핌이 돌파구로 선택한 방법은 역시 두 번째다. 공연 이후 논란이 거세지자 멤버 사쿠라는 위버스를 통해 "보는 사람에 따라 완벽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는 최고의 무대라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글을 남겨 부끄럼이 없는 무대라고 자평했다.

또 이후로도 르세라핌 멤버들은 코첼라에서 다른 가수의 무대를 즐기는 모습들을 SNS에 공유하며 비난과 조롱에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르세라핌의 정면돌파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썩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잖아도 거셌던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이에 대한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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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르세라핌에 대한 옹호 여론도 있고, 또 의아한 점도 있다. 국내에서의 혹평과 달리 MNE나 빌보드 등의 해외 매체들은 르세라핌의 무대를 두고 '최고의 순간'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 매체 특유의 립서비스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런 평가는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든다. 바로 '르세라핌의 무대는 과연 어땠느냐?'가 그것이다.

당연히 '가장 못하는 부분만 편집해서 모아 놓은' 영상만 보면 르세라핌의 무대는 엉망진창에 도저히 못봐줄 공연이 맞다. 하지만 편집없이 공연 전체를 쭉 지켜 보면, 분명 불안하고 어색한 부분은 있지만 '도저히 못봐줄 만큼 엉망인' 공연은 또 아니다. 오히려 '그럭저럭 볼 만한 공연'이 더 정확한 평가에 가깝다

물론 이는 사견에 불과하고, 이에 동의 하지 못하는 의견도 많을 것이다. 나아가 기자 역시 '일기는 일기장에', '하이브에게 뭘 받았느냐?', '기자로서 자격이 없다'와 같은 비난에 시달릴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세라핌의 코첼라 무대는 분명 볼 만한 구석이 있는 공연이다. 밴드 세션으로 편곡된 곡은 나름 신선한 맛이 있었고, 퍼포먼스의 구성과 동선에서는 상당히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또 코첼라와 같은 대형 페스티벌에서는 단순히 보컬의 우열을 뛰어넘어 사람을 매료시키는 에너지와 현장감 등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날 르세라핌의 공연이 펼쳐진 사하라 스테이지에는 르세라핌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무대를 함께 즐겼다. 정말로 '도저히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의 무대'였다면 그 많은 사람을 공연장에 붙잡아 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된 보컬 부분은 불안하고 듣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4분짜리 곡에서 10초가 불안했다고 해서 나머지 3분 50초까지 모두 부정당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르세라핌은 코첼라 무대에 서기까지 수많은 기록과 성과를 달성했다. 당장 코첼라 무대에 오른 것부터가 K팝 그룹 최단 기간의 기록이며, 그외에 빌보드200과 핫100 진입, 3연속 밀리언셀러 달성, 일본레코드협외 2연속 플래티넘 인증 등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할 기록을 다수 지니고 있다.

이번 코첼라 라이브로 인해 이 모든 기록과 성과까지 거품으로 치부되거나 부정당할 이유는 없다. 지금 르세라핌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 혹평이 너무 가혹하고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다만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기자의 사견에 불과하고, 이미 잔뜩 날이 서 있는 비난의 여론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국 이런 비난의 화살을 잠재울 답은 르세라핌 본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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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해서 르세라핌이 갑자기 며칠 만에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단숨에 비난 여론을 잠재울 만한 완벽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르세라핌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번째 방법인 뻔뻔해지기 밖에 없다. 그것이 좋아서든 싫어서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이다.

물론 '뻔뻔해지기'라고 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대충하라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매 공연, 매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전제다.

그리고 마침 그런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오는 20일 펼쳐질 코첼라에서의 두 번째 스테이지가 르세라핌에게 더 중요해졌다.

전자신문인터넷 최현정 기자 (laugardag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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