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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이헌재 전 부총리 “촛불 이후 한국사회, 기득권에 균열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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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기득권 체제, 재벌중심 경제 한계

주거·교육·가계소득 문제 해결해야 변화 여력 생겨



박근혜 대통령 파면 뒤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는 어떤 미래를 꿈꾸어야 할까.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새로운 역동성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견고한 기득권 체제에 균열을 내고, 박정희 시대의 유산인 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익 배분에만 치중돼 있던 정책 관점을 사회안전망 확충 쪽으로 돌리면 다양한 시장 경제의 주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총리는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와의 대담집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정과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두루 밝혔다.

그는 대통령 탄핵이 향후 한국 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진단했다. 제왕적 대통령, 재벌 중심 성장, 기득권 세습 사회로 두텁게 쌓인 사회적 모순이 곪아서 터진 셈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 상황의 큰 물이 바뀌는 상황에서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의욕 과잉의 정책을 밀어붙이면 오히려 더 상황이 안 좋아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탄핵으로 정치적 리더십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웨이트 앤 시’(wait and see)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 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기준으로는 현실 적합성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계부채·주거·소득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정책 우선순위를 설명했다. 그는 “가계부채를 금융 관점의 규제로만 해결하면 ‘밀어내기’가 된다”며 “은행서 밀어내면 저축은행, 저축은행서 밀면 대부회사, 대부회사서 밀면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터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는 주택과 자영업, 저임금의 문제라고 시각을 돌렸다. 빚내서 집을 살 수밖에 없는 30~40대의 주거 문제, 소비 여력에 미치지 못하는 가계소득, 위험에 노출된 영세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가계부채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주택 문제는 정부 매입임대 등으로 주거 부담을 덜고, 소득이 모자라 가계부채가 일어났다는 측면에선 근로의욕을 상실시키지 않으면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며 “영세 자영업자 문제도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문제가 끊임없이 되풀이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사회안전망으로 책임졌어야 할 영역을 가계부채로 떠밀었다는 인식을 나타낸 셈이다. 그는 정부의 재정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감당할 부채의 수준은 국내총생산(GDP)의 200~300%까지는 된다”며 “부채의 성격은 단지 손실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냐, 생산성을 갖춘 것이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국가채무비율(일반정부 부채)은 지난해 기준으로 40%대 중반으로 추산된다. 오이시디 평균 국가채무비율은 2015년 기준으로 115% 안팎이다. 이에 한국의 재정 여력은 상대적으로 넉넉한 편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는 가계부채 폭증을 방치한 정부 정책에 대해 “정부 부채는 안 좋고, 개인이나 기업의 부채는 좋다는 것이냐”며 “우리 정부도 과거 공공임대주택에 투자할 당시만 해도 주택에 대한 정부의 지출구조 우선순위가 높았지만 이후 민간 영역으로 떠넘긴 뒤로 되찾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안과 관련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대우조선 지원이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가고 결손을 정부가 메우거나, 대우조선을 정리함으로써 일어나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라며 “어느 것이 미래를 위해 보다 경쟁력이 있느냐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진해운 사례를 들며, “사업성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기존의 해운 물류 네트워크를 부수면 재구축이 얼마나 힘드냐”며 “같은 의미에서 대우조선해양도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일각에선 그가 이광재 여시재 총괄부원장을 연결고리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경제 ‘멘토’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대선 출마설이 도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도 여시재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 전 부총리는 “여시재는 정파와 정당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오작동하고 있는 87년 체제를 어떤 시스템으로 개혁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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