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한국, 비밀 농축 실험
IAEA 발각돼 안보리 회부될 뻔
그전엔 佛 재처리시설 수입 시도
그때도 미국 압력으로 취소
핵, 감정이 아닌 현실을 보라
자체 농축 기술 확보가 우선
원심분리 기술·공정 개발에
기술적·산업적 역량 집중해야
먼저, 핵 잠재력이 없는 나라가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핵 잠재력이란 한마디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적·산업적 인프라를 말하는데, 우라늄 농축 시설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보유해야 핵 잠재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핵무기 원료로 고농축우라늄(HEU)이나 플루토늄이 사용되는 데, 농축 시설에서 우라늄을 90% 이상 농축하면 무기급 HEU가 되고,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그러나 농축과 재처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므로 핵비확산조약(NPT)이 허용하는 합법적인 활동이다. 원전 연료로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LEU)을 생산하려면 농축 시설이 있어야 하고, 재처리 시설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과 감시를 통해 투명성이 유지되고,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된다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민감핵주기(sensitive fuel cycle) 시설이 핵무장에 악용될 위험성 때문에 원자력 기술 선진국들은 이와 관련된 기술·부품·장비 등의 해외 이전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를 위해 농축이나 재처리가 꼭 필요한 국가라도 장차 이를 핵무장에 전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으면 관련 기술과 물자에 대한 접근이 조직적으로 차단된다. 즉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해 농축·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민감 핵기술 보유국들에 민감 기술과 물자에 대한 접근을 막아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이미 50년 전에 프랑스와 재처리 시설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취소한 적이 있고, 2000년에는 비밀리에 레이저를 이용한 농축 실험을 한 사실이 2004년 IAEA 사찰에서 발각되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위기까지 겪은 바 있다. 핵개발 미수 ‘전과’가 있는 나라는 평화적 목적만을 위해 농축이나 재처리를 하겠다고 아무리 우겨도 믿어줄 나라가 없다. 이렇듯 핵 잠재력이란 잡으려고 소리를 낼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이치를 모르면 헛발질만 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민감 핵주기 시설을 보유할 방법이 없나? 결론부터 말하면 농축은 가능한데 재처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하에서 재처리는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독자적 기술로 농축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제약이 없다. 협정 11조2항에서 미국의 동의를 받아 20% 미만 농축만 할 수 있다고 한 문구를 두고 농축에도 사전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이는 미국에서 도입한 우라늄이나 장비를 사용할 경우에만 적용된다.
재처리는 핵연료를 연소한 원자로의 원천 기술 보유국과 핵연료 공급국의 동의를 요하는 협정상의 제약을 받지만 설혹 동의를 얻더라도 국내 환경단체들이 가로막을 것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50년 이상이 걸리는 나라에서 그보다 환경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재처리 시설 부지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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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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