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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아기와의 여행, OO있는 숙소 찾기 '하늘의 별따기'[40육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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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6주차 > 영아 동반 여행

[편집자주]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머니투데이

아기와 장거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근교 나들이는 몇 번 나가봤지만, 2시간 이상 차를 타는 건 처음이다. 육아휴직의 로망이라는 '한달살기'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강원 속초·고성에 2박3일간 머물면서 인근 숙소들 탐방을 다니기로 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사실 지갑과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도 됐다. 아기와의 여행은 준비부터 남달랐다. 옷가지부터 젖병, 분유, 온수기, 유모차, 기저귀, 약품, 아기 전용 수건, 아기띠, 간단한 장난감 몇 가지 등을 챙기니 차 트렁크가 이내 가득 찼다. 준비물은 챙기면 그만인데, 더 큰 난관이 있었다.


온돌방이라더니 침대는 왜…

그냥 평범한 침대도 아기를 재우기에는 위험해 보인다. 50㎝ 남짓한 저 높이가 까마득한 절벽으로 느껴진다. /사진=이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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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동안 머물 숙소를 정하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최우선 고려 사항은 아기가 자는 환경이었다. 자는 동안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침대에 가드가 설치된 곳을 찾아봤지만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가드들은 낙상의 아픔을 아는 유아들을 위한 수준이라, 거침 없이 침대 밖으로 몸을 던지는 영아들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차라리 바닥에서 안전하게 재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돌방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숙소예약 사이트에서 '온돌방' 카테고리로 검색하니 많은 곳이 나타났다. 그런데 숙소들이 주장하는 온돌방은 이부자리를 깔고 생활하는 곳이 아니었다. 바닥 난방을 온돌로 하고, 그 위에 그냥 성인용 침대를 올려놓은 곳들이 99%였다. 일일이 숙소 사진을 클릭해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대체 왜 온돌방이라고 분류하는지 의문이었다.

방마다 '방문'이 존재하는지 여부도 중요했다. 몇 달 전 10개월 아기가 부모가 자는 새 혼자 기어서 방을 나섰다가 숙소 수영장에서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진을 둘러보니 의외로 고급 숙소 중에도 방문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고성 봉포쪽에 안전한 아기 잠자리가 보장되는 펜션을 한 군데 찾았다. 블로그 후기에서 확인한 내용이 맞는지 펜션 주인과 통화를 해 확인 받고, 예약을 잡았다. 실제 숙소의 온돌방에는 넓고 얕은 토퍼 매트리스만 깔려 있어 낙상 걱정 없이 아이를 안전하게 재울 수 있었다.


차량 이동에 누적되는 아기의 피로

(위)하행선 내린천휴게소 수유실. 중문 바깥에는 젖병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아래) 상행선 홍천휴게소 수유실의 물품함에 놓인 수유용품과 기저귀. /사진=최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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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이동 역시 쉽지 않았다. 서울-고성 이동 전에 미리 분유를 먹이고, 잠이 들 시간에 신속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출발까진 순조로웠다. 1시간 이상을 깨지 않고 잠든 채 강원 홍천휴게소까지 갈 수 있었다. 나머지 여정도 별일 없을 줄 알았다.

홍천휴게소에서 잠이 깬 아기는 다시는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장시간 이동에 역정이 나는지 울면서 보채기 시작했다. 그 정도는 점점 심해졌고, 떡뻥 과자나 장난감으로 달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홍천휴게소를 나서자마자 졸음쉼터에서 좀 달랜 뒤 다시 차에 태웠지만 차도는 없었다. 결국 홍천 다음인 내린천휴게소에서 분유를 먹이고 좀 쉬었다 출발하기로 했다.

요즘 휴게소마다 수유실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고는 들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정수기, 아기 침대, 기저귀 갈이대, 이유식용 전자레인지, 공기청정기, 젖병세척제, 젖병소독기, 수유쿠션, 패드, 물티슈 등이 다 있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찾은 하행선 홍천휴게소 수유실은 심지어 유축기와 젖병, 3단계 기저귀까지 준비돼 있었다.

수유실에서의 휴식도 잠시, 차에 탈 때마다 아기의 징징거림은 심해졌다. 생전 처음 해보는 장거리 이동에 지친 탓으로 추정된다. 여행지 안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도 카시트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심해졌다. 심지어 유모차에 태울 때도 안전벨트를 매주려고 하면, 카시트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장거리 운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행동이다.


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기와의 여행 준비물 중 일부. 부부끼리만 여행 다니던 과거엔 볼 수 없던 여행지 숙소 식탁 풍경. /사진=최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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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의 여행은 초점 자체가 아기의 컨디션 유지에 맞춰진다. 숙소를 나설 때 젖병과 분유, 물을 챙긴다. 마지막 분유를 먹은 뒤 다음 밥시간 전에는 무조건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부부끼리 휘적휘적 여행지를 돌다가 밖에서 저녁까지 사먹고 여유롭게 술도 한잔 하던 예전 모습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숙소에선 아기가 입에 넣고 빨만한 물건들을 수시로 소독티슈로 닦아준다.

중간에 식당에 들어가도 아기 상태를 계속 봐야 한다. 다행히 음식점마다 아기의자를 구비한 곳이 많았다. 하지만 아기는 의자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주변 물건을 손에 잡고 던지거나 빨아먹고 떨어뜨리는 행동들을 이어간다. 유명하다는 물회, 막국수, 수육을 먹으면서도 맛을 즐길 여유가 사라진다.

볼거리를 즐기기도 쉽지 않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길 위의 요철을 경계한다. 차량 이동에 염증을 낸 아기가 계속 힘들어하지는 않는지도 꾸준히 체크해줘야 한다. 아기가 태어난 뒤 처음 바다를 보여주는 터라 기대도 했는데, 정작 아기는 유모차에 달린 모빌 장난감이나 자기 손가락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저녁거리를 사러 간, 생전 첫 '마트 체험'에서 눈이 초롱초롱한 게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상의했다. 아기가 차량 이동의 피로감을 더 잘 견디고, 통제가 용이해지기 전에는 먼 거리 여행이 쉽지 않겠다는 결론이 났다. 아기와의 여행 '무용론'을 주장하는 한 친구가 "제주도 여행 가면 제주도에서 애 보고, 뉴욕 여행 가면 뉴욕에서 애 보는 것일 뿐"이라고 한 말이 이제야 와닿았다. 한달살기는 고사하고, 아이를 데리고 여유 있게 여행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아기는 잘 때가 가장 예쁘다. 여행지에서도, 여행 가는 길에서도 항상 잘 잤으면 좋겠다. /사진=최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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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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