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서 예멘 폭격 계획 논의
지난 21일 미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모습.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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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 밴스(미국 부통령): “공격을 미루고 경제 상황을 살핀 뒤 실행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피트 헤그세스(국방장관): “더 기다리면 계획이 유출돼 우리가 우유부단해 보일 수 있습니다.”
마이클 왈츠(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건 결국 미국이 결정해야 할 몫입니다.”
미국이 예멘의 이슬람 무장 단체 후티에 대한 공습 작전을 개시하기 전날인 지난 14일, 미 정부 지도부 인사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미 잡지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은 24일 ‘트럼프 행정부가 실수로 내게 전쟁 계획을 문자로 보냈다’는 기사에서 극도의 안보를 요하는 전쟁 작전을 수립하는 과정에 보안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미 최고위 인사들이 미국에서 흔히 쓰이는 메신저인 ‘시그널’을 통해 군사 계획을 논의했을 뿐 아니라 채팅방에 실수로 기자를 초대해 놓고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은 지난 15일 홍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는 서방 선박들을 공격해온 후티에 대한 기습 공격을 실제로 단행했다.
사건은 지난 11일 시작됐다. 골드버그 편집장의 시그널 앱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의 이름인 ‘마이클 왈츠’라는 계정으로부터 대화 요청이 들어왔다. 과거 취재차 왈츠를 몇 번 만났던 골드버그는 이 인물이 진짜 국가안보보좌관이고 용무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화를 수락했다.
그래픽=이철원 |
이틀 뒤인 13일 오후 4시 28분, 골드버그 편집장은 ‘후티 PC 소그룹’이라는 단체 채팅방에 초대됐다. 이 방에는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등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이름이 같은 18명의 계정이 포함돼 있었다. 채팅방에서 왈츠는 “앨릭스 웡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이 오늘 상황실 회의에서 나온 실행 과제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골드버그 편집장은 “이때만 해도 나는 이 채팅방이 실제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안보 지도부가 시그널 앱을 통해 전쟁 계획을 논의하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고 했다.
골드버그 편집장은 “이 대화는 매우 그럴듯했다”며 “어휘 선택이나 논리 구조는 설령 그것이 가짜라고 해도 매우 정교한 인공지능(AI)이 작성한 듯 보였다”고 했다. 다음 날인 15일 오전 11시 44분에 헤그세스는 예멘 공습 공격 목표, 미군이 사용할 무기, 공격 순서 등 폭격 정보를 올렸다. 밴스는 “승리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답글을 달았다. 헤그세스가 예고한 폭격 시점은 오후 1시 45분이었다. 여전히 믿기 어려웠던 골드버그 편집장은 1시 55분쯤 소셜미디어 X에서 ‘예멘’을 검색해 봤고, 실제 그 시각 예멘 전역에서 폭격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채팅방에선 “훌륭하다” “수고했다” 같은 칭찬과 격려 메시지가 오가고 있었다.
미 정부는 국가 안보 관련 정보에 대한 엄격한 보안 규정을 두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은 기밀 정보를 반드시 정부 승인 장비나 보안 통신망을 통해서만 주고받아야 한다. 2016년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사설 이메일 서버를 사용했다는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고, 트럼프는 당시 이 스캔들을 적극 활용하며 감옥행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날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나는 모른다. 애틀랜틱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동문서답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아마추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최고 기밀을 문자로 가지고 놀았다”며 청문회를 요구했다. CNN은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 아마추어들로 정부 고위직을 채웠고 그들은 결국 전쟁 계획을 메신저로 토론하고 드러내는 극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보안 사고로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 퇴출될 가능성도 거론됐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NBC와 인터뷰에서 “그것은 실수였고, 예멘 후티 공격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면서 왈츠를 여전히 신임한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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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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