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귀를 의심했다. 아니, 다른 부처도 아니고 태극기 배지를 가슴에 달고 외국 정부를 상대하는 주무 부처 장관을 두고 남의 나라 대변인 같다고 하다니. 그것도 어디 뒷골목 술집도 아니고, 국회 외통위 긴급 현안 질의라는 공식 석상에서 명색이 국회의원이란 헌법기관의 입에서 그런 표현이 튀어나오다니. 한국이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에 지정된 까닭에 대한 장관의 답변이 못마땅하다 해도 좀 지나친 듯했다.
무엇보다 직전 정부에서 외교관 양성 기관이자 정책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의 원장까지 지낸 학자 출신이 외교 장관을 그런 식으로 깎아내리니 한숨이 나왔다.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을 ‘가스라이팅’에 비유하는 책을 외교원장 신분에서 냈던 그의 전력이 다시 떠올랐다.
미 측이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올릴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다 뒤통수 맞은 것에 대해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 “민감국가 리스트는 비밀이라 모를 수밖에 없다”는 식의 변명은 구차하다. 그러면 주미 대사관은 왜 나가 있고, 외교관들은 왜 미 정부 사람들을 만나며 정보 수집 활동을 하나. 민감국가 지정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그것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은 질타받을 만하다.
어떤 의원보다도 중국의 서해 영향력 확대 문제,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한 고질적 전략 부족의 병폐를 잘 짚은 듯했다. 소리치지 않고, 선전 선동의 어휘도 없었지만, 여야 의원, 그리고 출석한 여러 부처 장차관 모두의 귀를 잡아끌었다. 무게 있는 2분 15초였다. 그의 소신 발언 때문이었을까, 민주당은 바로 다음 날 당 대변인 명의로 “중국 서해 구조물 설치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당장 중단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측이 구조물 근처를 점검하던 한국 해양선을 위협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지 일주일 만의 논평이었다. 주권 지키기에는 여야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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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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