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카페 어라운드시소에서 열린 경향신문 플랫 5주년 생일카페. 정지윤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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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2020년 3월8일 출범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주변화될 수밖에 없는 불평등한 현실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서사를 중심에 두고 취재하는 버티컬 채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난 5년간 플랫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보도하는 모습을 동료로서 지켜보다가 올 초부터 팀을 맡게 됐다.
‘젠더데스크 겸 플랫팀장’으로 발령받을 것이란 소식을 들은 건 서부지법 폭동 이후 생각이 많아지던 시기였다. 서부지법이 침탈당한 그날 밤, 새벽 내내 유튜브 중계를 보면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수준으로 치달은 백래시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노동자가 ‘집게손가락 동작’을 작업물에 끼워넣었다는 누명을 씌워 공격하던 사람들, N번방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일삼고 ‘페미들은 꺼지라’고 악플을 달다가 여성가족부 폐지론으로 정치세력화된 반페미니즘 세력이 끝내 폭도가 되어 법원에 난입했다. 이들과 이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결국 이 사람들과도 동료시민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아니 그게 가능은 한 걸까.
고민이 인간 혐오로 번지려고 하던 때 새 팀에 발령받아 플랫 5주년 ‘생일카페’ 행사를 열게 됐다. 생일카페는 K팝 아이돌 팬들이 만든 문화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생일을 기념일 삼아 공간을 대관해 사진과 관련 상품을 전시한다. 플랫팀도 3월8일 여성의 날 종로의 한 카페를 빌리고 그간 내놓았던 기획기사들을 전시했다. 마음껏 아이돌 이야기를 하고 싶은 K팝 팬들이 아이돌 생일카페에 모이듯, 플랫 생일카페에는 백래시의 시대에 숨쉴 공간을 찾아나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대학생 독자는 친구들과 일상에서 겪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 자기가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아 말을 꺼내기 어렵다고 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에 노출되기 쉬운데, 이 공간에 와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고도 했다. 또다른 독자는 ‘오프라인에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공간, 정말 귀하네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갔다. ‘나와 같은 마음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함께인 건 언제나 좋네요’ 라는 메시지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페미니스트이고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밝혀도 비난받지 않는 평등한 분위기 때문에 집회에 계속 나가고 있다는, 최근 봤던 어느 청년 여성의 인터뷰도 떠올랐다.
한 회사 동료는 생일카페에 왔다가 우연히 같은 아파트 주민을 만났다고 했다. 그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는 최근 메타세쿼이아, 플라타너스 등 큰 나무를 앙상하게 가지치기했다. 차량 손상 등 피해가 빈번하다는 이유였다. 도심 속 숲 역할을 하는 아파트의 큰 나무들을 무분별하게 잘라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던 두 사람은 뜻밖에도 서로를 만난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둘은 대자보를 써서 함께 아파트에 붙였고, 단톡방에서 사람을 모아 현수막도 내걸었다. 혼자라면 못했을 텐데 그 자리에서의 만남이 정말 운명적이었어요, 라는 동료의 메시지에서 한동안 눈을 떼기 어려웠다.
남지원 젠더데스크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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