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 록히드 마틴이 공동개발한 초음속 항공기인 티(T)-50은 공군 조종사 고등훈련기이다. 이 훈련기는 케이에프(KF)-16 전투기를 미국에서 도입하면서 확보했던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했다. 공군 누리집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31일(현지시각)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의 국방 ‘절충교역’(Offset Trading) 프로그램을 무역장벽으로 처음 언급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국방 절충교역을 통해 외국 방산 기술보다 국내 기술과 제품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절충교역은 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올 때 반대급부로 핵심기술을 이전받거나, 국내에서 제작한 부품을 사용하는 조건부 교역을 말한다.
무역대표부는 “계약 규모가 1000만달러(약 147억원)를 넘으면 외국 계약업체에 절충교역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절충교역을 맡고 있는 방위사업청의 조용진 대변인은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절충교역이 국제관행이고, 한·미관계에서 절충 교역이 문제가 된 적이 없다”며 “미국의 입장은 좀더 분석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세계 130여개 국가가 도입한 절충교역은 미국의 요구로 시작된 것이다. 냉전이 한창 때인 1961년 서독 주둔 미군의 분담금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이 자국의 무기를 구매하도록 서독 정부에 요구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서유럽 국가들도 미국 무기를 살 때 기술이전과 대응구매를 요구하면서 국제 무기 거래의 보편적 제도로 정착했다. 한국은 1983년 절충교역 제도를 도입했다.
조용진 대변인은 “우리나라는 절충교역을 통해서 미국에서 기술을 받아오기도 하고, 한국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케이에프(KF)-16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확보했던 기술을 바탕으로 고등훈련기 티(T)-50을 개발했고, 항공기 동체 부분 등도 미국으로 수출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케이티(KT)-1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개발한 항공기로 조종사 기본훈련기로 운영되고 있다. 이 훈련기는 절충교역으로 획득한 기술을 활용해 국내 독자개발에 성공했다. 공군 누리집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절충교역은 한국 자동차 수출에도 기여했다. 1970년대 현대자동차가 국내 독자 모델 자동차 포니를 개발했으나 내수용에 그쳤고, 선진국 수출은 못했다. 1984년 한국은 캐나다에서 항공관제용 레이더를 약 2천만달러에 구매하면서 절충교역을 요구했다. 이에 캐나다는 현대자동차의 포니-2 1000대, 모두 1900만달러어치를 구매하여 국산 자동차가 북미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현재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이동형 장거리 레이더, 차기 구축함 사업(KDDX), 에프(F)-35에이(A) 및 에프(F)-15케이(K) 성능 개량, 공중급유기 2차 사업 등이 절충교역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방위사업청은 미국 무기 도입 과정에 걸려 있는 절충교역 규모가 57억7900만달러(약 8조5천억원) 규모라고 밝혔다.
한국은 현재 외국 무기를 구매할 때 계약금액 대비 수의계약은 30%, 경쟁계약은 50%를 절충교역으로 적용하게 돼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들은 절충교역이 30~100%, 50~100% 수준이라 한국 절충교역 비율이 외국보다 높지 않은데다, 비중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무기를 국내에서 구매하고 외국에서 사오지 않아 절충교역 제도가 없지만, 미국산 우선 획득 제도(BAA)가 절충교역과 비슷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산 원자재를 65%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원래 가격에 50% 가량 할증을 부과해 수출 가격 경쟁력이 없어진다. 이 때문에 미국에 무기를 팔려는 외국 업체는 미국에 무기 공장을 설립할 수 밖에 없는데, 결과적으로 절충교역 내용 중의 하나인 국내 생산 효과가 나타난다.
지난 2023년 산업연구원이 낸 ‘글로벌 방산 수출 4대 강국 진입을 위한 K-방산 절충교역의 최근 동향과 발전과제’ 보고서는 한국의 절충교역 감소 경향이 주요국의 활성화 추세와 불일치하는 점, 130여개국이 절충교역 제도를 활용하는 점 등을 들어 절충교역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국제 관행인 절충교역을 갑자기 문제삼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체결 논의 중인 상호군수조달협정(RDP)을 연계하려는 협상 전략이란 분석이 방산업계 등에서 나왔다. 국방 분야의 자유무역협정이라 불리는 상호군수조달협정은 체결국 상호 간 조달제품 수출 시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해, 한국이 미국에 무기를 수출할 때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 협정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이 자국산 무기는 절충교역 축소나 제외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조용진 대변인도 “(절충교역 문제는) 상호 국방조달협정을 체결하는 과정 중에 논의가 될 사안”이라며 “미국 국무부뿐만 아니라 상무부, 국방부와도 같이 논의를 해야 될 사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