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봉 영화 '승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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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조훈현은 전신(戰神)으로 불린다. 시종일관 치고 받고 물고 뜯어 상대를 꿇어 앉히는 기풍 덕에 얻은 별명이다. 이창호는 돌부처다. 어떤 고난과 격정도 부동심으로 이겨내 끝내 승리를 쟁취하기에 붙여진 이명(異名)이다. 조훈현과 이창호를 담은 영화 '승부'(3월26일 공개)의 두 배우 이병헌과 유아인은 마치 그들의 바둑을 집어 삼킨 것만 같다. 이병헌은 모든 기력을 스크린 밖으로 내뿜으며 러닝타임 115분을 휘어잡는다. 유아인은 안으로 삭이고 또 삭이며 힘을 끌어 모은 뒤 정중동 한다. 이들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을 때 이 영화는 이미 호화롭다.
이창호를 키운 조훈현, 스승을 넘어서버린 제자, 벽을 넘어서려는 승부사의 얘기를 그린 '승부'는 연기로 대마(大馬)를 잡는다. 이병헌은 정점에서 밀려난 자의 충격, 그 자리를 제자에게 빼앗겼다는 당혹,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할 벽이 있다는 무력을 특유의 예민함으로 세공해 간다. 이병헌 연기의 설득력에 관해 얘기하는 건 입이 아픈 일일 텐데,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또 한 번 그 뺄 것도 더할 것도 찾기 힘든 연기 완성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배우와 붙여놔도 죽이 잘 맞는 모습에선 그의 연기엔 깊이 못지 않은 폭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
유아인은 거목 같은 스승 앞에서 느끼는 열패감, 하지만 반드시 나의 방식으로 최고가 되겠다는 열망, 그러기 위해선 스승을 밟고 가야 한다는 고통을 고요한 얼굴에 담아낸다. 배우로서 유아인의 아우라는 이병헌의 그것에 결코 주눅 드는 법이 없다고 느낄 때 그를 둘러싼 숱한 논란은 최소한 이 영화 안에선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병헌과 유아인을 조우진·김강훈·고창석·현봉식·문정희 등이 지원 사격하게 한 포석은 흠잡을 데가 없다. 이들은 짧은 분량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었는데도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극을 더 풍성하게 하는 묘수를 매 장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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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승부'는 어떤 대목에서도 도전적인 요소를 찾기 어렵다. 좋게 얘기하면 안정적인 플롯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너무 안정적이어서 안일해 보이기까지 하는 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두 바둑기사의 인간적 고뇌를 파고 들어가는 걸 포기한 채 배우 연기에만 의존하는 건 패착에 가깝다. '승부'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대국을 실제 스포츠 캐스터를 데려다 놓고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설명한 건 악수로 보인다. 영화의 언어로 보여줘야 할 것들을 모두 캐스터가 말로 설명하게 해 그 승부의 긴장감을 끌어내리고 의미를 축소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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