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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윤 정부, 일본에 ‘사도광산 등재’ 양보하나…일 언론 “한국 변화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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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내에 자리한 대표적 유적지인 ‘기타자와 부유선광장’의 모습. 일본 최초로 금은광석에서 금·은 등을 채취하는 부유선광법(浮遊選鉱法)이라는 공법을 도입했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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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그동안 반대하던 한국 정부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강제동원 배상·후쿠시마 오염수·라인 사태 등 일본과의 현안에 대해 유독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윤석열 정부가 ‘역사왜곡’을 대놓고 하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도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11일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의는 보통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초점은 위원국인 한국”이라며 “2022년 5월 한·일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윤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 쪽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의 최근 발언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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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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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주일 한국대사관과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윤 대사는 지난달 4일 니가타현에서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를 만나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마이너스(부정적) 역사도 있다.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윤 대사는 현지 일본 기자들을 만나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대해 “절대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협력하고 싶다”며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록해도 좋을 정도로 매우 훌륭한 곳”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은 자민당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에 (사도광산) 등재에 실패하면 안 된다. 지금이 최적“이라며 ”다음에 중국이 위원국이 되면 등재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선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한국은 변수도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 ‘한국의 태도 변화’를 공공연히 언급하는 것은 윤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2015년 박근혜 정부와 견줘 세계유산 등재 문제를 두고 대응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문 정부 땐 범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세계유산 역사왜곡’ 문제를 제기하며 강경하게 대응해 상당한 성과를 얻어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는 일본이 2015년 7월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당시 하시마(군함도) 등 23곳 중 7곳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이 있었는데,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결정문을 2021년 7월 채택해 충실한 이행을 촉구한 바 있다. 문 정부는 2022년 2월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추진에 대해서도 역사 왜곡을 명확히 지적하며 “즉각 철회하라”, “유네스코 등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도 군함도 등 세계유산 등재 문제에 사활을 걸고 대응한 결과, 2015년 7월 일본 정부에서 처음으로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윤 정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서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9년째 지키지 않고 오히려 ‘역사왜곡’을 강화했는데도, 윤 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지난해 9월 세계유산위 권고문에는 일본에 대한 비판이 2년 만에 대부분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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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는 지난달 4일 니가타현에서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를 만나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일 한국대사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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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7월21~31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에서 결정된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각국 로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자민당은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록실현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16개국 주일 대사관을 상대로 이미 협력을 요청했다. 각국 대사들은 “확실히 본국에 전달하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즈미 니가타현 지사는 지난해 11월에 이어 지난달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파리로 직접 가 홍보에 나섰다.



윤 정부는 유네스코 규정이 한국에 유리하게 바뀌었는데도 적극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7월 새로 도입된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에는 다른 국가와 잠재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대화를 충분히 하도록” 돼 있다. 한국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문제 삼아 끝까지 반대하면, 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등재가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세계유산위 위원국으로 선출돼 등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할 기회도 생겼다. 일본도 2021년 선출돼 내년까지 활동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며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노골적으로 피하기 위해 대상 기간을 센고쿠시대(1467~1590) 말부터 에도시대(1603~1867)로 한정하는 꼼수를 썼다. 하지만 사도광산에선 1939년 2월부터 약 1500여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입증된 상태다.



우리 외교부는 12일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강제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사실을 반영하라는 일관된 요구를 전달해 왔다”는 입장을 내놨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하려면 강제동원 부분을 포함해 전체 역사를 제대로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고, 그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일본이 사도광산 전체 역사 가운데 일부만 떼서 등재하려는 것은 동의할 수 없고, 강제동원 역사를 포함해서 제대로 밝히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2015년 하시마(군함도)를 세계산업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밝히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사도광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도 문제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그 부분은 계속 해결해나가기 위해 한일간에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우선해 사도광산 등재를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일 관계 개선과 무관하게 과거사와 독도, 교과서 등 현안에 대해 한국의 원칙을 바꾸거나 양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박민희 선임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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